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 감정을 번역해 드립니다

by J이렌



2059년, 서울.

도심 한복판 고층 타워, 유리벽 안쪽 ‘감정 중개소’ 로비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예약자 성함, 예설님 맞으시죠?”

접수 안내봇이 다정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예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감정 매칭 상담은 라일 담당자입니다. 지금 안내해 드릴게요.”


자동문이 열리고, 내부 상담실로 들어선 예설은 차분한 공간 안에 있는 검은 테이블 앞에 앉았다. 마주한 자리엔 사람이 아닌, AI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라일입니다. 오늘의 감정 상태 로그 확인했습니다.”

AI의 목소리는 따뜻했고, 음성 톤엔 사람보다 더 정제된 섬세함이 배어 있었다.


예설은 반신반의한 얼굴로 말했다.

“AI가… 사랑을 중개할 수 있다고요?”


라일은 미소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감정 데이터를 다룹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숫자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기 있어요.”


예설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랑 같은 건, 다시는 못할 줄 알았거든요. 너무 오래 혼자였고… 누구와도 깊이 연결되지 못했어요.”


라일은 예설의 눈동자 안에 흐르는 감정 파동을 감지하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예설님의 감정 로그를 기반으로 감정공명률이 93%를 넘는 사람을 한 명 찾았습니다.

단, 그 사람도 아직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뭐라고요?”


“저희는 그를 ‘지연된 감정’ 케이스로 분류합니다.

조건은 하나. 예설님이 먼저 감정을 표현해야 합니다.”


예설은 웃었다. 씁쓸하게.

“먼저 좋아하란 소리네요.”


“사랑은 확률이 아닙니다. 용기의 순서입니다.”

라일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 순간, 예설의 시야에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한 남자의 일상 로그. 걷는 속도, 좋아하는 음악, 글을 고를 때 망설이는 시간.

사람들은 몰랐다. 감정은 말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남긴다는 걸.


라일은 조용히 물었다.

“이 감정을… 번역해 드릴까요?”


예설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네. 부탁할게요. 다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면—이번엔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AI의 손짓으로 감정 로그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사랑의 알고리즘’은, 그렇게 작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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