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수림 Sep 06. 2021

고시생의 밥상

 어쨌거나 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것은 고시생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언어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시생→인간 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이나 그들은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자조하는 경우가 잦았으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끔 밥이나 먹자는 의미에서 '우리도 사람인데 먹으면서 합시다.'라고 운을 띄우면 '림아. 고시생은 사람이 아니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시생 유머는 대게 이런 식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식사를 거르는 경우는 없었다. 식사는 우리 내의 삶 속에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다. 고로 우리에게 식사는 단순한 영양섭취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것은 생명체가 광합성을 포기하고 포식(食)을 선택한 이래로 멈추지 않았던 유구한 질문이다.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그 질문 속에서 포류 했다. 무언가를 먹어야만 하지만 공부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식사의 기쁨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특정 영양소(주로 지방과 탄수화물)에 너무 치우쳐서도 안 된다. 최적화 문제 속에서 고려해야 할 제약식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각자의 효용 함수가 다른 꼴이었므로 도출되는 결론 역시 각색이었다. 대부분의 고시생들은 적당히 타협하여 '고시식당 월식'에 도달했다. 남자 고시생의 경우 주 14번의 식사(그들은 대게 아침식사를 건너뛴다)를 돈가스와 제육볶음으로만 구성하기도 하였다. 주에 적어도 5일은 돈가스집만 다니던 선배에게 '질리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선배는 '튀긴 돼지고기는 언제 먹어도 좋다.'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던 그는 합격 이후 SNS에 소고기와 초밥 사진을 주기적으로 올렸다. 결국 그의 선택 역시 보편타당한 해답이 아닌 특정 조건 속에서의 결론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돼지에게 비보(報)였을까 낭보(報)였을까.


 고시 합격은 재능도, 노력도 아닌 성격의 문제라는 말이 있다. 기똥차게 똑똑하거나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무던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잘 견디는 사람이 합격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과도한 일반화를 거친 말이지만 어느 정도 폐부를 찌르는 점이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기질을 지닌 나에게 이 말은 두고두고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야 하루 종일 오늘 뭐 먹지, 내일 뭐 먹지 따위를 생각하는 고시생은 나뿐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합격이 성격의 문제라면 나는 진입 이전부터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형편이었다.  


 그렇다면 이 글은 무엇인가. 한 강사는 글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답안지는 문제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가진 질문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이므로 이 글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글인가? 그것은 아니다. 이 글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과정 혹은 결과를 기록하는 것에 가깝다.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쥐면서도 끝끝내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글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의 취향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버둥거렸고, 다채로운(고시생 치고는) 식사는 결과물이다.


 결국 먹고사는 일을  쓰고자 한다. 고시생이 먹고사는 이야기. 진심으로 말하건대 이 과정에서 합불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것은 합격생과 불합격생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