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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Nov 20. 2022

남자의 외로움 (part 1)

우리는 많은 아버지와 형들이 필요하다

커피값이 6천 원이 넘는다. 와 비싸다 하던 커피였는데, 5천 원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선 지 한참 흘렀지만 계속 사 마실 핑곗거리는 그럭저럭 만들어내고 있다. 돈벌이 속도보다 씀씀이의 속도가 더 빨라질까 봐 걱정스럽다. 욕심과 걱정이 강렬해질수록 더 혼란스럽다. 이루고자 하는 것, 갖고자 한 것에 잘못된 의미를 부여할까 봐 걱정스러운데, 이걸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졸라 고독하다.


바라는 것에 대한 허상과 처한 상황의 부담감은 우리 모두 짊어 지고 가야 하는 인생 딜레마다. 그런데 산다는 것이 뜬 구름을 잡으려는 시도와 과정 자체가 아니라면 그럼 뭘까? 뜬 구름을 잡고자 하는 모티브가 중요하다. 모티브는 그 자체로 가치 판단을 당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서사적인 요소를 갖춘, 내 욕망과 결핍에 대한 나의 취약성(vulnerability)에 가깝다. 각자의 결핍 원천은 다르지만, 모두 무언가를 좇는 모습은 다를 바 없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것은 구성원 각자의 스토리다. 구성원들의 이야기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와전되고, 조롱 대상이 되고, 귀감이 되고, 오해가 쌓이고, 질투가 된다. 스토리의 구성 요소로는 결핍부터 불안, 공포, 실패, 성공 등이 있으며, 공감이 매개체가 된다. 공감이 사회 대다수에게 전염되면 시대정신이 되고, 시대정신은 공동체가 함께 써가는 새로운 스토리라인이 된다.




난 잠깐 멈춰 서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정신에 대해 담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때론 위험하고, 의미 없이 소모적이라 할지라도 애초에 시작해선 안될 것은 아니다. 이런 대화의 끝엔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이란 급류 속에서, 그리고 발 붙여 살아가는 이 작은 사회 속에서 우리는 더더욱 ‘내 걱정’을 꺼내야 한다. ‘걱정이 있다’라는 것은 단순 불편함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문제에 관여할 용의가 있으며 해결에 힘을 보태겠다는 공동체 결합의 신호다.


나는 멘토들을 찾고 있었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실존적인 경험담이 필요했다. 우리에겐 많은 아버지들이 필요하고 많은 형들이 필요하다. 왜 대단한 사람 앞에선 과도하게 내 약점을 오픈하면서 우리랑 비슷한 평범한 사람들 앞에선 철저히 감출까? SNS 팔로잉 버튼은 쉽게 누르면서 누군가를 진짜 따라 하는 것은 왜 어려울까?


남자들은 점점 더 외로워질 것이다. 용기 있는 남자들이 멸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약점을 인정할 수 있는 남자들만의 정서적 공감 능력이 낭비되고 있다. 상대방의 호감을 도출해내는 것들이 아직도 대부분 옷, 차, 아파트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게 아쉽다. 사회에 길들여진 동물이 된다면 주인들의 생각에 갇힐 수밖에 없다.


타인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로 내가 진짜 괜찮아진 적이 있었나. 왜 사소한 고뇌에도 입을 닫는 것이 남자다움의 미덕이 되었나. 어떤 악순환이 남자를 외로움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또, 남자들의 외로움을 포착하기는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서로 대체가 불가능하지만 우린 비슷한 고난을 겪었고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실존적 욕구와 불만, 왜 살아야 하지? 무엇이 나를 살아가게 하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와 같은 것들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고민들이 약점처럼 인식되는 게 문제다. 이것은 약점이 아니다. 독립적인 주체로서 나만의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야생성의 표출이고, 비슷한 독립성 있는 남자들을 끌어들이는 신호다. 약점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고, 내 약점은 우리들의 약점이 되고, 그 약점이 공동체를 한 층 더 위험한 주제를 건드릴 수 있는 안전망과 신뢰가 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리면, 모든 인간이 귀중하다는 인식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런 인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태도를 조성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형이 되어줄 수 있다. 내 약점을 얘기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혼자의 힘으로는 점점 각박해지는 이 미친 세상을 이겨내기 어렵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견뎌야 하고, 오래 견디려면 서로가 필요하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견딜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essay by 이준우

photo by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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