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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Jun 26. 2016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리뷰 : 엑스마키나 &19곰 테드2


※ 본문에 스포일러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엑스 마키나]와 [19곰 테드 2], 이 두편의 영화는 포스터만 봐도 그 색깔이 전혀 다른 영화임이 확실히 느껴진다. [엑스 마키나]는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철학적 논제를 담고 있는 SF 영화이고, [19곰 테드]는 귀여운 테디베어가 갖는 반전 음란매력으로 관객들을 폭소시키는 성인용 코미디 영화이다. 그런데 이 둘을 함께 묶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독특하게도 위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하나의 소재를 관통하고 있기도 하다. 양측의 영화 모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것은 바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가르는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소재이다.


          [엑스 마키나]에서 칼렙은 유능한 기술자다. 그는 회장인 네이든의 초청을 받아 새로이 개발된 안드로이드를 테스트하는 미션을 부여받게된다. 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안드로이드의 모습에 칼렙은 마음이 흔들리여기에 더해 연구소의 비밀을 하나둘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혹시 자신도 안드로이드가 아닌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19곰 테드 2]의 테드는 이것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문제에 직면한다. 바로 정부에서 그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신용 정보나 취업 가능 여부, 심지어 결혼 결과까지 모두 제로의 상태로 뒤집혀져 버린다. 수많은 대중들은 이 사건에 주목하게 되고 테드가 사람이냐 아니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일어난다.



          사실 현대 문명은 과학 기술의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에 이어 과학 기술과 윤리와의 충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년전 국내에서 황우석 박사와 복제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화제가 되었을때 생명 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기도 했었다. 한편, 안드로이드에 대한 이야기는 복제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가 기존에 비생명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활동하기 시작한다면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를 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복제 인간과는 다른 개념의 문제임에는 틀림없지만 분명 윤리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얼마 전 이러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가 예측하기를 향후 몇십년 안에 인간이 가진 몸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는 글이었다. 위 주장을 한 미래학자는 이에 덧붙여 그러한 기술이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한다면 사람들은 슬슬 기계와 사람의 구분에 혼돈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몸의 10프로가 기계인 사람, 몸의 99프로가 기계인 사람등이 공존하며 고도로 발달된, 인간과 외형적으로 구분이 불가능한 기계까지 개발이 된다면 그들 사이 어디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일부 과학자들은 말한다. 인간 역시 유기체이며 화학 작용을 통해 움직이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고도의 과학 기술이 이룩될 경우 실제로 인간과 흡사한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이다.

 


          [엑스 마키나]에 등장하는 과학자 네이든 회장은 무슨 일이든간에 일정 부분의 설계만 일구어놓으면 그 이후의 일들은 우연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고 말한다. 안드로이드인 에이바가 자신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것이 아니냐는 칼렙의 질문에 네이든의 꺼낸 답이었다. 이 질문에 네이든 회장은 자신이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내는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드로이드가 주어진 정보에 의해 어떠한 행동을 거쳐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19곰 테드 2]로 돌아가보자. [19곰 테드 2]에서 테드는 법정에 서게 된다. 그의 인간 여부를 판명하기 위한 재판이었다. 그를 대변하는 변호인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자의식의 여부라고. 그의 주장에 의하면 테드는 자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발언은 [19곰 테드 2]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테드는 누가 뭐래도 봉제인형이었으며 만들어진 곰 인형이었다. 그 스스로도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특정 기점을 계기로 그에게 자의식이 생겼으며 인간과 같이 행동하고 다른 이들과 공감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마침내 인간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위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종료되는 것도 그러한 부분을 받아들여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종(種)이라는 문제로 들어가게 된다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나누는 범주가 또 다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어느순간 생물학적인 종의 구분이 매우 힘들어지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기계는 과연 스스로가 기계임을 인정하고 인간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를 나누는 선은 어디에서 그여지는 것일까.



          그러한 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엑스 마키나]에서 칼렙의 행동은 상당히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지만 네이든이 인간과 유사하게 만든 안드로이드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로 자신의 정체성마저 의심하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기억들도 설계된 것이 아닌지, 자신 또한 네이든이 펼쳐 놓은 게임 판에 하나의 말로서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영화가 끝나고나면 알수 있듯, 결과적으로 그는 인간이었으며 그의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를 인간으로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그가 사실 안드로이드였다고, 그의 주변인들은 모두 연기를 한 것이었다라는 내용으로 극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 큰 이의를 제기할 관객을 없을 것이라 판단된다. 왜냐하면 네이든이 만든 안드로이드는 실제로 기억도 모두 주입된 것이었으며, 외형으로는 사람과 구분이 힘들 정도였으니까. 칼렙의 정체에 대한 혼란 역시 [엑스 마키나]의 진행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으며 그 부분은 관객들이 인간과 잘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사이의 인식에서 충분히 혼란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간과 인간은 사랑을 나눔으로 인간임을 증명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엑스 마키나] 에서는 에이바는 칼렙이 사랑을 느낄 정도로 그를 현혹시켰으며 [19곰 테드]에서는 테드가 성공적인 부부 관계를 완성시키기까지 한다. 과거 명작 sf로 불리는 [가타카]를 떠올려 보자. [가타카]에서는 미래 사회를 인공 수정을 통해 태아가 탄생하는 세계로 그린다. 유전자 배합을 통해 좋지 못한 열성 유전자는 모두 제거하고 가장 똑똑하고 유전병은 없으며 튼튼한 신체를 가진 아이들, 완성된 형태의 인간들이 계속해서 태어난다. 회사 입시에서는 서류, 면접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피 검사만으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 분명 인간의 DNA로 구성된 사람이지만 만들어졌다고 표현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이런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만약 유전자 배합이 극도로 이루어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마저 탄생하게 된다면 그들은 인간인가 기계인가.


       1982년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라는 유명한 SF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불법 입주한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블레이드 러너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묘사하는 것은 냉혹한 인간들과 기계화된 문명, 그리고 분명 만들어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보다 훨씬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안드로이드들이었다. 인간이 오히려 인간답지 못하고, 인간이 아닌 것들이 오히려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점차 발전됨에 따라 영화계에서도 안드로이드나 인공 지능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그리고 많은 영화에서 표현한 미래 세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비록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띄고 흘러간다고 보았을 때 영화 속에서 보이는 모습들이 우리의 미래가 된다 하더라도 그리 이상할 부분은 없다. 인간은 스스로가 인간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가지만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하는가. 인간이 갖는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역사는 과거에서 비롯되어 끊임없이 바뀌어져 왔다. 흑인은 식민지 시대 때 인간 이하의 생명체로 취급 받아졌으나 지금은 모두가 동등하다. 여성 인권 또한 과거에 비해 크게 신장되었으며 금기시 되었던 동성애도 양지로 올라왔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가.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종의 구분이 언제까지 인간을 인간으로 남길 수 있을까. 소위 금기시 되는 것들이 깨져 버리고 중간이라는 게 사라진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남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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