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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04. 2022

동료들 셋이 책을 썼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쓰는 독후감

같이 일하던 동료 셋이 책을 썼다. 하늬를 만나서 밥을 먹다가, 셋이 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원고가 카톡으로 왔다. 책 쓰는 동료들을 둔 덕분에 책이 나오기도 전에 책을 읽어보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나는 이들과 13개월을 일했다. 개인의 가치와 조직의 가치가 비슷해서 일에 빠져 일할 수 있었고, 마침 조직 역시도 한국에서 임팩트를 키워가고 있던 시기여서 일의 밀도가 높았다. 덕분인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많이 가까워졌고, 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도 함께할 수 있었다. 


다정과 하늬는 이 시기에 결혼을 했고, 둘의 브라이덜 샤워를 회사 여자 동료들이 함께 준비했었다. 몰래 준비한 다정의 브라이덜 샤워는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고, 요구 사항이 있었던 하늬의 투명한(?) 브라이덜 샤워에서는 상수역 한복판에 진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예비 신부를 만나야 했다.(이런 사람 그 때 처음 봤는데, 그 이후로도 아직 본 적은 없다) 계속 이어지는 크고 작은 회사의 일 사이에도 멈추지 않는 일상의 사건과 고민들을 매일 만나는 얼굴들과 나누면 되는 때였다. 이렇게 회사의 동료가 회사를 나와도 계속 동료이자 친구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들이라 이들에 대해 제법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평범한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 흐름이 되고, 사적인 이야기도 쌓여야 모두를 위한 울림이 된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지역으로 이주해서도 내 일을 지킨 여성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유진,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에서)


셋이 쓴 글을 주로 출퇴근 셔틀에서 읽었다. 읽다가 울기도 하고(유진이 열살의 자신에게 쓴 편지 부분과 다정의 엄마 미숙씨 부분에서 오열), 다들 너무 자기 같아서 많이 웃었다(특히 얼굴과 목소리를 아는 사람들이 나누는 딱 자기들 같은 대화 부분). 일에 대한,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꿈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각자의 목소리로 쓰여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가 아는 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매일 세종과 광화문 사이를 오가는 유진의 마음에 ‘일을 잘하고 싶은 의지’ 말고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물어본 적 없고, 다정이 아팠을 때 아픈 걸 걱정하느라고 혼자 얼마나 무서웠는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언제나 씩씩한 하늬가 자주 만나지 못하는 먼 곳에서 왜 힘들어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냥 겉으로 보이는, 서울이 아닌 곳으로 이주해 삶을 꾸려나가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복잡하고 또 당연하고 유일한 이야기가 있다는 걸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새 클라이밍 슈즈를 샀다.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몰입하자는 결심을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다. 임신을 해서 클라이밍을 1년 쉬게 되더라도, 그때 다시 훈련을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구멍 난 입문자용 신발을 버렸다. 중급자용 신발을 지금 사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하늬, '계획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는 약속'에서)


이건 유진과 다정과 하늬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이유다. 우리는 우연들의 결합에 의한 선택을 해야할 때가 더 많은 현대인들이고,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보다 그렇게 한 선택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면서 내 것으로 만드느냐가 더 중요할때가 많지 않나. 그리고 복잡하고 당연하고 유일한 태도로 그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더 정확히는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 상황에서 이 세 사람이 어떻게 자기 일을 하고, 더 나아가 자기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다. 상황에 나를 내버려 두지 않기로, 나중에 올 어떤 것을 바라면서 지금을 유보하지 않기로 결정한 여성들의 이야기. 그 결정은 혼자하는 것이지만, 그 혼자의 결정은 곁에 있는 동료들로 인해 더 나다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제는 그저 하나하나의 완성을 유심히 여기는 일상을 살고 싶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완성하고, 사랑하는 우리 집 두 남자와 먹을 저녁 식사를 완성하고, 몇 주 째 작업 중인 그림책 장면 한 장을 완성하면, 꼭 뭐가 되지 못했던 오늘도 충분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충분한 하루 끝에 선 모두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정, '충분히 충분한 하루'에서) 


그래서 책을 덮으면, (이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각자가, 그리고 각자가 가진 이야기가 일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시작하게 된다. 수많은 나의 선택들이 만든 오늘을, 지금 여기를, 나는 어떻게 감각하면서 온전히 살아낼까,하는 고민을.


좋은 책이니 읽어보라는 말을 이렇게나 길게 썼다. 그만큼, 좋고, 고맙고, 또 자랑스럽다는 얘기다. 올해를 시작하며 읽기 딱 좋은 책. 내일까지 텀블벅에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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