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의 숨겨진 비용,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정산 혁명

by 심준규 Jace Shim

유통업계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존재한다. 물건이 팔리는 순간과 실제 돈이 납품업체 계좌에 입금되는 순간 사이의 시간차가 만드는 비용이다. 백화점 매장에서 오늘 옷이 팔렸다 해도, 의류 제조사가 대금을 받기까지 평균 30일에서 60일이 걸린다. 납품업체들은 이 기간 동안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연 10~15%의 고금리 대출이나 팩토링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이 금융비용은 결국 제품 원가에 반영되어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린다.


스테이블코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비용'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인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영업시간이나 국경의 제약 없이 24시간 실시간 송금이 가능하다. 최근 아마존이 현대차 판매 플랫폼을 개설하며 PayPal USD(PYUSD)나 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 결제 옵션을 검토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가 자동차를 구매하는 순간,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대금이 자동으로 분할되어 현대차 본사·딜러사·물류업체에 실시간 정산되는 구조다.


전통적인 공급망 금융(SCM Finance)에서 가장 큰 병목은 정산 주기였다. 대형 유통사들은 협상력을 바탕으로 납품대금 지급을 최대한 늦추고, 중소 납품업체들은 그 기간 동안 운전자본 부족에 시달렸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시스템은 이 권력 비대칭을 기술적으로 해소한다. 이마트나 이랜드 같은 유통 대기업이 동남아시아에서 의류나 식자재를 수입할 때, 물품이 항구에 도착해 RFID 검수가 완료되는 순간 자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송금되는 방식이다.


해외 송금의 경우 기존 은행 시스템에서는 35일이 소요되고 수수료도 송금액의 23%에 달했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송금 시간은 수 초로 단축되고, 수수료는 0.1% 이하로 낮아진다. 2026년 현재 글로벌 결제 플랫폼 Rapyd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한 기업의 41%가 최소 10%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단순히 송금 수수료 절감을 넘어 운전자본 회전율이 개선되면서 전체 자금 효율성이 높아진 결과다.


기술적으로 살펴보면 유통업에 적합한 블록체인 인프라가 따로 있다. 솔라나(Solana)나 수이(Sui) 같은 고성능 레이어1 블록체인은 초당 수만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어, 대형 유통망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소액 결제를 감당할 수 있다. 이더리움 기반 레이어2 솔루션들도 가스비를 대폭 낮춰 실용성을 확보했다. 특히 영지식증명(ZKP) 기술을 활용하면 거래 금액이나 품목 같은 민감한 영업정보는 비공개로 유지하면서도, "정당한 거래가 완료되었다"는 사실만 블록체인에 기록해 대금을 자동 지급할 수 있다.


투명성 확보도 중요한 장점이다. 모든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에 기록되므로 허위 청구나 이중 정산 같은 오류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대형 유통사와 납품업체 간의 정산 분쟁은 업계의 고질적 문제였는데, 스테이블코인 기반 자동 정산 시스템에서는 누구나 거래 기록을 검증할 수 있어 분쟁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회계 감사 비용도 크게 줄어드는 부수적 효과가 있다.


재고관리 측면에서도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JIT(Just-in-Time) 방식은 필요한 시점에 맞춰 부품이나 원자재를 공급받는 생산 효율화 전략이었다면, 스테이블코인 시대의 JIT는 '정시 자금 공급(Just-in-Time Funding)'으로 진화하고 있다. 재고가 입고되는 순간 대금이 정산되므로, 공급업체는 다음 생산을 위한 자금을 즉시 확보할 수 있다. 재고가 곧 현금이 되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결제 속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기업의 재무구조 자체를 바꾼다. 운전자본에 묶여 있던 자금이 유동화되면서 기업들은 더 공격적인 투자나 신제품 개발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중소 납품업체들은 대기업의 긴 정산 주기에 휘둘리지 않게 되면서 협상력을 회복하고, 전체 공급망이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로 변화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비즈니스 관계의 균형을 되찾게 하는 인프라인 셈이다.


물론 기술 도입에는 과제도 있다. 기존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과 블록체인을 연동하는 통합 작업이 필요하고, 직원들의 교육도 선행되어야 한다. 규제 불확실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2026년 현재 미국에서 논의되는 GENIUS Act 같은 스테이블코인 규제 프레임워크가 마련되면, 제도적 기반 위에서 더 빠른 도입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미 싱가포르·홍콩·UAE 같은 국가들은 스테이블코인 친화적 규제를 통해 유통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결국 2026년의 유통 경쟁력은 '얼마나 싸게 파느냐'보다 '자금을 얼마나 빠르게 순환시키느냐'의 싸움이 되고 있다. 정산 지연이라는 혈전을 제거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유통업계의 판도를 바꿀 가장 강력한 도구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왜 아직도 은행 송금으로 정산하느냐"는 질문이 "왜 아직도 팩스를 쓰느냐"는 질문만큼이나 구시대적으로 들릴 날이 올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SCM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


핵심 키워드: 스테이블코인, 공급망관리(SCM), 실시간정산, 운전자본, 유통혁신, 스마트컨트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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