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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Apr 28. 2024

어머니 어머니

저기요...

네? 저요?

예 학생, 나 좀 도와줘요.

네?


오래된 구옥이 즐비한 가능동의 한 골목에서 내일이면 곧 아흔이 되실 것만 같은 할머니가 불러 새웠다.

복싱장에서 나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차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길이었다.

오늘도 야근을 한터라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와 남은 체력을 맞바꿔 영혼까지 털어내고 나오니 22시가 훌쩍 넘어 골목길은 컴컴했다.


8~90년대에 유행하던 빨간 벽돌로 지어진 녹슨 쇠창살 문이 있는 담장과 지상 1층인지 반지하인지 애매한 1층과 외벽 계단으로 연결된 2층 집에서 할머니가 손으로 벽을 천천히 짚으며 계단을 힘겹게 내려오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신지 한 발 한 발 천천히 벽을 짚고 내려오시다가 이내 힘드신지 중간에 걸터앉아서 나를 부르셨다.


처음엔 그 집 앞에 주차를 하고 있던 다른 사람을 부르시는 줄 알았는데, 다시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좀 도와달라고 하셨다.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 건지,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그랬는지, 늦은 밤, 옛 구옥 집들이 즐비한 골목 사이 철문 담장 안쪽에는 나를 습격할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사주 경계를 하며, 언제든지 뒷손 스트레이트를 날릴 수 있도록 턱아래에 살포시 한 손 가드를 올리고 앞손으로 철문을 밀어 작은 마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계단에 올라가니 할머니가 핸드폰 화면을 내미시면서 이것 좀 봐달라고 했다

화면을 보니 ‘큰 아들’이라는 글씨가 전화번호 주소록에 적혀있었다.


이게 우리  아들인데 전화가..전화를  받아요. 전화가 안되네...‘ 

떨리는 목소리가 영락없는 강가에 내놓은 애 걱정을 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여러 감정이 밀려왔으나 대문자 T본능을 끌어올려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우선 ‘큰 아들’ 버튼을 눌러 전화를 걸어보니 ‘통화를 하려면 비행기모드를 비활성화하십시오’라는 팝업 메시지가 떴다.


할머니 이거 비행기 모드라서 전화가 안 걸린 거예요. 아드님께 무슨 일 생긴 거 아니니까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전화 걸어드릴게요.


다음부터는 이 버튼(비행기모드) 누르시지 말라고 몇 번 설명드리다가 그냥 포기하고 큰 아드님께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으셨고, 할머니께 핸드폰을 건네어드리니 내가 앞에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신 듯 빨리 자식 목소리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핸드폰을 귀에 대고 차가운 콘크리트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통화를 시작하셨다.


아..들! 전화가 안 됐어!!

응 요 앞에 지나가던 학생이 도와줬어~ 응. 그래.. 그래...



안녕히 계세요


아이구 고마워요 학생~

늙은 노모는 계속 통화를 하시면서 고맙다며 연신 손짓하셨다.


늦은 시간이지만, 집에 돌아와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엔 통화할만한 시간이 아닌 시간에 전화 하면, 일단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덜컥 걱정부터 하셔서 이른 아침이나 근무시간, 늦은 밤중엔 일부러 전화를 잘 안 하는데

오늘은 그냥 했다.


웬일로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냐며 묻길래 ‘그냥 목소리 듣고 싶었지요~’ 하니 베시시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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