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이팅
회사 창립기념일이라 출근을 안 했다.
모쪼록 시간이 생긴 김에 속초로 날아갔다.
밤하늘과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속초항 방파제에서 낚시대를 던져놓고 마음껏 쉬었다.
낚시대, 의자, 가평 휴게소에서 사 온 잣샌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패드에 거치대까지,
완벽한 세팅을 마치고, 잠시 낚시를 즐겼다.
그러다 얼마전 프로 테스트때가 생각나
그때의 여운을 느껴보고자 중학생의 나를 불러내기로 했다.
15년 만에 더파이팅(애니)을 다시 켰다.
순식간에 몰입했고,
속된 말로 ‘존나 재밌었다’
그땐 전혀 몰랐는데 지금 다시 보니 애니에 나온 글러브, 복싱화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와 저거 관세 포함 50만 원... 위닝... 글러브... 저걸로 샌드백치면 손 맛 진짜 좋은데... 쩝..‘
첫 시합을 앞두고 긴장하는 주인공의 심리나 작 중 인물이 표현하는 기술을 보며 혼자 신났다.
‘오 맞아 맞아 저렇게 플리커로 치면 잽이 빠르게 나오는 대신 앞면 가드가 열려 있어서 위험할 수도 있지 그치그치..‘
‘아 저럴 때는 그냥 가드 단단히 하고 상대 영역 안으로 들어가야 돼, 방법이 없어 ‘
진심 복부 펀치를 맞았을 때의 그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은 맞아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복부를 맞고 쓰러지는 초보 주인공을 보며 나도 같이 얼굴을 찡그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배에 주먹을 맞아 상대가 ‘윽’ 소리를 내며 쓰러지면서 무릎 꿇고 몸을 새우처럼 마는 모습이 나오곤 하는데,
제대로 맞아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냥 영화에서나 나오는 과장 내지 영화적 허용(?)정도 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내내 낚시는 뒷전이고, 만화에 미쳤다.
작 중 주인공인 ‘일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먼치킨 캐릭터인 ‘타카무라’ 선배를 만나 복싱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프로 테스트를 보게 된다.
긴장하는 주인공을 보니 나도 내 프로테스트때가 생각나 덩달아 긴장돼, 손을 꽉 쥐었다.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그때 알았다.
단순한 공감을 넘어
“내가 이 세계관 안에 들어가 있었구나.”
이러니 재밌어 죽지
다음날 양양 고속도로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운전을 하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타워즈 광선검을 사고, 헝겊 넝마를 걸치며 제다이 흉내를 내는 사람들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 애니 캐릭터들이 부르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면
‘아... 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있네 ‘
‘그냥 그럼갑다~’하고 별 생각 안 했는데
어쩌면 그들도 자신이 동경하는 세계 안에 들어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너네도 진심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