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뒤에 숨어있는 10%

by 심준규 Jace Shim


페이팔이 PYUSD를 출시하고, 리플이 RLUSD로 국제 송금 시장에 뛰어들며,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이 USD1을 선보이는 이면에는 단순한 기술 혁신 이상의 계산이 있다. 빅테크와 금융 플랫폼들이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사활을 거는 근본적인 이유는 약 10%에 달하는 거대한 경제적 마진에 있다. 결제 편의성이나 블록체인 기술 도입이라는 표면적 명분 뒤에는 기존 금융 중개 구조를 우회하며 확보하는 막대한 수익 구조가 숨어 있다.


먼저 결제 수수료 절감 효과를 보자. 현재 신용카드 결제 시 가맹점이 부담하는 수수료는 평균 23%대지만, VAN사와 PG사를 거치며 실질적으로 45%의 비용이 발생한다. 스테이블 코인 기반 결제는 중간 금융 기관을 제거하고 블록체인 네트워크 수수료만 지불하면 되므로 거래당 0.10.5% 수준으로 비용이 급감한다. 연간 거래액이 수조 원에 달하는 대형 플랫폼 입장에서 34% 절감 효과는 곧 순이익 증가로 직결된다.


더 주목할 부분은 플로트(Float) 수익이다. 고객이 플랫폼 내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보유하는 동안, 발행사는 동일 금액만큼 보유한 담보 자산에서 이자 수익을 얻는다. 테더의 경우 2024년 상반기에만 담보 자산 운용으로 약 52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도 '고객 예치금'만으로 수익을 창출한 셈이다. 미국 단기 국채 금리가 5% 수준일 때 1,000억 달러 규모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면 연간 50억 달러의 이자 수익이 자동 발생한다.


이는 금융업의 본질을 보여준다. 은행이 예금을 받아 대출하며 예대마진을 챙기듯,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고객 자금을 안전자산에 운용하며 금리 수익을 가져간다. 차이가 있다면 은행은 예금자에게 이자를 주지만, 대부분의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보유자에게 아무런 이자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등장한 수익형 스테이블 코인들이 연 4~6%의 이자를 제공하며 주목받는 배경도 여기 있다.


공급망 관리(SCM) 측면에서도 혁명적 변화가 가능하다. 전통적인 B2B 거래에서 대금 정산은 평균 30~60일이 소요되며, 중소 협력사들은 외상 매출금 회수 지연으로 만성적인 현금 흐름 문제를 겪는다. 스테이블 코인과 스마트 계약을 결합하면 물품 인도 확인과 동시에 대금 지급이 자동 실행되는 실시간 정산이 구현된다. IoT 센서가 컨테이너 도착을 확인하면 즉시 블록체인상에서 대금이 이체되는 식이다.


정산 주기 단축은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재무 구조 개선으로 이어진다. 중소 협력사 입장에서는 운전자본 부담이 줄어 은행 차입 필요성이 감소하고, 대기업 입장에서는 공급망 전체의 유동성 리스크가 낮아진다. 2023년 월마트가 블록체인 기반 공급망 금융 시스템을 도입한 배경도 협력사들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며 생태계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데이터 주권 관점에서 보면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는 더욱 명확해진다. 현재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는 카드사가 독점하며, 가맹점은 자체 고객의 소비 패턴조차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자체 스테이블 코인을 운영하면 모든 거래 데이터가 플랫폼에 귀속되어 초개인화 마케팅, 재고 예측, 가격 최적화에 활용 가능하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결제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수수료 절감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경쟁력 강화에 있다.


에이전틱 커머스(Agentic Commerce)라는 미래 시나리오도 주목할 만하다.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최적 상품을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하며 자동으로 구매하는 시대가 오면, 기계 간 거래(M2M)를 위한 표준 결제 수단이 필요하다.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는 인간 중심 인증 구조라 AI 에이전트가 사용하기 어렵지만, 스테이블 코인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화폐로서 자동화된 거래에 최적화돼 있다.


구글 어시스턴트가 냉장고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우유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마트에 주문하고 스테이블 코인으로 결제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인간의 개입 없이 기계끼리 거래하는 경제에서 즉시 결제 가능하고 프로그래밍 가능하며 국경 없이 작동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사실상 표준 화폐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은 사실상 은행 기능을 내재화하는 것과 같다. 고객 자금을 예치받아 운용하고, 결제 인프라를 제공하며, 금융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다만 은행처럼 엄격한 자본 규제나 예금자 보호 의무를 지지 않으면서 금융업의 핵심 수익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 차익이 존재한다.


물론 리스크도 명확하다. 규제 강화로 은행 수준의 자본 요건이나 소비자 보호 의무가 부과되면 수익성이 급감할 수 있다. 유럽의 MiCA 규제나 미국에서 논의 중인 스테이블 코인 법안은 모두 발행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담보 자산 운용에서 손실이 발생하거나 은행 시스템 불안이 전이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형 플랫폼들이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적극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10% 수준의 직접적 수익 개선 효과, 공급망 전체의 효율성 향상, 고객 데이터 완전 장악, 미래 자동화 경제에서의 선점 효과가 결합된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단순히 새로운 결제 수단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아마존이 물류 네트워크를 직접 구축하며 배송비를 줄이고 고객 경험을 통제한 것처럼, 스테이블 코인은 결제 인프라를 내재화하며 금융 중개 비용을 제거하고 데이터를 장악하는 도구다. 유통사나 제조사에서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단순한 기술 요소가 아니라 생태계 지배력을 결정하는 전략 무기가 된다. 결국 미래 경쟁 구도는 누가 더 효율적인 결제 레일을 구축하고 그 위에서 금융 수익을 창출하느냐로 판가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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