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Y 회계 감사 킥 오프 미팅
“회의는 오전 10시 30분입니다. Zoom 링크는 일정 초대장에 포함되어 있어요.”
재무팀 운영 매니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목소리 깊숙한 곳에서 미세한 불안의 떨림을 감지했다.
EY. Ernst & Young. 외부 감사기관이자, 회사의 유일한 ‘제삼자’ 시선.
다니엘은 사무실 한쪽의 조용한 회의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모니터 화면에는 ‘회의 주최자: Joseph Lang’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EY의 감사 파트너. 수년 동안 다니엘과 함께 감사를 진행해 온 인물이다.
화면이 켜졌고,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의 스태프가 더 있었다. 한 명은 감사 매니저, 다른 한 명은 주니어 감사 담당자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다니엘. 시작해 볼까요?”
“물론이죠.”
다니엘은 침착하게 대답하며 노트북을 앞으로 밀었다. 그녀의 바탕화면에는 압축된 폴더 하나가 놓여 있었다.
Judgment > EY_Memo_Pack.zip
그녀는 미리 준비한 요약 보고서를 공유했다. 제목은 이랬다:
“벤더 결제 흐름 내 불일치 – 2024 회계연도 1~3분기 분석”
Lang 파트너는 몇 초간 말이 없었다. 화면을 스크롤하며 보고서를 빠르게 읽던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Altavia와 Syntellis, 또 등장하네요··· 이 이름들, 작년 감사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요?”
“맞아요,”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작년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요. 올해는, 하나의 패턴으로 보입니다.”
“그걸 중요한 위험 요인이라고 보시나요?”
다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질문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내부 고발로 가는 첫걸음은, 자신의 판단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 책임도 오롯이 고발자에게 전가된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또렷하게 말했다.
“네. 그리고 어쩌면 구조적인 문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회의실 안에는 짧은 정적이 흘렀다.
Lang은 화면 공유 기능으로 Altavia 결제 승인 내역을 확대해 보이며 말했다.
“Otterlim이 이 모든 걸 승인했나요?”
“네. 그리고 이 거래들은 AP 권한이 없는 Bill G. 가 생성했어요.”
Lang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회계 원칙 위반이었다.
곁에 앉아 있던 감사 매니저가 말했다.
“직접적인 시스템 접근 기록도 있으신가요?”
다니엘은 이미 준비해 둔 ZIP 파일을 파일 업로드 포털에 올렸다.
“업로드했습니다. 'AuditTrail_2024Q1.xlsx' 파일을 확인해 주세요. Lily가 퇴사하고 나서 사흘 후에 Bill의 접근이 시작됐습니다.”
Lang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대신 감사팀은 채팅창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회의는 비공식적으로 이어가겠습니다. 다니엘, 잘하셨어요.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Zoom 회의는 35분 만에 종료되었다.
그러나 진짜 파장은, 그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
그날 오후, 다니엘은 사무실 복도에서 Vicky와 마주쳤다.
언제나처럼 단정한 외투, 얇은 미소, 그리고 무표정한 눈동자.
“오늘 EY 미팅 있었죠?”
Vicky가 물었다. 뭔가 알고 있다는 뉘앙스가 배어 있는 말투였다.
“네, 정기 검토였습니다.” 다니엘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떤 자료를 공유했는지는··· 나중에 확인할 수 있겠죠?”
그녀의 말에는 위협도, 공격도 없었지만, 무언의 압박은 분명했다.
다니엘은 멈추지 않고 걸어가며 말했다.
“제가 공유한 건, 숫자뿐이에요.”
Vicky는 짧고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숫자도, 의도가 담기면 메시지가 되죠.”
그 순간, 다니엘은 확신했다.
Vicky는 뭔가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 싸움은 ‘비공식’에서 ‘공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사무실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Judgment 폴더 안에 새로운 파일 하나를 추가했다.
NextStep_001.txt
•EY 후속 요청 대기
•Vicky 또는 Otterlim 반응 예측
•InQComm 계약 분석 완료 후 연관 계좌 추적
•Johnny 및 Otterlim 서명 샘플 대조
•Bill 시스템 접속 로그 백업
다니엘은 깊게 한숨을 내쉰 후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어두워지는 샌프란시스코.
숫자 위의 전쟁은 이제 본격적인 국면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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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지막 날, 샌프란시스코는 드물게 비가 내렸다.
다니엘은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잔을 비웠다.
마지막 날. ‘Month-end’. 모든 회계사가 가장 예민해지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이 먼저 이상했다.
“오늘 AP 트랜잭션 많을 거예요.”
빌이 말을 걸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들고 온 건 승인 요청서 다섯 장이었다.
“지금 이걸 다 승인해 달라고?”
다니엘은 그의 손에 들린 문서를 천천히 넘겼다. 금액은 적었다.
몇 천 달러 단위. 그러나 날짜가 문제였다.
“이 벤더들은 왜 오늘 다 몰려 있어요?”
빌은 잠시 머뭇이다가 말했다.
“비키가, 오늘 안에 처리하라고 해서요.”
“PO(구매요청서)랑 계약서 있어요?”
“계약서요?”
빌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없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금액이 적잖아요.”
다니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적은 금액이라고 절차를 생략한다는 건, 곧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빌, Accounting에서는 금액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시간, 승인 경로, 그리고 반복성. 지금 같은 유형이 반복되면, 그건 경고 신호예요.”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파일을 내려놓고 물러섰다.
다니엘은 서랍을 열고, 'Last-Day Tracker'라는 파일을 불러왔다.
지난 12개월간의 월말 처리 데이터를 정리한 시트였다.
그녀는 그중 특정 업체들을 필터링했다.
Altavia, Syntellis, 그리고 새로운 이름 하나 — Lusian Technologies.
Lusian.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ERP에서 Lusian 관련 PO 이력을 조회했다. 계약 없음.
그러나 같은 달, 같은 주에 세 번의 송금 기록.
금액은 9,750달러, 9,999달러, 그리고 9,980달러.
“모두 만 달러 밑이네... 자동 승인 상한선 바로 아래.”
이건 명백한 의도였다.
만 달러 이상이면 추가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그걸 피하기 위해 ‘자르는’ 것이다.
다니엘은 손을 움직였다. 해당 벤더의 세금 식별 번호를 조회하고, 은행 계좌 정보도 확인했다.
의외로 간단했다. 세 업체 모두, 계좌번호 마지막 네 자리가 같았다.
“같은 회사네... 이름만 바꿨군.”
그녀는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지난달에 릴리가 남겼던 메모가 떠올랐다.
“2월 말일 Altavia + Lusian = 19,980달러. 그냥 넘어가지 마세요.”
그 메모의 의미를 이제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Altavia와 Lusian은 ‘쌍둥이’였고, 그들은 잔금 처리일에 맞춰 작게 쪼개진 인보이스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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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다니엘은 IT팀의 한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제목: 사용자별 시스템 접근 시간 확인 요청
내용:
안녕하세요,
최근 한 달간 특정 트랜잭션 생성 시간과 사용자 접속 로그를 비교 분석하려고 합니다.
아래 계정(Bill G. 외 2명)의 3월 한 달간 ERP 접근 시간대를 요청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수 분 뒤, 회신이 도착했다.
엑셀 파일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다니엘은 해당 데이터를 열고, 앞서 기록한 트랜잭션 생성 시간과 대조했다.
놀랍게도, Lusian 관련 결제 요청은 모두 오전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생성되어 있었다.
“빌 출근 전 시간이야... 그럼 누가 만든 거지?”
그녀는 다시 IT 로그를 조회했다.
해당 시간대엔 단 한 명만 ERP에 접속해 있었다.
Vicky R.
그녀는 AP 시스템 접근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회계 시스템에는 ‘관리자 권한’이 있었다.
그녀가 만든 트랜잭션을, 빌이 ‘자연스럽게’ 이어서 처리한 것이다.
—
다음 날 아침, 다니엘은 EY 감사 파트너인 Lang에게 암호화된 메일을 보냈다.
제목은 짧았다.
“월말 반복 거래 관련 — Lusian 사례 보고”
첨부파일은 두 개였다. 하나는 그녀가 직접 정리한 데이터 매트릭스,
다른 하나는 ERP 접근 로그와 IP 트래픽 기록이었다.
Lang은 회신을 통해 말했다.
“이건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 거래들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InQComm 계약서 원본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은 곧바로 보안 파일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2023년 InQComm과 Palantella 간의 기술 개발 협약서가 있었다.
‘서명자: Johnny K., CFO 당시 Otterlim’
이 계약서엔 몇 가지 미심쩍은 조건이 있었다.
1. 계약된 기술의 실체가 명확히 기재되지 않음
2. 결과물 검수 절차 없음
3. 비용 지급 조건이 ‘월말 정산 기반’으로만 되어 있음
다니엘은 그 조항들에 빨간 박스를 쳤다.
그리고 문서 하단에 이렇게 적었다.
“This is not an R&D deal. It’s a money tunnel.”
—
그날 저녁, 다니엘은 다시 피어 근처로 나왔다.
그녀는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Bay Bridge 너머를 바라보았다.
Lily가 떠나고, Danny는 말수가 줄었고,
이젠 회사에서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장부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숫자는 말이 없지만, 그 안엔 진실이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셀폰에 메모를 남겼다.
“Lusian = Palantella 2호.
목적: 자금 분산, 감시 회피.
수단: 잔금 처리일에 나눠 청구.
실행자: Vicky → Bill → Otterlim.”
그리고 결심했다.
다음 장부엔 이 ‘그림자’의 이름을 쓰지 않으리라.
진짜 이름을 기록하리라.
그래야, 누군가 이 장부를 읽게 될 때 —
그들도 알게 될 테니까.
숫자가 기억한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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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과 유령들
4월 초.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하지만 회사 안 공기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어제 또 누가 나갔대요?”
점심시간, 복도 끝에 모여 있던 회계팀 직원 둘이 속삭였다.
“이번엔 Syntellis 담당하던 그 계약직. 출근 안 했대.”
다니엘은 말없이 커피를 내리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아무도 정식으로 '퇴사'한다고 알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졌고, 계정은 말없이 정지되었으며, 책상은 어느 날 깨끗이 비워졌다.
“그 사람, 아마 Vicky한테 찍힌 거 아닐까?”
“근데 웃긴 건 뭔지 알아? Syntellis 그 청구 건도 이상했거든. 자꾸 인보이스에 금액이 바뀌더라고.”
작은 소문들은 숫자보다 빠르게 퍼졌다.
하지만 숫자는 결국, 그 소문들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다.
—
그날 오후, 다니엘은 새로운 감사 요청 메일을 받았다.
보낸 사람은 EY의 Lang이었다.
“Daniel, 이 패턴... 혹시 내부 제보가 있었나요? 타임라인이 너무 정교합니다.”
다니엘은 회신을 짧게 썼다.
“공식적인 제보는 없습니다. 하지만 숫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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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최근 세 달간 퇴사자 명단을 정리했다.
이름, 부서, 마지막 로그인 시간, 처리 중인 프로젝트, 그리고 퇴사 직후 연결된 신규 인력 정보까지.
그녀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퇴사자는 Altavia 혹은 Syntellis 관련 문서를 관리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체한 인물들은 Palantella 출신이었다.
그중 일부는 ‘직접 채용’이 아니었다.
인사팀 기록에 없는 사람들.
외주 컨설팅 명목으로 등록되었고, 시스템상 ‘Contractor’로 분류된 이름들.
그녀는 그 명단을 출력했다.
총 열두 명.
그중 여덟 명은 3개월 이내에 입사. 모두 Vicky의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이들.
이건 단순한 교체가 아니었다.
의도된 침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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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 〈감춰진 보고서〉
누군가의 책상 서랍,
혹은 공유 드라이브의 깊숙한 폴더 안.
다니엘은 존재하지 않아야 할 문서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공식 라인에서는 보고되지 않았고,
감사팀에도 제출되지 않은 이상한 파일.
'보고서'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건 누군가의 의도를 숨기는 포장지이자,
어떤 진실을 감추기 위한 가장 정교한 위장술이다.
이제 다니엘은 묻는다.
“누가 이걸 숨겼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