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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Jul 24. 2016

뒤틀린 세상 속 성실하게 살아남기

영화 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우리집에 놀러오세요]와 [더블 클러치]라는 두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한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이 영화는 배우이자 가수로 많은 활동을 펼쳤던 이정현이 단독 주연으로 출연을 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정현은 그 직전 [명량]이라는 영화에서도 얼굴을 비추었지만 그 당시에는 은 비중을 가진 조연으로 출현했. 따라서 이번 작품이 그녀에게는 제대로된 복귀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오랜 공백기가 있었던 터라 그녀의 단독 주연에 대해 우려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공개되자 그러한 우려의 목소리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우 이정현의 연기는 박수를 받을 정도로 훌륭했으며 안국진 감독 포스트 박찬욱이라고 부릴 정도로 자신만의 개성뚜렷이 드러냈다. 


          영화는 현실적이면서도 동화적인 내용을 다룬다. 주인공 '수남'은 어린 시절 스펙과 취업 사이에서 갈등한다. 두 선택지 가운데 스펙을 선택한 그녀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여러 자격들을 따지만 컴퓨터 시대가 도래하며 그러한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생계를 위해 어렵사리 공장에 취업한 수남은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여러 사고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녀일상은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린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제목을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성실한 사람은 수만이다. 그녀는 하루에도 여러 잡일들을 도맡아하며 돈을 버는데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차가운 사회는 매번 그녀의 노력을 무너뜨린다. 거액을 들인 남편의 귀 수술은 비극으로 이어졌다. 우울증에 걸린 남편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수만은 계속해서 노력하지만 그녀의 노력에 부합할 정도의 보상은 뒤따르지 않는다. 그녀가 사는 달동네가 재개발 될지도 모르는 좋은 기회가 다가오지만 이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등장해 그녀의 삶에 찬물을 끼얹는다. 하지만 수만은 그에 굴하지 않고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러 동분서주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성실히 두발로 뛰어다니는 것이다.


          위 같은 내용에 따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은 상당히 오묘해진다. 성실함에 따르는 기대를 져버리는 사회의 모습을 배경으로 함으로 영화의 주제의식은 더욱 부각된다. 극 중 등장하는 형사가 하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불쌍하니까 더 의심스러운 거야. 원래 힘든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참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주요 악역들을 꼽자면 부녀회장 경숙, 원사 도철, 분노 조절 장애 형석, 이 세 명이 되겠다. 함께 모여 활동하는 그들의 모습을 루이스 캐럴의 원작과 연관시켜 얼핏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악역인 트럼프 군대의 킹, 퀸, 잭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중 경숙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절대적 갑의 위치에 서있다기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동시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세명 중 가장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 사람은 '형석'이다. 그는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수만을 붙잡아 끔찍한 갖가지 방법들로 고문하고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의자에 그녀를 구속해 놓는다. 하지만 그는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였으며 말이 어눌한 것으로 보아 어딘가 살짝 모자란 부분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그 역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며 나이든 노모와 함께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경숙이 그에게 계속해서 적정량의 분노 조절 장애 약을 처방만 해주었어도 극에 나온 것처럼 극단적인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도철'은 재개발 반대 세력의 표면적인 리더 같은 역할이다. 원사라고 불리는 그는 항상 군복을 입고 다닌다. 어찌 보면 그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라고도 보여진다. 짧게 등장한 그의 집을 보면 그 역시 자그마한 방에 혼자 살고 있다. 또한 길에서 박스 등을 주워 다가 모으는 등 도철 역시 형편이 그리 넉넉한 사람은 아니다. 폭력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행동은 그의 군복과 이어진다. 그의 직책이 ‘원사’라는 것에서만 봐도 그가 과거 군사 정부의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  장기간 노출되어 있었음을 추측할수 있다. 어쩌면 그의 어려운 형편과 내재된 폭력성이 배후에서 모두를 조종하'경숙'에게는 꼭두각시처럼 이용하기 쉬운 대상으로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배후이자 진짜 악역을 꼽자면 바로 경숙일 것이다. 그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퀸’과 부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원작 소설에서도 퀸은 화가 나면 자신을 거스른 자들을 거쳐없이 사형시키는 폭군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달동네 재개발의 반대 세력 가운데 가장 주축이자 핵심인 인물로서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의 죽음마저도 교묘히 포장해 이용하는 냉혹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심리 치료사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형석에게 분노 조절 장애 약의 투여를 줄여 그를 폭력적인 인물로 만드는 배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악역들과 주인공의 대립, 혹은 주인공이 겪게되는 시련의 연쇄에서 국가의 역할은 부재된 상태다. 초반부 수남이 겪는 사회적 부조리 속에서 국가는 침묵한다. 후반부 부동산을 둘러싼 갈등 상황에서 국가는 수만의 등을 떠밀 뿐 전면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수남이 살인 사건이 저지른 직후에는 이전의 정적인 모습에서 적극적 수사를 나서는 동적인 모습을 취한다. 결국 수남은 그에 대해 과격한 행동을 보이며 또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마지막에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그녀는 이러한 이상한 세상을 떠나려 하는 듯 보인다. 그녀는 수세에 몰린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온것처럼 그 세상을 탈출할 수 있을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오래된 동화를 가져다가 현대 사회와 적절히 버무려 탄생한 괴작일지도 모른다. 여기서의 괴작이라함은 나쁜 뜻이 아니다.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를 다분히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이미 비틀릴 대로 비틀려져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를 차갑게 내려다보는 영화다. 영화를 보다보면 너무나 억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인데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지는 상황이 수차례 발생한다. 그럼에도 극의 이야기는 분명히 절망적이고 끔찍하다. 이렇듯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가 가져야 할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며 그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확히 어낸다. 우스우면서도 슬픈 이 사회의 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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