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의 경계가 사라질 때, 돈은 더 빠르게 흐른다

by 심준규 Jace Shim

블록체인 세계에는 오랫동안 하나의 모순이 존재했다. 탈중앙화를 지향하면서도 각각의 네트워크는 철저하게 폐쇄적이었다. 이더리움에서 발행된 자산은 이더리움 안에서만 존재했고, 솔라나의 자산은 솔라나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들이 각자의 국경 안에서만 거래하는 것과 같은 구조였다.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은 이 경계를 허무는 기술이고, 유통사 주도 스테이블 코인이 진정한 범용 결제 인프라로 진화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다.


왜 하나의 체인으로는 충분하지 않은지부터 짚어야 한다. 이더리움은 검증된 보안성을 갖추고 있어 수십억 원 규모의 B2B 대금 정산에 적합하지만, 거래 수수료가 높고 처리 속도가 느려 편의점 결제 같은 소액 B2C 거래에는 맞지 않는다. 반면 솔라나나 이더리움 레이어2 네트워크는 초당 수천 건의 거래를 낮은 수수료로 처리할 수 있어 소액 결제에 최적화되어 있다. 유통사가 B2B와 B2C를 동시에 커버하려면, 단일 체인을 고집하는 순간 어느 한쪽에서 반드시 비효율이 생긴다.


내부 공급망 데이터를 다루는 환경은 또 다르다. 거래처 정보, 물류 동선, 재고 데이터처럼 외부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민감한 정보는 퍼블릭 체인이 아닌 기업 전용 프라이빗 체인에서 처리해야 한다. 결국 유통사 주도 스테이블 코인은 퍼블릭 체인과 프라이빗 체인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어디서나 동일한 가치를 보장하는 단일 유동성을 유지해야 한다. 멀티체인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체인 간 자산 이동의 핵심 기술은 브릿지(Bridge)다. 초기 브릿지는 A체인의 자산을 잠가두고 B체인에서 동일 수량의 자산을 발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잠긴 자산이 한 곳에 집중되면서 해커의 표적이 되었다. 2022년 로닌 브릿지 해킹으로 약 6억 달러가 탈취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구조적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CCTP(Cross-Chain Transfer Protocol)다.

CCTP의 작동 원리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소스 체인에서 코인을 소각(Burn)한다. 둘째, 발행사가 해당 소각 사실을 확인하고 디지털 서명을 생성하는 증명(Attestation) 단계를 거친다. 셋째, 대상 체인에서 동일한 수량의 코인을 새롭게 발행(Mint)한다. 자산이 어딘가에 잠겨 있지 않으므로 탈취할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 과정에서 코인의 총 발행량은 변하지 않고, 사용자는 어느 체인에 있든 1:1 가치를 보장받는다.

여러 체인을 동시에 운영할 때 실무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유동성 파편화다. A체인에 1,000억 원어치 코인이 있고 B체인에 500억 원어치가 있다면, 각 체인의 코인 발행량과 그에 대응하는 준비금이 항상 일치해야 한다. 어느 한 체인의 발행량이 준비금을 초과하는 순간, 그 코인의 신뢰는 무너진다. 체인별 발행량과 국채 준비금을 실시간으로 통합 대조하는 관리 대시보드는 상호운용성 실무의 필수 인프라다.


가스비 추상화, 즉 페이마스터(Paymaster) 설계도 실무에서 빼놓을 수 없다. 사용자가 이더리움에서 솔라나로 자산을 이동할 때, 이더리움 수수료는 ETH로, 솔라나 수수료는 SOL로 각각 따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 기본 구조다. 사용자가 두 가지 네이티브 토큰을 미리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UX를 복잡하게 만든다. 유통사가 이 수수료를 스테이블 코인으로 대신 받아 처리해 주면, 사용자는 단일 자산만으로 멀티체인 환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전략적 관점에서 상호운용성은 유통사에게 협상력을 부여한다. 특정 네트워크의 수수료가 폭등하거나 기술적 결함이 발생해도, 유동성을 즉시 다른 체인으로 옮겨 비즈니스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어느 한 네트워크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네트워크와의 관계에서 항상 선택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글로벌 파트너사들이 서로 다른 기술 환경을 사용하더라도,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공통 언어로 장벽 없이 연결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상호운용성은 스테이블 코인에 자유로운 이동권을 부여한다. 체인의 경계가 사라질수록 자본의 흐름은 빨라지고, 유통망의 디지털 영토는 넓어진다. 기술의 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비즈니스가 확장될 수 있는 반경도 그만큼 커진다.


핵심 키워드: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멀티체인(Multi-chain), CCTP(Cross-Chain Transfer Protocol), 브릿지(Bridge), 소각/발행(Burn/Mint), 단일 유동성, 유동성 파편화, 페이마스터(Paymaster), 가스비 추상화, 비즈니스 연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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