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쓰고싶지 않은 날들이 왔으면 좋겠어.
내가 무언가 적으려고 한다면
나는 그때 필시 감정의 과잉상태임에 틀림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하루를 보낸 뒤에,
혹은 그 길고 깊었던 연애가 끝난 뒤에
나는 보통 무언가 적고 싶어졌다.
그래서 때로는 생각해본다.
글쓰기를 밥벌이로 해야하는 전업작가들은
늘 감정의 과잉상태에 놓여있어야 하겠구나,
스스로를 그러한 상태로 몰아 넣어야 하겠구나
라고.
아무것도 생각할 틈 없이 일만하거나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따위의 감정이
+,- 도합 0이 된다면
그럴때는 무언가 적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으니까.
요새는 보통
+ 방향 보다는 - 방향으로
감정의 과잉상태를 자주 경험한다.
그 결과 자꾸만 새벽마다
쓸데 없는 글들을 적게되고
아침이면 후회를 하게 되지만
또 지우기는 아까워서 어쩔줄 모르는 일의 반복.
느리고 더디게 글을 써왔던 터라
무언가 자주, 귀찮게 올라오는게
몇 안되는 독자분들께는
반가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자꾸만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
그런 +-제로의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글쓰는게 밥먹여주는건 아니니까.
독일, 드레스덴
2016
Jacob's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