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페르케 _ 용서하지 못할 것만 사랑했다
모과나무 서 있는 가을이야. 흰 구름이 탄마가루처럼 흘러가고 있어. 나는 이 가을이 남긴 모과의 굳은살. 모과나무가 애써 펼쳐놓은 그늘의 기억. 새살 돋듯 내 발등 위로 툭, 떨어지는 노란 모과 열매 하나. 모과야, 너는 뭐가 그리 슬프니. 더 이상 버티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말하고 있어. 가장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사람처럼 안간힘 너머에 있는 환한 힘을 부르고 있어. 그러니까 모과나무는 전생에 역도선수였던 것. 두 손바닥으로 봄과 여름을 꽉 쥐고, 다리 부들거려가며 견뎌왔던 것. 제 무게의 세 배나 되는 바벨 같은 열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던 것. 나는 알지. 숨을 참아야만 열매 하나 겨우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의 응원은 이미 시들고, 이제는 그 무엇도 견디지 않아도 되는 시절. 그제야 찾아오는 막판 3차 시기. 모과나무가 끝내 놓쳐버린 그 노란 가을 하나를, 나는 참으로 편안하게 들었다가 놓고 있어. 썩어가는 죄도 없이 숨을 들였다가 내쉬면서. 이제 나도 영락없는 가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