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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Jul 18. 2016

끝없는 욕망에 뒤따르는 것은

영화 리뷰: 다음 층


          [다음 층]이라는 영화는 2008년 제작된 캐나다 영화로 [시카리오]를 통해 큰 호평을 받은 드뇌 빌뇌브 감독의 11분짜리 단편 작품이다. 10분 남짓의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진 이 영화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도 핵심적인 내용들을 직관적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꽂아 넣는다. ‘드뇌 빌뇌브’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영화 또한 매우 건조하며 상징성이 짙은 영화다. 하지만 짧은 상영 시간을 갖고 있는지라 그 건조함이 지루함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역할을 한다. 또한 영화가 내포하는 상징성 또한 단번에 이해가 가능하다.



          영화의 배경은 매우 그로테스크하다. 아마 그가 연출한 다른 모든 작품을 통틀어도 음울한 분위기만큼은 이 영화를 따라올 작품이 없을 것이다. 팀 버튼의 초기 작품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어두운 톤의 대저택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다란 테이블 앞에 귀족으로 추정되는 여러 인물들이 앉아 있다. 음식을 대접하는 자들 가운데 가장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그들의 옆에 꼿꼿이 서서 자신의 직원들을 지휘한다. 우두머리의 지휘에 따라 그의 직원들은 서둘러서 음식들을 테이블 위로 가져다 나른다. 그야말로 쉴 틈이 보이지 않는다. 식사를 하는 그들의 주변으로는 음악가들이 우아한 음악을 연주하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론 보는 이들의 눈에는 더욱 더 기괴한 모습일 뿐이다.



 


          식탁 앞의 귀족들은 그들이 날라준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들을 곧장 입으로 가져다 넣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음식들이 그들의 앞으로 놓여진다. 제공되는 음식들은 일반적인 식사에서부터 기상천외한 동물 음식들까지 다양하다. 이 같은 과정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던 중, 갑자기 사람들이 흠칫하며 식사를 멈춘다. 그리고 뚜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테이블이 놓인 바닥이 아래로 푹 꺼져 버린다. 무언가가 원인이 되어 바닥이 꺼져버린 것이다. 테이블과 그 앞의 사람들은 그 형태 그대로 바로 아래층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식사를 제공하는 우두머리는 그에 당황하지 않는다. 재빠른 그의 지시에 따라 직원들은 모든 물건들을 아래층으로 옮긴다. 악단 또한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른다. 아래층으로 떨어진 사람들은 잠시 당황한 듯 행동을 멈춘다. 충격으로 약간 어지러운 듯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직원들이 배치되자마자 다시 식사를 시작한다. 떨어지면서 발생한 하얀 먼지들이 그들의 몸과 식사에 뒤덮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그를 개의치 않고 식사를 재개한다. 직원들은 먼지를 치워내고 그들에게 새로운 식사를 제공한다. 금세 위층에서의 모습이 아래층에 재현된다. 하지만 이내 바닥이 다시 내려앉는다.





          그리고 다시 아까의 상황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직원들이 도착하자마자 다시 테이블이 가라앉는다. 당황한 직원들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바로 아래층에서 온몸에 먼지를 뒤덮고 있는 손님들. 그런데 우두머리는 그들 쪽으로 가려는 직원들을 손으로 막는다. 바닥이 한 번 더 꺼질 것임을 직감한 우두머리는 바닥이 꺼지기 전에 아래층으로 직원들을 미리 보내 그를 대비한다. 한편 위층의 손님들은 서로의 눈치를 본다. 그러더니 먼지가 덮혀 있건 말건 상관 않고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웃으면서 먹고 누군가는 울면서 음식을 먹는다. 노인, 여자, 남자, 병든 자 상관없이 모두가 음식을 쥐어 삼키고 옆 사람의 음식마저 탐한다. 그리고 다시 테이블은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나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을 무시하고 테이블은 그 아래층으로 또 떨어진다. 연속으로 두 층을 추락한 것이다. 정확히는 두층이 아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층 또한 계속 무시하고 테이블은 끊임없이 추락한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도 공포에 떨며 테이블을 붙잡고 바짝 엎드려 있는다. 직원들은 당황해서 그들이 빠진 구멍을 바라본다. 그들은 하염없이 떨어진다. 우두머리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이어 영화의 말미, 그는 카메라를 바라본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줌인 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다음 층]이 경고하는 바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그것이 가져올 파국이다.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함에 따라 계속해서 다음 단계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계가 항상 위로 올라가라는 법은 없다. 이 영화의 제목이 ‘아래층’이 아닌 ‘다음 층’인 까닭도 그러한 맥락을 이어받는다. 일반적인 것들로 만족하지 않고 코뿔소나 아르마딜로 등 온갖 생물들을 잡아먹는 인간들의 모습은 얼핏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군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꼭대기에서 추락하고야 만다.



          손님들은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똑같이 욕망을 가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면 추락할 것을 눈치 채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식사를 이어나가고 결국 옆에서 망설이던 이들도 그들에게 질 새라 서로의 그릇까지 탐을 낸다. 특히나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여성은 다른 이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응시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먹어치운다. 이는 현 인류의 모습과 유사하다.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파멸을 당기고 있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수많은 국가들의 모습 말이다. 전쟁과 침략, 자연 파괴와 핵무기의 사용 등 인류는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것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멈추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식들을 제공하는 우두머리는 누구일까. 아마 악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악마의 모습을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악마는 사람들을 직접 벼랑으로 떠밀지 않는다. 다만 그들 스스로가 추락하기를 재촉할 뿐이다. 호화로운 음식과 음악을 제공하며 그들을 대접하던 지배인은 깊은 나락 속으로 추락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싱긋 웃는다. 마치 자신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런 그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전 카메라를 응시한다. 관객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선은 카메라의 렌즈로 구분된 가상 세계와 현실의 벽을 허문다. 그것은 이 상황이 단순 이야기속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감독의 문제의식과 이어진다. 악마가 파놓은 식사 대접은 영화를 벗어나 현실적인 상황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우리 또한 과도한 욕망으로 지난날처럼 파괴를 일삼는다면 결국에는 추락을 피할 수 없다. 이는 거시적으로 바라 볼 경우 인류 전체의 문제로, 미시적으로 바라보았을 경우에는 한 개인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정도를 가늠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개인 또한 파멸의 길을 걷게 됨은 자명한 사실이다.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되면 그를 멈출 수 없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절제력을 잃고 악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떨어질 것인지, 아니면 그를 극복하고 테이블을 털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올 것인지.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개인들에게 주어진 기회이자 선택지이다. 다음 층은 아래로 향할 수도, 위로 향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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