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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준 Nov 20. 2021

취약성에 관하여

[이형준의 모티브 125]

처음에는 말을 안 하려고 했다. 건강 확인차 진행했던 내시경 결과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 의사는 기존 자료를 쭉 보여주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조직검사 결과 암이라고 말했다. 그냥 띵한 느낌.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일단은 내시경 시술로 제거해 보자는 말에 날짜를 잡고 나왔다.

 

아내에게 전화로 말했다. 처음에는 믿지를 않다가 일단은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양측에 어른들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 끝나고 하기로 했다. 회사 동료들에게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괜히 나 때문에 흔들리거나 걱정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막상 입원까지 두 달여간의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그동안 암세포가 얼마나 커질지 모르니까.

 

수요일에 입원해서 하루 금식을 하고 다음날 수면내시경으로 진행을 하기로 했다. 원래는 오전이었던 시간이 오후로 미뤄졌다. 2시쯤 들어갔다가 5시 정도가 되어서 나왔다고 한다. 의사의 설명을 들었던 아내 말로는 시술하는 위치가 위의 위쪽이라 내시경으로 작업하기가 어렵고, 시술 부위가 넓어 시간이 걸리고, 혈관이 지나가는 곳이라 계속 출혈이 있어 지혈하면서 잘라내다 보니 늦어졌다고 한다. 환자복에는 혈흔이 묻어있고, 왼쪽 어깨와 갈비뼈 주위 근육이 아프다.

 

그래도 결과는 좋다고 하니 안심할 수 있었고, 잘 되었는지 다음날 확인 내시경을 한번 더 하자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다음날 확인을 통해 잘 되었다고 푹 쉬고 월요일날 퇴원하자고 하셨다. 핸드폰에 아이패드까지 챙겨갔지만 사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팔에는 계속 링거를 꼽고 있으니 침실에서는 누워있게만 된다.

 

퇴원이 늦춰지면서 일요일에 줌으로 하기로 한 약속이 걸렸다. 정말 오랜만에 친한 동생들과 하는 미팅인데 나 때문에 미루기가 그랬다. 일요일 조용한 아침 창밖이 보이는 휴게실 소파에 앉아 줌 미팅에 비디오를 끄고 참여했다. 내 상황을 짧게 말하니 미국에 있는 아끼는 동생이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나에게 위로를 전한다. 그 순간 나도 뭉클했다. 그리고는 속에 담겨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고선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연락이 닿는 지인들에게는 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월요일에 퇴원을 하고, 화요일 출근해 일을 보고, 수요일 고객사에 파일럿 프로젝트를 하러 갔다.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미리 진행해보는 중요한 자리라 피하거나 연기할 수가 없었다. 6시간 동안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죽으로 저녁을 먹고 쉬려는 데 왼쪽 어깨에 통증이 크게 느껴졌다. 내시경을 여러 번 길게 진행해서 생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진통제를 달라고 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고 답답하면서 열이 올랐다. 입고 있던 바지를 벗으려는데 온몸에서 식은땀이 쭉 흘렀다. 진통제를 못 먹을 것 같고, 화장실로 가려고 한다니 아내가 왼팔을 잡아주며 부축을 해준다.

 

화장실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아내는 자신의 팔에서 내가 풀려나가며 쓰러지는 느낌을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아내는 순간 정신을 잃은 나를 깨웠고 바로 정신이 들었는데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식탁에서 밥을 먹던 아이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내가 토할 것 같다니 쟁반을 가져와 입 앞에 바쳤다.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었는데 빨간 피로 덮여 먹었던 것이 다 올라왔다.

 

아내가 병원에 상황을 설명하고 응급실로 가기로 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 옆에 앉아 수술했던 병원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고 또다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왼손 검지에는 혈압계를 끼고 오른팔에는 링거 주사를 꼽고 온갖 검사를 받았다. 응급실의 밤은 전쟁터다. 여기저기서 통증을 호소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피검사를 하느라 왼팔, 오른팔에 오른쪽 발까지 내주었는데 계속 찌르는 바늘이 고통스럽다. 밤새 의료진 요구에 이것저것 확인하고 챙겨주느라 잠도 못 자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다음날 아침 다시 긴급으로 내시경술을 하게 되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로는 워낙 시술한 범위가 넓고 혈관이 많은 곳인데, 몸에 무리가 와서 출혈이 생긴 것 같지만 토한 양에 비해 출혈이 생긴 부위는 크지 않았고, 잘 마무리했다고 한다. 특히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추가 수술이나 항암치료가 필요할 것 같지 않으니 다시 잘 쉬고 토요일에 퇴원하라고 한다. 순간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몸이 나의 생각을 잘 따라줘서 한 번도 나의 몸을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몸을 잘 챙겨줘야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퇴원을 할 때 보니 첫 번째 퇴원했을 때는 체력이 기존 몸의 70퍼센트 수준이라면, 두 번째는 30~40퍼센트 수준에 피로도가 더 크게 느껴졌다.  왠지 더 솔직해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취약점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집안 사업이 잘 안되어서 갑자기 산동네 작은 집으로 이사 갔던 기억도 나고,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도 떠올랐다. 왠지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싫었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씩씩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게 그런 기억들을 창피해했었던 것 같다. 믿는 사람 이외에 그런 이야기를 알리는 것이 나에게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숨겨왔던 나의 병명도, 나의 상태도 물어보면 솔직하게 답변한다. 그리고는 온전히 전해주는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나의 힘듦을 설명하니 더욱더 나를 챙겨준다. 꽃을 전해주는 팀원도 있고, 몸에 좋은 차를 선물해 주기도 한다. 마음을 담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맙다. 아내는 도시락으로 죽을 싸주며 더 자주 연락하고 신경 써준다. 저번 주 일요일에는 성당을 간다고 하니 잠자던 아이가 일어나 같이 가겠다고 나선다. 평소 손을 잡고 걷던 아이가 팔짱을 껴준다. 나를 더 챙겨주고 싶어 하는구나 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을 드러내니 사람들이 아껴준다. 사랑을 돌려준다. 그간 내가 오해를 했었던  같다. 사람은 무조건 긍정적이고, 좋은 면만 보여주는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아플  아프다고, 힘들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사랑하는 이의 말과 눈빛, 행동을 받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몸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지만, 마음은 행복하다.  약한   나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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