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67 page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처음 떠오른 생각은, “할 말이 없다.”는 냉소적인 마음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을, 유부남과의 사랑을 소재로 삼은 용기 또는 대담함도 놀라운데, 마치 일기를 쓰듯이 담담하게 서술하는 작가의 차분함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과 도덕적 잣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내가 이런 일을 겪었는데 당신이 뭐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뻔뻔함도 아니고 “난 누구도 하지 못할 사랑을 실제로 체험해 봤다”는 으스댐도 아니었다. 어쩌면 작가는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은 후 아무렇지 않게 보이려고 죽을 만큼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서민 집안에서 태어나 각고의 노력 끝에 교수, 작가 등 엘리트 계층의 삶을 영위하면서도 아니 에르노는 ‘오토픽션’이라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들을 소설로 표현하면서 가족과 연인을, 그리고 ‘나 자신’이라는 근원적 기원을 잊지 않고자 했다. 임신중단, 불륜, 가족에 대한 애증 등 결코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일들도 그녀의 책 안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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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바르탕이 노래한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를 들으면서 사랑의 열정은 나만이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가요는 그 당시 내 생활의 일부였고, 내가 사는 방식을 정당화시켜주었다.
<단순한 열정>, 문학동네, 23 page
아니 에르노에게 대중가요는 단순한 음악 이상의 의미였다. 2020년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보리스 비앙(Boris Vian)의 노래 <Le Deserteur> 속 알제리 전쟁의 탈영병을 이야기하며, 국민들을 전혀 보호해 주지 못하는 국가 시스템을 비판했고, <세월>이라는 작품에서는 그녀의 삶에 스며들었던 노래들을 하나 둘 씩 소개했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인생노래가 있고 그 노래들은 내가 주로 들었던 시간의 분위기와 공기, 나의 마음을 머금고 있고, 쉽게 따라부르고 기억할 수 있기에 매일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심정을 그 어느 음악보다 더 잘 대변해 왔다는 것을 아니 에르노는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가수 실비 바르탕(Sylvie Vartan)의 이름에는 언제나 조니 할리데이(Johnny Hallyday)라는 이름이 따라다녔다. 야성적인 목소리의 록앤롤 스타 조니 할리데이와 고혹적인 허스키함이 트렌드 마크였던 실비 바르탕의 만남은 그야말로 세기의 커플이었고, 무대에서 1절과 2절을 주고받은 후 후렴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둘이 모습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15년의 결혼생활 끝에 1980년 이혼하게 된다. 그들의 결혼생활엔 사랑의 행복만큼이나 교통사고, 탈세문제 등의 짙은 어둠도 깔려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후에도 동료로서 함께 무대에 서고, 조니 할리데이가 2017년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관을 살며시 어루만지던 실비 바르탕의 사진을 볼 때마다 서로를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관계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 https://www.purepeople.com/media/johnny-hallyday-et-sylvie-vartan-sur_m1916742)
우리는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할 때마다 자연스레 대중가요를 떠올린다. 사랑에 설레하고 이별에 슬퍼하는 노래 가사가 마치 내 마음을 훔친 것만 같다. 사랑이야기가 진부하다고 하지만, 나의 사랑만큼은 특별하고 그 순간에 들어온 노래가 내 마음 속에 오랫동안 머문다. 실비 바르탕이 이혼 후 1989년에 발표한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 (C’est fatal, animal!)>의 가사에는 사랑과 열정을 넘어선, 상대방에 대한 광기와 절규가 느껴진다.
(프랑스어에 아직 능숙하지 않아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
우리 사이의 전쟁
하지만 먼저 상처를 주는 자가
거의 미치게 될 거야.....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
우리 사이의 사랑
하지만 이상을 원하는 누군가는
끝까지 거짓될거야.....
.....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라고 외치며 끊임없이 사랑과 질투를 이야기한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백 편의 시 중에서 고른 한편의 시이고 멜로드라마이자 멜로디였으며, 우리는 여전히 질투하지만 별을 잃는자가 결국은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라 말한다. 사랑하고 미워했던 마음의 질량과 부피가 서로 달랐기에 언제나 불공평할 수밖에 없는 사랑. 아니 에르노는 자신을 차갑게 등졌던 그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영원히 기억하고 실비 바르탕의 목소리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 넣었으리라. 그로 인해 행복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아도, 이것은 운명이기에 놓아버릴 수 없는 것. 하지만 이 사랑은 떳떳하지 못하기에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시키는 모습조차 인정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 쯤에서 다시 마지막 문장을 떠올린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각각의 삶이 피폐해진 나머지 누군가를 보듬을 여유조차 스러져가고 서로에게 팽팽한 날을 세우지 못하는 데 따르는 분노를 견딜 수 없다. 물질고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영원한 사랑, 순수한 사랑은 허공에 떠도는 먼지가 되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이 시간에, 내 마음을 할퀴는 상처와 인생에 먹구름을 피우는 슬픔이 오로지 사랑과 열정 뿐이라면, 그것만큼 축복받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니 에느로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그 열정에, “사치”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