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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Apr 04. 2019

다시, 긴 여행

다시, 부다페스트

만료된 여권에 구멍을 뚫어놓고

여행을 멈춘지 2년하고도 4개월이 되었다.


틈틈이 국내 어디론가 다니기는 했지만

그것은 스스로 여행이라 부르기 민망한

그런 종류의 어느것이었다.


그간에는 그저 괜히 항공권만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여행이야기에 대리 만족을 하기도,

배 아파 하기도 하며 지냈다.


늦은 나이(26.99세)에 군 복무를 하며

다소 장기간 경력단절이 되었던터라

떠나는 삶을 사는 자유로운 영혼 보다는

얼른 정착해서 남부럽지않게 사는 삶을 꿈꿨다.


1년 가까이 여행을 할 수 있는 돈으로

항공권 대신에 차를 사고,

벌이를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생각만큼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침체된 경기 탓인지 운이 따라주지 않는지

그것도 아니면 재능없음을

열정과 노력으로 대신해오던것이

한계를 드러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처음으로 일을 하며 좌절감을 맛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계속 나의 생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일이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카페투어와 독서로 버티던

비수기가 끝날즈음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일자리가 생긴것이다.


많은 보수는 아니지만

충분히 납득할만한 연봉과 처우를 약속받았다.

그리고 내가 원하면 얼마든 머무르거나

언제든 stop을 외치고 돌아올 수 있는 조건까지.


사실 이전에도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

이것보다 좋은 조건의 자리가 있었지만

외면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부다페스트.

무려 부다페스트였기 때문에.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이틀 밤을 지새우면서 고민을 했다.


23살의 나는 혈혈단신 호주에 가서

설겆이부터 캠핑카 청소까지 안해본것이 없지만

29살의 나는 아무래도 조금 더 두려운게 많아졌다.


그러나 고민끝에 결국엔 가기로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그리고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나서 하는 후회가 늘 적다는 생각에...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

서둘러 여권을 새로 발급받고

일주일만에 티켓팅 까지 마쳤다.



다시 긴 여행을 떠난다.

2013년 이후 6년 만이다.

다시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2016년 이후 3년 만이다.


8개국 20여개의 도시를 다녀와보면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기억에 남았던 곳.


우연히 만난 다른 여행자에게 추천받아

하루만 들렀다가자 했다가

삼일을 더 머물렀던 곳.


세탁기 돌아가듯 덜컹거리는 지하철과

100년은 더 되어 보이는 아파트먼트,

겔레르트 언덕에서 보았던 환타색 하늘과

황홀하다는 말만 나오게 하는 웅장한 야경,

그리고 굴라쉬, 굴라쉬의 나라.


2년 4개월전

마지막 여행지였고

그 이후 가장 그리워했던 그 곳이

다시 첫 번째 여행지가 되었다.


얼마나 긴 여행이 될지는 모르겠다

수 개월안에 끝날 수도 있고

수 년이 될 수도 있다.


그저 행복을 찾아 가니까

행복하지 않아지면 그때 돌아와야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201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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