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그래비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가지의 공포증을 가지고 살아간다. 크툴루 신화의 저자인 'H.P.러브크래프트'가 해산물 공포증이 있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며, 배우 '호아킨 피닉스'와 '실버스타 스탤론'은 고소 공포증이 있다. 심지어 픽션 속의 인물들도 몇가지의 공포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영화 [해리포터] 속의 '론 위즐리'가 거미 공포증이 있었으며 [배트맨] 시리즈의 브루스 웨인은 어린 시절 박쥐 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그 밖에 심해 공포증, 핀 공포증 등 다양한 공포증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우주 공포증 또한 그러한 공포증의 하나다. 심해의 무한한 어둠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끝없이 떨어질 것 같은 고소 공포증의 느낌마저 물씬 드니 그야 말로 포비아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비티]라는 영화는 어찌보면 우주 공포증을 간접적으로 체험시켜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예고편에서부터 오금이 저릴 정도의 오싹함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는 흔치 않다. 시사회에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이 영화는 금새 입소문을 타고 많은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래비티]라는 영화가 주는 체험적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는 집에서 보면 안된다고 말한다. 살짝 비틀어 말하자면 이 영화는 집에서 봐도 좋은 영화지만 영화관에서 보면 훨씬 더 좋은 영화다. 초반부에 영화가 선사하는 우주라는 공간의 공포감은 실로 대단하다. 굳이 우주 공포증을 가진 사람을 앉혀놓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산드라 블록'이 연기하는 '스톤 박사'는 그야말로 갓 우주에서 활동을 시작한 햇병아리 같은 존재인데 이러한 인물 설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상황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고 그로 인한 인물과의 일체성을 올리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스톤 박사가 갖는 1인칭 시점이 주는 공포감과 무한히 펼쳐진 공간에서 겪는 그녀의 패닉 상태는 그런 점에서 효과가 배가된다. 많은 영화들의 경우, 긴장감 있는 음향 효과나 배경 음악으로 주인공의 위기를 표현해 관객들을 극에 몰입시킨다. 그에 반해 이 영화는 되려 적막 속에 주인공을 가져다 놓음에 따라 그 공포감을 배가 시키는 특이한 효과를 거둔다. 거기에 더해 빙글빙글 회전하는 카메라 워킹과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산드라 블록의 거친 숨소리는 체험의 효과를 더욱더 강렬하게 느껴지게 만들어 주었다.
이 영화가 평단에게 지적당하는 부분은 흔히 뻔한 상징성과 전개라는 부분이다. 하지만 되려 그러한 부분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그가 관객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비티]의 톤은 일부 씬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단조로운 톤으로 진행된다. 이런 영화가 만약 아리쏭하고 이해하기 힘든 암시들로만 가득찼더라면 평단의 호평은 받았을 지 몰라도 많은 관객들이 보기에 꽤나 불편한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관객들의 입맛에만 맞추기 위한 대형 블록 버스터처 영화냐하면 그런 것은 또 아니다. 여타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액션씬과 폭발씬이 많이 들어간 대규모 블록 버스터 무비가 많았던 것에 반해, 위 영화는 다소 색다른 관점으로 우주를 비틀어 보면서 많은 이들로 하여금 기존의 우주를 배경으로 표현된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깨부수게 만든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이 영화는 한걸음 더 나아가 엄청난 메세지와 복잡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접근함으로서 영화에 대해 해석하고자 하는 욕구를 품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도 칭찬할 만하다. 생각없이 보는 블록버스터가 아닌 생각하며 볼 수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보다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소통'과 '관계'에의 회귀이다. 지구에서 괴로운 과거를 겪은 스톤 박사는 침묵과 고요로 가득찬 우주의 성격을 마음에 들어한다. 그녀는 딸을 잃게 된 사고를 통해 지구의 소음과 불협화음에 지쳐버린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극의 초반부에 우주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속에서 스톤 박사에 의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우주에 홀로 던져졌을때 가장 필요로 하던 것은 바로 타인과의 소통이었다. 최초로 우주 공간에 홀로 떨어졌을 때, 공허한 우주공간을 맴돌며 동료인 '매트'를 애타게 찾던 그녀의 행동, 그리고 우주 정거장에서 비록 언어가 달라 대화마저 통하지 않지만 지구와의 교신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품었던 스톤 박사의 행동은 소통의 부재라는 것이 인간 본연의 성질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영화에서 지구는 돌아가야 할 곳이며 관계와 소통의 공간을 상징하고, 우주는 공포의 대상이면서 침묵의 공간을 대변한다. 스톤 박사는 그녀가 가진 이름에서조차 지구의 땅 위에 있어야 할 돌(stone) 같은 존재이며, 영화의 제목이 "스페이스"가 아닌 "그래비티"인 것도 결국 주인공을 지구로 돌아갈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인 중력이라는 뜻과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작용하는 인력을 뜻하는 것이라 보여지기도 한다.
영화는 침묵과 고요라는 죽음과 다름없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되살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조용한 스톤 박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매트(조지 클루니)의 모습과 그가 응답이 없는 통신망에 대고 계속해서 말을 걸며 이게 우리가 사는 길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어찌보면 이 영화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장면에서는 스톤 박사가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복을 모두 벗고 웅크리는 장면이 장시간 스크린에 비춰지는데 이때 화면이 회전함에 따라 마치 그녀가 자궁 속에 웅크리고 있는 태아의 모습으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밖에도 아닌강 무전기 수신 장면에서 울린 아기의 울음소리 등을 통해 '재탄생'이라는 하나의 소재에 영화가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군데군데 배치해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영화의 마지막에 라이언 박사가 지구로 무사 귀환한 이후에 보여지는 개구리는 이제 올챙이로서의 삶을 끝내고 개구리가 되어 뭍으로 나가는 재탄생이라는 상징성의 클라이막스이기도하다.
어쩌면 우주 공포증이 우리에게 주는 근원적 공포는 혼자가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일수도 있다. 단순히 무한한 어둠과 끝없는 공간이 직접적으로 주는 공포라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관계의 절단에서 오는 공포감이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공포감도 이와 유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에 동반되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또한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우리가 아껴오고 사랑했던 것들과의 영원한 두절이 죽음이 갖는 진정한 공포인 것이다. [그래비티]에서 우주와 죽음, 그리고 소통의 단절을 동일선 상에 세운 것도 이러한 시점으로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전에 겪을 수 없었던 일종의 체험을 선사한 작품인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으나, 우리가 앞으로 체험하게 될 삶의 방향에 대하여 제시함으로서도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 스톤 박사처럼 우리 역시 삶을 향해, 관계의 회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우리 역시 각자가 가진 삶의 중력을 놓쳐서는 안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