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감춰진 보고서

by J이렌


그날 저녁, 다니엘은 Danny와 함께 피어 근처에서 만났다.

Lily가 떠난 이후, 두 사람이 밖에서 단둘이 만난 건 처음이었다.

“계속 보고 계시죠?”

Danny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근데 이제, 그냥 지켜보는 걸 넘어서야 할 것 같아.”

다니엘은 작게 대답했다.

“Altavia와 Syntellis, 그리고 Lusian. 셋 다 같은 흐름을 공유하고 있어. 청구 주기, 금액, 승인 루트.”

“그리고, 결제 타이밍도.”

Danny가 덧붙였다.

“나도 시스템 로그 봤어. Vicky가 직접 만든 트랜잭션, 몇 개 있어.”

“봤어?”

“응. Bill이 만든 줄 알았는데, 실제 생성자는 Vicky야. IP 로그가 다르더라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Lily가 남긴 로그 중에 그런 게 있었어. ‘어떤 사람들은 직접 싸우지 않는다. 대신 유령처럼 움직인다.’”

Danny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숫자로 그 유령들을 드러내야지.”

다니엘은 미소도 없이 말했다.

“우린 그걸 할 수 있어. 누구보다 조용하게, 누구보다 명확하게.”

회사 내부에는 이미 소문이 돌고 있었다.

“누가 감사팀에 뭐 넘긴 것 같아.”

“이번 달은 회계팀에서 잘린다더라.”

“비키가 모르는 건 없대.”

“아냐, 비키도 뭔가 쫓기고 있대.”

소문 속 유령은 누구였을까.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그 유령은 숫자였다.

그리고, 그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 그들 모두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감사용 문서를 하나 더 정리했다.

파일명: GhostPattern_Rev1.xlsx

요약:

① 인사기록 없는 계약직 이름 12명

② 동일 계좌 사용 회사 3곳

③ 시스템 생성자: Vicky

④ 승인자: Otterlim

⑤ 반복되는 월말 처리 로직

파일 마지막 셀에, 다니엘은 조용히 한 문장을 남겼다.

“숫자는 유령보다 무섭다. 숫자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 아침, 비키의 눈빛이 흔들렸다.

감사팀이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Daniel, 우리... 회계 감사팀이랑 별도로 다시 회의를 잡으래요.”

그날 아침, 회의 일정 알림이 떴다. 보낸 사람은 Vicky였다.

제목은 간단했다.

"FY24 Q1 정기 점검 – InQComm 관련."

InQComm.

그 이름은 이제 다니엘에게 단순한 정부 파트너가 아니었다.

‘숫자 너머의 문장들’이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었고,

‘보이지 않는 계정’ 또한 그 이름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마자 다니엘은 느낌을 받았다.

Otterlim, Vicky, 그리고 Bill까지 참석해 있었다.

감사팀은 없었다.

“Daniel,” Otterlim이 먼저 입을 열었다.

“최근 InQComm 관련 프로젝트에서 중복 분석 문서를 제출하셨더군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고, 부드러웠다.

위협적인 온기 없는 부드러움.

“비공식 파일입니다. 감사팀의 요청으로 참고용 분석 자료를 제공한 것이고, 내부 승인은 아직—”

“그 분석은 불필요했어요.” Vicky가 끼어들었다.

“이미 승인된 거래였고, 감사팀에서도 이견은 없었죠.”

다니엘은 차분히 응수했다.

“그런데··· 감사팀에서 직접 연락해 왔습니다. ‘거래 반복성이 비정상적’이라는 표현과 함께요.”

Bill이 그제야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Daniel, 그건 단순한 타이밍 이슈예요. 우리가 월말 일괄 처리하는 바람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에요.”

“그럼 왜 Altavia, Syntellis, Lusian — 세 벤더의 청구 주기가 정확히 같은지 설명해 보시겠어요?”

다니엘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Vicky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Otterlim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Daniel,” 그가 다시 말했다.

“우린 지금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ERP 시스템도 도입될 예정이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불신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럴 때일수록 팀워크가 중요하죠.”

팀워크.

다니엘은 그 단어를 삼켰다.

팀워크란 무엇인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위해 싸우는 것인가.

회의는 어정쩡하게 끝났다.

하지만 다니엘은 알았다.

이건 경고였다.

그리고 동시에, 방어선이었다.

그날 저녁, 다니엘은 회계 시스템의 백업 서버에 접속했다.

과거 감사용 드라이브, 숨겨진 한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InQComm_Partnership_Revenue_Share_v.3 (작성자 미상)

파일을 열자, 페이지 하단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Sharon Palantella to receive 17.25% margin from Phase II expansion.”

“Approval signed: Otterlim / Forwarded via V.R.”

다니엘은 마우스를 멈췄다.

V.R. — Vicky R.

그녀는 화면을 복사해 외장 디스크에 저장했다.

그리고 문서 하단에 메모를 남겼다.

“This is not just inefficiency. It’s orchestration.”

“이건 구조적 비효율이 아니다. 구조된 의도다.”

다음날 아침, 다니엘은 감사팀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Daniel, 이 내용은 공식 회의록에 포함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부 추적은 계속 진행합니다.

어떤 경로든, 진실은 드러날 겁니다.”

그녀는 컴퓨터 화면을 닫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 이제 곧 진실이 숫자로 말하기 시작할 거야.”

Bay Bridge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다니엘은 오늘도 마지막 퇴근자였다.

숫자는 말이 없지만, 더 깊이 기억했다.

그리고 곧, 그 숫자가 그들의 모든 거짓을 삼켜버릴 것이다.


**. 비키의 반격


“Daniel, 혹시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요?”

Vicky의 메시지는 짧았지만, 그 안엔 익숙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공손한 문장, 강요는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말투.

다니엘은 잠시 화면을 응시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네. 오후 12시 15분 괜찮습니다.”

비키는 샌프란시스코 본사 5층 라운지로 장소를 정했다.

평소처럼 세련된 블라우스, 날렵한 실루엣의 재킷, 단단하게 고정된 미소.

“요즘 여러 프로젝트 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첫마디는 상냥했지만, 다니엘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비키의 대화는 늘 그렇게 시작된다 — 칭찬, 그리고 의도.

“조금요. 감사 준비 때문에요.”

비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은 인사 구조와 관련해서 몇 가지 의견을 나누고 싶었어요.”

다니엘은 조용히 기다렸다. 결국 나올 이야기를.

“앞으로 우리 팀, 특히 Accounting 쪽은 좀 더 유연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문화와 창의성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그 말은 곧, “당신은 구시대 사람이고, 난 새로운 판을 짜겠다”는 뜻이었다.

“Bill도 꽤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적응했고, 리더십도 보여주더라고요.”


다니엘은 침묵했다.

“아, 그리고 다음 분기부터는 팀 재배치가 있을 예정이에요.

AP와 Accounting 팀을 통합 운영하는 모델을 고려 중이고요.

기존 프로세스에서 약간 벗어난 흐름일 수도 있지만, CFO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계세요.”

그날 오후, 팀 전체에게 한 통의 공지 메일이 발송되었다.

제목: "FY Q2 Finance 조직 개편 예고"

“Accounting / AP / FP&A 팀의 통합 운영을 위한 사전 준비가 시작됩니다.

리포트 라인과 승인 프로세스 변경 가능성에 대해 대비 부탁드립니다.”


다니엘은 메일을 읽고 잠시 숨을 멈췄다.

이건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었다.

‘리포트 라인 변경’이라는 말은 곧, 자신이 릴리처럼 제거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날 저녁, Danny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Vicky가 회계 승인 라인 새로 짜고 있다는 얘기 들으셨어요?”

“응.”

“새 리포트 라인에 Daniel 이름이 빠졌대요.”

다니엘은 바로 시스템에 로그인해 팀 인사 데이터 접근 로그를 확인했다.

Vicky의 계정으로 최근 승인된 인사 변경 요청이 네 건.

그중 두 건은 FP&A 팀과 관련된 시스템 권한 재설정.

그리고 하나는, Daniel Han 계정에서 승인 권한을 제거한 요청.

사인자: Vicky R.

승인자: Otterlim

그 순간, 다니엘은 확신했다.

Vicky는 반격을 시작했다.

그녀는 다니엘의 숫자를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조직 구조를 무기로 삼았다.

그리고 이제, 장부 위 전쟁의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고 있었다.


** 리포트 선 긋기


"앞으로 모든 보고는 Finance Head에게 바로 전달해 주세요."

비키는 회의 도중 아무렇지 않게 그 한마디를 던졌다. 다니엘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회계팀장으로서 지난 2년간 팀의 모든 보고서를 검토하고 승인해 온 자신에게, 이제 팀원들이 직속 보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죄송한데, 그건 기존의 조직 구조와 좀 다른데요,”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키는 짧은 침묵 끝에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조직 구조는 유동적이에요. 지금은 변화의 시기고, 우리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효율성.’

또 그 단어였다.

오터림이 입사 첫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구조적인 비효율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언제나 ‘기존 체계 해체’를 의미했다.

그 해체의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도, 다니엘은 이제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회계팀장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되죠?”

비키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조정과 지원이요. 실제적인 관리보다는 방향 제시와 서포트 역할이 중요하죠.”

그 순간 다니엘은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었다.

자신을 명목상의 책임자로 격하시키고, 실권을 빼앗는 과정이었다.

존재하지만 영향력은 없는 그림자. 그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새로운 위치였다.

최근 들어 팀원들의 반응은 달라졌다. 누군가는 말을 아꼈고, 누군가는 결재선을 바꾸어가며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표면상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알고 있었다. 팀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니엘은 퇴근 후 다시 시스템에 접속했다.

인사 변경 로그와 승인 계정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업무 분장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시스템상 권한은 어떻게 재설정되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의심은 사실이었다.

한 팀원의 접근 권한은 'Manager'에서 'Contributor'로 하향 조정되어 있었고,

최근 작성된 보고서 중 세 건은 직접 Finance Head에게 전송된 로그가 남아 있었다.

그중 어느 한 건에서도, 다니엘의 이름은 CC 되지 않았다.

“이건 우회도 아니고, 명백한 제거야.”

그녀는 조용히 메모장에 한 줄을 적었다.

권한 변경: 2025년 3월 15일 10:43

요청자: Vicky R. / 승인자: Otterlim

비키가 칼을 들었다면, 다니엘은 계산기를 들었다.

이 전쟁은 감정이 아닌, 논리로 싸우는 전쟁이었다.

그녀는 새 시트를 열었다.

그 제목은 단순하고, 정확했다.

Control_Structure_Dismantling_Log.xlsx

복수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화 예고 — 〈잊힌 회의록〉 모두가 없었다고 말한다. 기록도, 메모도, 로그도 없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기억한다. 그날의 공기, 누군가의 말투,

그리고··· 서랍 속에 흘러내린 A4 용지 한 장.


사라진 회의.

잊힌 줄 알았던 결재.


누군가가 일부러 지우려 한 그 장면의 중심으로,

다니엘은 다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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