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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ez Jan 07. 2021

가우디 선생님은 곡선이 좋다고 하셨어

회사를 떠났습니다, 아주 잠시 #04

고백하자면 나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와 건축이라는 분야 모두에 별 관심이 없었다. 흥미가 없으니 가우디라는 인물에 대해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것도 내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누구나 알고 있는 수준(유명한 건축가이고, 그가 지은 건축물이 바르셀로나에 많다는 것) 외에는 더 알 기회도, 필요도 없었다. 여행지로 스페인을 선택한 이유에도 가우디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도시에 와서 가장 많이 접한 고유명사가 결국 안토니 가우디였다는 사실은 바르셀로나가 말 그대로 가우디의 도시임을 부인할 수 없게 했다.


미리 꼭 알아야겠다는 사명 같은 것도 없었으므로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나는 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놀러 가는 여행에 예습까지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실제로 바르셀로나에 가서 그가 만든 건축물을 마주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목표는 랜드마크에서 멋진 사진을 찍는 거지 랜드마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아니다. 당일치기 투어를 예약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관광지를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바르셀로나 첫째 날, 투어 가이드를 만났다. 한국인 가이드였던 그는 스페인어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바르셀로나에 와서 몇 년째 가이드를 하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당연하게도 그는 한국말을 잘했고, 잘하는 만큼 말이 많고 빨랐다. 가이드는 약속된 시간에 참석자들이 모두 모이자 대성당이 잘 보이는 광장 벤치로 안내했다. 그리고 모두가 가방을 배 앞쪽으로 놓고 손으로 잘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바르셀로나에는 소매치기가 많다) 당일치기를 위한 사전 설명을 시작했다. 스페인의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했지만 기승전 가우디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이드는 가우디를 가우디 선생님이라 불렀다. 어쩌면 건축학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가우디에 대한 지식은 모두 그의 일타 강의에서 나왔다. 가우디 선생님이 어린 시절에 어쩌고저쩌고, 가우디 선생님의 대학 시절은 블라블라, 가우디 선생님의 작품들은 우다다다다, 가우디 선생님이 교통사고로 그만 흑흑흑흑. 가우디 일대기를 써도 될 정도로 가이드의 설명은 완벽했다. 내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나는 그저 빨리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싶었다. 맑은 아침 내리쬐는 사진 찍기 좋은 햇빛이 금세 사라질까 애가 탔다. 가이드는 속사포처럼 설명을 이어갔지만 내 귓속을 관통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간신히 입장한 대성당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5유로에 대여했다. 코스 가격에 포함된 거라 받긴 했지만 채 1분도 안 듣고 꺼버렸다. 첫 번째 음성으로 흘러나오던,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의 환영사를 듣던 차였다. 옛날 전화기처럼 생긴 대성당 오디오 가이드는 설명을 듣기 위해서는 손으로 들어 수화부를 귀에 가져다 대고 있어야 했다. 나는 오디오 가이드 대신 아이폰을 꺼내 카메라 앱을 열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가우디를 몰라도 가우디의 건축은 찍는 족족 그림이고 예술이었다.


실컷 사진을 찍다 지루해진 나는 옆에 있는 m을 꼬드겨 대화를 시도했다. m은 그때까지도 오디오 가이드의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가며 무언가 열심히 듣고 있었다.


“젤라토 먹을래?” “아니”
“이따 점심은 뭐 먹을래?” “몰라”


m이 이따 먹을 밥에 관심이 없다니.. 간만에 꽤나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다.


“재밌어?” “응”
“그냥 보면 되지 뭘 다 알아야 하나” “난 여행을 많이 안 와봐서 이런 설명 듣는 것도 재밌네”


회사에서도 m과 나는 일하는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아직 사회초년생인 m은 매사에 열정적이다. 프로젝트를 맡으면 관련된 모든 걸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한다. 게다가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다른 모든 걸 뒤로 제쳐두는 편이라 야근은 기본이고 노트북을 집에 가져와 자기 전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는 뭐든 닥치는 대로 한다.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기보다는 경공을 펼쳐서라도 돌다리가 무너지기 전에 건너는 걸 선호한다. 필요한 자료는 그때그때 찾는다. 게다가 일과 삶은 되도록 철저히 분리하자는 주의라 일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것도 극혐이다. (물론 노느라 일을 대충 하는 것도 싫어한다.) 예전에는 서로 다른 워라밸 스타일로 인해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은 각자를 존중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 내가 일하는 스타일은 그동안 일해왔던 방식의 종합판이자 개정판이다. 과거 기자 시절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다른 사람들의 출근길을 지켜보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누군지도 잘 모르겠지만 암튼 어딘가 사장님이 타고 있는 차라면 일단 기종과 번호를 수첩에 메모했다. 초면에 죄송하지만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붙잡고 질문을 던지며 낯선 어딘가의 사장님 얼굴을 외웠다. 저녁에는 낯선 사람과 술을 진탕 마시고 화장실에서 토하면서 대화 내용을 메모했다. 지금 회사로 옮기고 나서는 24시간 3교대 투입돼 새벽 근무와 야간근무를 매일 번갈아 서기도 하고, 아침 10시에 출근했다가 오후 7시에 칼같이 퇴근하는 생활을 평범한 생활을 누리기도 했다. 요즘은 자율출퇴근제에 맞게 일하고 싶을 때 출근하고 쉬고 싶을 때 퇴근한다. 내가 내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가치관을 만들었듯이 m도 그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중일 것이다.


“가우디 건축물들이 왜 둥글둥글한 지 아시나요? 가우디 선생님은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건축을 할 때 꼭 곡선을 넣어 디자인했죠.”


가우디가 리모델링했다는 ‘까사 바트요’를 바라보며 가이드가 말했다. m과 나는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거리 맞은편에서 서서 그의 설명을 들었다. 그에게도 그만의 스타일이 있을테고 나는 그걸 존중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나도 가우디를 가우디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의 인생과 작품은 의외로 흥미로웠다. 나는 사진 앱을 끄고 아이폰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낯선 이국 도시의 하늘에는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다.


ps. m은 이제 아우디를 보고 가우디라고 한다. 여행 3일 만에 스페인 사람이 다 된 것 같아 뿌듯하다.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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