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CMH Oct 19. 2023

노란 꼬순내 #2

노란 동생

병아리와 나는 집에 오자마자 날카로운 소리에 움츠러든다.


엄마의 잔소리가 랩의 시작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갑작스러운 병아리 동생의 출현에 엄마가 마음에 준비가 안 되었나 보다. 삐약되는 병아리의 소리에 쫒겨날 위기를 넘길 방법을 생각해 본다. 모든 엄마들이 들으면 거부할 수 없는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역시 배고프다는 말은 모든 새끼를 가진 엄마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병아리가 집에 입성했다. 분명 사람처럼 먹는 건 아닌데 고민이 된다. 무얼 먹고 사는지 목욕은 자주 하는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8살 인생에 최대의 고민이다. 우선 급한 데로 엄마에게 물어본다. 


으깬 흰쌀에 물을 먹여본다. 편식 없이 잘 먹는다. 예쁘다. 쪼아 먹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콕콕 소리를 내면서 부지런히 먹는다. 한참 동안 병아리가 먹는 걸 지켜보니 뭔가 뿌듯 함이 느껴진다. 내가 밥 먹을 때도 엄마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지금 나의 5살 아들이 밥 먹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모든 새끼는 밥 먹을 때가 제일 예쁜 것 같다. 


이름은 삐약이로 지었다. 삐약이는 씩씩했다.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나도 그랬으니 이해해 주자.

돌아다니면서 작은 응가도 많이 싼다. 응가 닦느라 정신이 없다. 삐약이는 신기하게도 응가를 싸고 나면 엉덩이에 응가 묻은 흔적이 없다. 응꼬를 닦아 주려고 봐도 없다. 뭔가 어른 같다.


잠들 시간이 되자 삐약이랑 같이 이불을 덮고 잘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엄마랑 떨어져서 잠들어서 인지 삐약이도 혼자 자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날은 노숙자처럼 신문을 깔고 하얀 휴지를 덮어 주었다.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든다.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타 다다닥" 소리가 들려온다. 삐약이도 엄마한테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고 교육받은 듯하다.


오늘은 삐약이 집을 만들어 줘야 한다. 설계와 시공은 엄마한테 외주를 줬다. 보상으로는 밥을 잘 먹기로 했다.

삐약이 하우스는 대기업에서 협찬받은 듯했다. 라면을 한 박스 사셨나 보다.

라면 박스가 삐약이 하우스다. 집이 마음에 드는지 삐약삐약 된다. 푹신하고 따뜻하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볼 수 있는 신문을 깔아준다. 


삐약이는 밤새 울어 댄다. 엄마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더 이상 울어 대다가는 베란다로 쫓겨 날 위기이다. 쓰담쓰담해본다. 조용해졌다. 삐약이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가 보다.

일단 우리 엄마를 불러 본다. 왜 이리 삐약 되는지 금방 민원이 해결되었다. 난방시설에 문제가 있었던 거 같다.삐약이 집에 백열등 온기가 채워지자 금세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아침이 찾아왔다. 삐약이는 꿀잠을 잔 것 같은데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좁쌀을 넣어 주자 달려든다.

배 고파서 힘이 없었나 보다. 특식으로 뻑뻑한 계란 노른자를 준다. 삐약이는 잘 먹는다. 온몸에 다 묻히고 먹는다.


너무 더러워져서 엄마가 나에게 목욕을 시켜 주듯이 나도 삐약이를 목욕시켜 준다. 목욕을 하기 싫어서 인지 도망 다니고 소리 지르고 난리다. 막상 따뜻한 물에 들어간 삐약이는 목욕탕에서 본 어른들 표정을 하고 있다. 너무 오래 목욕하면 엄마한테 혼날 거 같으니 서둘러 목욕을 끝낸다.

수건과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준다. 다시 노랗고 뽀송한 털이 살아 난다. 털 말린 때는 얌전하다.


다음날 삐약이가 시름시름 아프다. 잘 먹지도 않고 뛰어놀지도 않는다.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병아리 감기약은 없는데 큰일이다. 아픈 삐약이를 지켜만 봐야 하는 현실이 힘들다.

다시 일어나라고 뽀뽀를 해준다. 뽀뽀를 해주면서 느껴지는 노란 꼬순내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지막 뽀뽀였다.

삐약이는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차갑게 식어버렸다. 더 이상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왠지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 삐약이를 보내 줘야 한다.


아파트 공원에 예쁜 단풍나무 밑에 묻어 주기로 했다. 작은 손으로 땅을 판다. 차갑다. 땅속은 더 차갑다. 하늘나라로 떠난 삐약이를 차가운 땅속으로 보낸다는 생각에 또 눈물이 난다.

삐약이를 땅 속에 눕혀보니 삐약이가 왠지 미소 짓는 것 같다. 미안해 삐약아. 흙을 덮어 준다. 삐약이가 하늘 나라로 떠났다.

그 후로 가끔 삐약이가 있는 단풍나무에 인사를 하러 갔다.


35년 전 삐약이는 나를 잊었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노란 꼬순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