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기능: 통제와 협업, 그리고 사회화
사무실은 우리가 앉아서 머리를 쓰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권력자들만 가질 수 있었던 집무실에서 시작해 컨테이너 벨트처럼 일렬로 죽 늘어선 칸막이 책상들, 그리고 지금의 오픈 데스크형(hot desk) 개방형 사무실까지 말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사무실의 목적이 재정립되고 있다. 대도시 발전에 훌륭한 도시 계획이 뒷받침되었듯, 좋은 사무 공간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성격과 조직의 방향성을 기반으로 계획된다. 그리고 이 계획은 큰 의미에서 사무공간 관리(Office Space Management)라 불리며, 두 가지 기능이 중심이 된다.
1) 통제
사무 공간은 통제의 기능을 수행한다. 과거에는 이 통제의 기능이 단순했다. 먼저 사무실 입구에서 멀리 있지만 입구까지 시야가 확보된 위치에 관리자의 책상이 있다. 거기에 앉은 관리자는 어떤 부하 직원이 지각하는지 볼 수 있다. 또 그 위치에 있으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 혹은 졸고 있는지, 딴짓을 하는지도 알 수 있게 모니터 방향이 관리자를 향해 있기도 한다. 정말 숨이 막히는 사무실 풍경이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판옵티콘 교도소가 떠오른다.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자의 시야 아래에 둘 수 있게 설계된 사무실은 관리의 측면에서 충실했다. 과거의 사무 공간 관리자는 직원 개개인의 행동을 더 많이 통제할수록 총생산성은 높아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소품종 대량 생산 시대의 공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차이점은 폐질환에 걸리는 직원이 없어졌다는 점이랄까. 그 대신 다른 질병들이 생겼다.
2) 협업과 사회화
회사들이 사무실을 구축할 때 챙기는 우선순위 중 첫 번째는 최대로 놓을 수 있는 사무용 데스크 개수이고 그다음이 회의실 개수다. 협업의 과정을 쉽게 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회의실이 만들어졌다. 분업이 강조되었던 대량 생산 체제에서 달라진 것은 직원들에게 창의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영자와 관리자들은 창의력이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 나오는 시너지의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본인 업무만 실수 없이 수행하며 문서화(documentation)만 잘하면 되던 수준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도출해내는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협업 능력은 곧 인사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동시에 사무실은 사회화의 장소로 기능한다.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는 정도의 소속감으론 진정한 협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회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간들의 집합이다. 집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은 학교가 했던 기능을 어느 정도 이어받았다.
회사의 탕비실이 이런 사회화 기능을 중점적으로 수행했다. 물을 마시기 위해 갔다가 냉장고에서 자기의 샐러드를 찾고 있는 동료를 마주치는 경우와 같이 사소하고 시시껄렁한 상황들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서먹하던 동료들과도 한, 두 마디 섞다 보면 친밀함이 생기고 유대감이 형성되는 토대가 된다. 업무와 무관한 공간(복도, 엘리베이터 로비, 계단, 옥상 등)들은 이러한 사회화 기능을 돕는다. 최근의 사무 공간 관리자들은 일반 사무 공간과 이러한 ‘비’사무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공적인 협업과 사적인 사회화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공간과 인권
거북목과 손목 터널 증후군 환자들을 양성했던 책상들이 사라졌다고 사무 공간이 진화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사무 공간은 시대별로 인권이 재조명받을 때마다 유의미한 진화를 이뤘다. 왜냐하면 사무 공간 계획은 인문학적인 관점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문서 작업과 관료주의적인 관리방법은 불필요한 관행들을 낳았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일터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인가 하는 고민은 얼마 되지 않았다. 스마트워크라는 단어가 그 의미대로 쓰이려면 인간에게 집중해야 한다. 요즘 다 쓴다는 생산성 프로그램을 쓰면 만사가 해결될 거라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우리 직원들이 유기적이고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고민할 때다. 좋은 인력을 조직에 수혈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해도 좋고 지금 있는 유능한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회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의 인간에서 존중되어야 할 인간으로 인식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이는 사무공간 관리 관점에 있어 큰 변화다.
훌륭한 사무 공간은 회사의 경쟁력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좋은 정보 기술과 공간 디자인이 절실하다.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도입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권한과 자유가 직원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그래야 더 높은 수준의 창의성과 협업을 기대할 수 있다. 직원은 흐르는 유기체다. 과거의 방법대로 가둘 수는 있겠지만 흐르게 해야 썩지 않고 다양한 생태계가 생겨날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좋은 사무 공간이란 직원들을 담는 하나의 작은 생태계다.
essay by junwoo
photo by Nejc Sokl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