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인간관계에 고민이 많았다. 특히나 내 삶을 둘러싼 수많은 휘발적 관계에 대해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한 집단에 소속되어 몇 개월간 친하게 지내도 당장 뒤돌아서면 연락을 하지 않는 그런 사이. 당시에는 그런 이들에게 아쉽고 섭섭한 부분이 많았다. 무심함에 원망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깨달은 것은 결국 공허한 관계를 만든 원인은 내게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얼마나 내가 방어적인 태도의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안전거리라는 개념이 있다. 모든 생물들에게 자연적인 것으로, 자신과 다른 객체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당신의 코 앞 10cm 거리로 얼굴을 들이민다. 당신은 편한 마음으로 그를 대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불편할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타인과 떨어진 일정량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낯선 이와의 관계에서는 더 큰 안전거리를 요구하며, 친한 이들과는 약간의 안전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는 안전거리가 없이도 편안함을 느낀다. 공간적 개념을 넘어 심리적 개념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안전거리를 확보하고자 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진솔한 심경을 이야기할 때도 겉으로만 공감해주고 실질적으로는 한 발 떨어져 서있었다. 상대와의 안전거리를 재느라 그 내용에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나 스스로는 상대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진심이 부재한 공감은 결국 타인에게도 티가 나는 법이다. 한쪽은 자신을 공개하고 다가서는데 반대편에서 계속 뒷걸음질만 한다면 그 관계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결국 다른 이들을 떠나보낸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조금 더 진실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내 주변에는 아직 나에게 열린 자세로 말을 걸어주는 이들이 남아있다.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물론 과거에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미련이 가슴 한켠을 차지한다. 내가 조금만 열린 자세를 취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줬더라면, 그 소중한 사람들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떠나간 이들의 마음을 붙잡는 것은 새로운 이들을 사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들이 다시 연락을 준다면야 고마운 일이지만 우선은 현재 남아있는 이들에게 솔직해지고 싶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찐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업무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스쳐가는 인연들도 분명히 있다. 모두와 공감할 수는 없고 모두와 깊은 관계를 쌓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솔함은 중요하다. 먼저 다가서지 못할지언정, 나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밀어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는 문자 그대로 서로에게 깊이 있게 다가가는 것이다. 나 스스로부터가 휘발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으면서 그 이상의 관계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않는가. 이제는 마음속의 안전거리를 한 폭 줄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