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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Jul 26. 2016

허상에 빠져 허덕대는 군상들

영화 리뷰: 번 애프터 리딩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엔 형제는 잘생긴 배우들을 가져다가 망가뜨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이동진 평론가가 한 매체에서 한 이야기다. 코엔 형제가 2009년 연출한 [번 애프터 리딩]에는 정말 수려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존 말코비치, 틸다 스윈튼에 프란시스 맥도맨드까지. 이 정도로 캐스팅이 화려해지면 대체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지가 궁금해진다. 오션즈 일레븐의 느낌을 기대했다면 당장 영화를 꺼버려도 좋다. 코엔 형제는 이 배우들을 하나같이 멍청하고 찌질한 인물들로 탈바꿈시킨다.



          ‘오스본(존 말코비치)’은 알코올 중독에 분노 조절 장애까지 걸린 남자다. 그는 CIA 요원이자 유능한 애널리스트였지만 자신이 받는 대우에 부당함을 느끼고 CIA에서 자진사퇴한다. 그의 아내인 ‘케이티(틸다 스윈튼)’는 그런 오스본에게 지칠대로 지친 아내다. 그녀는 연방 경찰인 ‘해리(조지 클루니)’와 비밀리에 외도 중이었으며 오스본과 이혼을 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한편 오스본은 사퇴 이후, 자신이 CIA로 근무했을 당시의 기록을 회고록으로 담아 책으로 출판하려 한다. 그는 녹음기를 틀어 몇 차례 회고록을 기록하나 그리 오래가지 못해 다시 술을 마시며 허송세월을 보낸다.



          배경은 전환되어 ‘린다(프란시스 맥도맨드)’에게 맞춰진다. 그녀는 대형 헬스클럽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성형 수술에 집착하고 있다. 긍정적이고 멋진 남자를 만나는 것이 그녀의 목표인데 자신의 외모 탓에 그런 남자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데이트 어플을 통해 남자들과의 만남을 갖지만 매번 실망의 연속이다. 린다의 계획은 회사의 의료 보험을 통해 성형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히도 회사에서는 그녀의 요구를 기각하고 그녀는 절망한다. ‘채드(브래드피트)’는 린다와 같은 헬스클럽에서 일하는 남자다. 어느 날 헬스클럽에서 분실된 CD가 발견되고 채드는 그것이 곧 CIA와 관련이 있는 정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채드는 린다를 꼬드겨 함께 CD를 이용해 CD의 주인으로부터 돈을 뜯어내자고 제안한다. 린다는 성형 수술비가 필요하던 터라 이에 응하게 된다.



          다섯 명의 인물들이 뒤얽혀 진행되는 이 영화는 그 얽힘을 풀어낼수록 사태가 악화된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들은 사실 모두가 허황된 것들에 불과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는 CD부터가 그러하다. 린다와 채드는 이것이 CIA의 기밀 정보인냥 오스본에게 협박도 하고 러시아 대사관도 찾아가지만 결국 그 CD의 정체는 오스본의 회고록이었다. 이 사실을 마지막에 터뜨려 반전의 효과를 거두는 대신, 감독은 오히려 초반부에 그 사실을 터뜨린다. 이로써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허구에 현혹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지가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개봉한 ‘곡성’만큼이나 이 영화도 허상에 현혹된 사람들을 보여준다. 물론 ‘곡성’이 이를 바탕으로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를 연출해 냄과 반대로 [번 애프터 리딩]은 이를 희극적으로 그려낸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유명한 말처럼 이 영화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 등장인물들을 세세히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허구를 쫓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첫째로 성형 수술을 원하는 린다부터 살펴보자. 그녀는 별 의미없는 CD를 이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만 아니라 허구의 이상적인 남성에 집착한다. 그녀를 배려해주고 신경써주는 남자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눈치채지 못하고 데이트 어플등에서 남자를 찾아 다닌다.



          그녀의 동업자 채드도 마찬가지다. 채드는 돈이 급한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CIA 관련 문서라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떡밥을 덥썩 물고 거기에 매달린다. 물론 그 또한 아무 의미도 없는 문서였지만 결국 그 CD 때문에 채드는 오스본에게 얻어터지고 목숨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한편 오스본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회고록을 쓰는것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예전 냉전 시대가 좋았다며 그때의 긴장감이 없다며 투덜댄다. 하지만 정작 그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아내도 잃고 집도 잃고 재산도 잃는다.





          오스본의 아내 케이티는 새로운 삶에 큰 기대를 안고 있다. 그녀는 오스본과 빠른 시일 내에 이혼해 해리와 재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상 해리는 그녀의 앞에서는 사탕발림식의 이야기를 펼치나 뒤로는 자신의 아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다. 결국 그녀의 사랑 또한 허상이었다. 그렇다고 해리가 행복해진 것도 아니다. 해리는 자신의 아내에게 돌아가지만 아내는 이미 또다른 남자와 바람이 난 상태였다. 심지어 이혼을 하기 위해 해리의 흠을 잡으려고 사람까지 붙여놨을 정도다. 해리를 괴롭히는 허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극 중 사고를 저지른 이후 계속 누군가에게 쫓기는 불안감을 갖는다. 결국 모든 이들에게 의심을 갖고 해리는 해외로 도피하고야 만다.



          코엔 형제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대상으로도 몇 가지 장난을 친다. 정보가 든 CD에 대한 기대감을 곧바로 무너뜨리는 것은 약과다. 상영 시간 내내 지하실에서 무언가를 만들던 해리의 모습을 비쳐줌으로 그에게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을 것처럼 표현하지만 결국 별 것 아닌 발명품임을 종반부에 드러낸다. CIA가 그들의 에피소드에 개입하는 것처럼 연출하여 스파이 무비적의 요소가 드러날 것처럼 연출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 쯤에야 그런 것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감독은 관객들마저 허구의 기대감에 빠뜨린다. 코엔 형제는 러닝 타임 내내 등장인물들 뿐 아니라 관객들까지 농락하고 있었다.





          이처럼 실체가 없는 사건에 대해 코미디적으로 연출함으로 코엔 형제는 허구를 추구하는 자들을 저격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그러할지도 모른다. 마치 엄청난 음모와 권력에 의해 세상이 좌지우지 되는 것처럼 보이나 그 실상은 별볼일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다양한 음모론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사실 여부는 밝혀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확신하고 신념으로 갖는 순간 문제는 악화된다. 무지의 망상이 가져올 파국은 상상 이상이다. 그런 점에서 보아 [번 애프터 리딩]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파국을 맞이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날카롭게 주제의식을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스런 농담을 던져대며 히히덕거린다. CIA 요원들은 이 케이스에 대해 정말 이상한 사건이라고 사건을 덮어버린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전혀 심각한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괴상한 사건이기는 했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은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괴상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코엔 형제는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그러한 것들에 대해 즐기고 웃어 넘기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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