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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Oct 29. 2024

역사 속 섹스와 매춘에 대한 이야기들, 두번째

오늘은 29금 #02


지난번 19금 이야기에 이어 오늘 10월 29일에,

29금 이야기를 해봅니다.


사드 후작.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우리에게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으로 잘 알려진 그의 본명은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명성 있는 귀족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로 태어난 그는 이미 10대 후반부터 난봉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섹스 반항아이자 사디즘의 원조 중의 원조.  성적 대상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쾌락을 얻는 ‘사디즘’이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훗날 신성모독과 감금, 폭행, 고문 등 온갖 가학 피학의 변태적인 성행위로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있던 13년 동안에도 끊임없이 포르노를 집필, 세계에서 포르노를 가장 많이 집필한 작가로 남아있다.


1912년 H.biberstein이 그린 사드 후작의 모습. 기욤 아폴리네르가 편집한 사드 작품집(1912년)에 수록됐다
사드 후작의 젊은 시절을 그린 초상. 프랑스 화가 샤를 아메데 필립 반 루가 그린 작품


그가 남긴 작품(?)들 중 본격적인 첫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극악의 고어물이라 할 만한 ‘소돔 120일’

소설은 꺼림칙한 소재로 가득하다. 동물과 거리낌 없이 수간하고, 납치한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강간과 윤간을 거듭한다. 근친상간, 소아성애, 신성모독, 가학행위에 이은 엽기적 살해는 덤. 세상 모든 성도덕을 부정하는 극단의 것들이 나열되어 있다.


1785년 그가 바스티유 감옥에 있을 때, 두루마루 종이를 모아서 변태적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는 ‘소돔 120일’을 집필하고, ‘신 쥐스틴, 미덕의 불행’(1791년), ‘쥘리에트, 악덕의 번영’(1797년) 등 여러 소설을 탈고한다. 나폴레옹은 “이 변태소설의 익명작가를 당장 체포하라”고 했을 정도로 사드의 작품을 혐오했다고.


사드 후작의 말년을 그린 영화 ‘퀼스’의 한 장면
사드 후작이 바스티유 감옥에서 쓴 ‘소돔 120일’ 친필 원고


'소돔 120일'의 원고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 중 사라져 그의 사후에나 재발견되었다.  여러 수집가들의 손을 거치다 2017년 그의 육필 원고가 프랑스 파리 경매시장에 나왔는데, 이 경매 때 프랑스 정부가 중요 국가 문화유산이라는 이유로 즉시 경매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프랑스의 보물”이 경매를 통해 외국으로 유출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프랑스 문화부는 450만 유로, 우리 돈 약 60억 원에 이 작품을 사들였다고 한다.


한걸음 더 그 행태를 들여다보면 어린 소녀들 사건이 많았는데 주로 하인으로 고용을 해 감금을 하고 섹스노예로 삼았다는 것. 집단성교 강요와 결박 및 심리게임, 폭력을 동반한 거친 섹스를 했다고 한다. 다만 폭력은 연상하는 것만큼 심한 정도의 폭력은 아니었다고 하는데, 강제로 능욕당하는 여인의 입장에서 그게 무슨 차이겠냐만.  특히 매춘부나 여인들로 하여금 신성모독을 하게 한 점이 더 기괴하게 뒤틀린 그의 내면을 엿보이게 하는데, 다름 아니라 예수의 몸(성체)을 의미하는 성찬용 빵을 가져다 음부에 넣는 방식으로 신을 모독한 것이다.


펭귄북스가 발행한 사드 후작의 ‘소돔 120’일. 사드가 변태적 성욕으로 종교를 조롱했듯, 엉덩이 사진으로 십자가를 형상화했다
‘소돔 120일’의 실제 배경이 된 프랑스의 라코스테 성. 사드 후작은 이곳에서 실제로 미성년자들을 납치해 가학성교를 자행한 걸로 전해진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폐허가 됐다가, 유명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사들이면서 재정비 됐다)


더불어 그는 ‘스패니쉬 플라이(Spanish fly)’라 불리는 거의 유일한 여성용 최음제를 먹였다고 한다. 현지의 똑같은 벌레 이름에서 유래한 이 약은 가뢰(딱정벌레)과 벌레의 추출물을 이용했다 하는데, 정확한 성분은 비밀로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복용 시 입과 성기에 타는 듯한 자극을 받을 정도로 강하게 신경계를 자극하는 독성이 있어 과다복용 시 혈뇨나 급성신부전을 일으킨다 한다.


사드는 자신을 신처럼 생각해 점점 망상에 빠지며 자신의 현실에서 중세시대 판타지를 실현하려 했는데, 장모의 다른 딸까지 건드려 겁탈하고 이탈리아로 데려가 버려, 결국 이 사건이 탈을 일으켰다.  자신의 다른 딸까지 건드린 패륜에 분노한 장모가 봉인명령서를 쓰게 하고 이에 그는 재판 없이 구금, 바스티유에 갇히게 되었는데 프랑스혁명 때 성난 군중의 본격적인 습격 전에 어수선한 틈을 타 나오게 된다.  감옥을 습격하라고 군중을 선동하자 이를 귀찮게 여긴 군중들이 오히려 그를 쫓아내 버렸다는 것이 정설인 듯. 이후 나폴레옹이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버렸다고 한다.  장모에 대한 복수를 위해 끊임없이 극단적인 포르노 소설을 쓰고 출판까지 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책들은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에서도 출판금지 서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에서 ‘사디즘’이란 말이 나오긴 했으나, 실제로는 프로이트가 언급하기 전까진 그리 널리 쓰이던 말은 아니었다고.


사드의 또 다른 대표작 ‘쥐스틴 미덕의 불운’ 초판 첫 페이지. 감옥에서 이 작품을 쓴 것으로 전해지며 나폴레옹은 이 작품을 혐오해 사드 후작의 체포를 지시한다.

(사드는 그 이후 정식재판 없이 바스티유 감옥에 13년간 구금됐다)


사드는 이상성욕자였지만 그에겐 고립주의(isolisme)라는 철학이 있었다. 고립주의란 “이 세상은 모두 고립된 존재기 때문에, 타자의 극심한 고통은 나 자신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반면, 스스로가 경험하는 아주 미미한 쾌감은 큰 감동을 준다”는 명제를 신봉한다.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 없이 극단적인 쾌락만 추구하는 이유일게다.


사드의 고립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통찰이 있다. 지금도 우리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학살에는 무관심하지만, 우리 삶 속 작은 고락에는 크게 반응하고 있지 않은가.  

인류의 역사를 돌아봐도, 고립주의적 해석에 힘이 실리는 사례가 많다. 나치가 무심한 일상처럼 유대인을 독가스실에 밀어 넣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 저지른 잔혹한 학살의 만행은 또 어떠한가. 광기의 폭력에 침묵하고 겉으로는 멋들어진 명분으로 포장하며 실은 자국의 이익만 챙기는 선진국들의 위선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드 후작의 ‘소돔 120일’을 영상화한 영화 ‘살로, 소돔 120일’ 중 한 장면. 시대적 배경을 나치가 지배한 근대 이탈리아로 바꿔 그렸다.

(지배층 4인이 소년, 소녀를 납치해 집단 강간, 고문 후 살해하는 기본 포맷은 동일하다. 극단적인 성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영화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뽑혔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철학자들이 당대의 성과 도덕에 관한 모든 기준을 무너뜨렸다는 점에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존 소설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희소성’도 사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에 하나.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가장 자유로운 영혼”(소설가 기욤 아폴리네르)이라거나 “사랑의 상상력을 해방시켰다”는 극찬도 나왔다. 20세기 초반 예술의 주축이었던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드는 우리에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한다? “

“그건 자연에 위배되는 말이야. 자연은 언제나 쾌락만을 권장하거든.”


사드 작품의 놀라운 점은 페미니즘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작인 ‘신 쥐스틴’과 ‘쥘리에트’가 그러한데, 자매인 쥐스틴과 쥘리에트는 선과 악을 대표하는 정반대의 인물로 쥐스틴은 착하고 예의 바르며, 총명한 사람이었고, 언니인 쥘리에트는 품행이 방정맞고, 색욕에 가득한 여성으로 나온다.

전형적인 소설이라면, 쥐스틴은 흥하고, 쥘리에트는 벌을 받아야 할 것이나, 사드는 노골적으로 권선징악을 비웃는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쥐스틴은 그들에게 빼앗기고 폭행당하면서 결국 강간까지 당하는 것. 선인 쥐스틴의 죽음을 묘사한 대목은 사드의 가치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악녀의 번영을 그린 책 ‘쥘리에트’내 삽화. 우정을 헌신짝처럼 여긴 쥘리에트가 공모자와 함께 자신의 친구를 베수비오 화산에 던지는 모습


쥘리에트는 자신의 몸을 파는 데 주저함이 없고, 거기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한다. 그녀는 친아버지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맺다가 머리에 총을 쏘기까지 하고, 동성애와 난교파티를 거리낌 없이 하는데도, 그녀의 삶은 최상위 권력으로 승승장구한다. 교황과도 성관계를 맺는 인물이었으니 말 다했다. 바로 쥐스틴의 제목에 ‘미덕의 불운’이, 쥘리에트의 제목에 ‘악덕의 번영’이 붙은 배경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는 기존 남성들의 ‘창녀’에 관한 선입견을 해체했다는 이유로 쥘리에트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사드 이전의 작가들은 “여성은 본질적으로 정숙한 존재로 창녀들은 그들을 팔아넘긴 사악한 부모들의 희생양”으로 그렸고, 그 이면에는 여성은 본성적으로 정숙해야 하고, 성에 관심이 없는 존재라는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


사드 후작 작품의 창녀들은 당대의 여성관을 완전히 전복해 버린다. 그들은 배신이나 유혹을 당한 것도, 교활한 포주에게 속아서 악의 세계로 들어온 성관계 경험이 전무한 시골 처녀도 아니었다. 당당히 자신의 의지와 욕구로 창녀가 되길 원하는 존재들이었으며, 작품 속 ‘쥘리에트’의 대사는 새로운 여성관을 여실히 대변한다.

“내가 창녀였다고 공개적으로 선언되었으면 좋겠어. 내 몸을 파는 것을 금지하는 그 비위에 거슬리는 서약을 깼으면 해.”


사드의 작품 속에는 여성이 폭력의 주체로, 남성이 객체로 전락하는 장면이 많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사드가 여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사진은 벨기에 예술가 Luc Lafnet의 Dresseuses d‘Hommes (1931). 제목은 우리말로 훈련시키는 사람이란 뜻이다. 남성이 채찍을 든 여성에 복종하고 있는 모습)


그의 작품에서 벌어지는 성관계에서도 성역할의 전복이 수시로 일어나는 점도 페미니즘 요소로 여겨진다. 가학적인 성관계에서 사드는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공식을 거부하고, 때로는 여성이 채찍을 남성에게 휘두르며 가학적으로 다루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당시의 성관념으로는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전위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포르노가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한다고 반대한 입장과는 달리, 오히려 포르노 작품을 통해서 전복적인 여성상을 구현해 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페미니스트인 안젤라 카터는 “사드적 여성”이란 이름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남북전쟁과 섹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시대의 성 풍속도는 어땠을까.  청교도주의에 바탕한 고전적 사회규범이 강력한 힘을 발했던 미국에서 매춘은 남북전쟁을 계기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생존이라는 명제에 몰입하게 된 병사는 자기 보호 본능을 종족번식으로 풀어내려 했고, 죽음의 공포를 잊게 해주는 해방구로 섹스를 선택했다. 전쟁이 매음굴의 문턱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1860년대 남북전쟁 당시 불결한 전장에서 이루어진 매춘의 후유증으로 인해 7만이 넘는 병사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너무 비싸 콘돔을 살 수 없었던 병사들은 별다른 예방책 없이 성관계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음경에 수은 주입하기, 굽은 성기 내려쳐 곧게 펴기 등 당시의 끔찍한 치료법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성욕을 막을 순 없었다고.


남북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당시의 워싱턴 D.C. 에서 가장 번성한 사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매춘이었다.  개척가 포주인 매리 앤 홀의 최고급 업소는 현재 업소들의 모델이자 관행이 되었다. 재봉사가 1주일에 1달러를 벌고 여성은 투표권도 없었던 시대에 당시 가장 돈을 많이 벌었던 여성이 되었다.



♥  뉴올리언스 - 재즈의 도시, 섹스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섹스에 대한 개방적인 접근을 통해, 1890년대 만연하던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 도시의 일정 영역을 외부와 완벽히 분리한다.


그 분리는 ‘경찰 단속은 없다. 의무적 의료검진도 없다. 자유를 허락하되, 단 이곳 밖의 지역으로 나가서 매춘을 하면 강력히 처벌한다.’ 는 지극히 단순한 규칙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지역 주민들이 부른 이름 - 스토리빌.


이렇게 합법화된 매춘 지역은 특별한 실험의 결과로 20년간 호황을 누린다.  스토리빌의 포주들이 만든 블루북이 있다.  여성들의 이름 목록과 가능한 관계들에 대한 설명집이랄까.  당시 지역 내 매춘부들의 1/8이 O.C.T, 옥타룬스라 불린 혼혈 여성이었으며, 스토리빌에서는 백인 남성과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이 성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당시 심각했던 인종차별과 이를 용인한 미국의 분리주의 정책 하에서 어찌 보면 유일하게 인종 간의 통합(?)이 이루어졌던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스토리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돈으로 인해 부의 과실을 스토리빌 사람들이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이들은 정기적으로 이를 과시하는 쇼를 열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곳에서 만들어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바로 '재즈(Jazz)'이다.  뉴올리언스는 이렇게 재즈의 도시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윤락가에서 일하던 사람들 -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홍등가의 재즈연주자이자 도박꾼, 창녀촌의 기둥서방까지 전전했던 젤리 롤 모튼(Jelly Roll Morton, 재즈 피아니스트), 그리고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까지.

스토리빌의 윤락가가 재즈 역사의 상징적 인물들과 함께 본격적인 재즈 음악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괴승, 요승의 대명사 - 그리고리 라스푸틴 (Grigori Rasputin).



제정 러시아 말기의 파계한 수도승이자 예언자, 신비주의자이며 전설적인 색정광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혁명. 왕조에서 공산주의로 정치체제가 바뀌는 데는 바로 이 유명한 섹스 스캔들의 여파가 일조한 바가 크다.


니콜라이 황제의 아들 로마노프 황태자의 병을 호전시킨 일로 신임을 얻은 그는 황후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멋대로 주물러 러시아 제국의 몰락을 부채질했는데, 러시아 귀족 부인들에게 둘러싸이던 그를 러시아 남자들은 탐탁잖게 생각하였다. 마침 1차 대전의 여파와 농노들의 불만 등 안팎으로 어려워진 상황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마침내 유수포프공이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다.



파티에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즐기게 하고 음식에는 청산가리를 잔뜩 넣었는데.. 괴로워하나 죽지는 않는 그를 향해 총을 꺼내 쏴 죽이고 그의 죽음에 축배를 들고 있는데 몇 시간 후 라스푸틴이 벌떡 일어나 공격을 가하다. 이에 친구들과 함께 때려눕히고 등에 총을 세 번 더 쏘고 양탄자에 둘둘 말아 차가운 강에 던져버린다.


강물에 흘러 이후 발견된 그의 시신은 해부되는데, 모두 깜짝 놀람. 바로 허파에 물이 들어차 있던 것.  즉 그렇게까지 했는데 그때까지도 죽지 않고 헤엄치려 하다가 강에서 익사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그의 가장 유명한 신체 일부는 살아남는데, 바로 그의 성기를 잘라낸 것.  이걸 궁의 하녀가 몰래 숨겨두었고, 세월이 흘러 이후 1994년 한 의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 박물관에 전시하였다.  기괴하게 큰 그것의 사이즈는 34.3cm. 러시아인 일반  남성의 평균 크기는 13.2cm라고.



존 하비 켈로그 박사(John Harvey Kellogg) - 우리가 모르는 켈로그 박사의 두 얼굴



자위(masturbation)에 대한 전 지구적인 편집증이 있던 시절. 19세기까지도 기형아 출산, 부부관계의 파괴 등을 유발한다고 여겨 자위를 하다 발각되면 곧바로 정신병원행이었다고 한다.


켈로그 박사는 바른 음식 섭취를 통해 자위를 끊게 할 수 있다고 여겨 공격성을 줄여주고 자위를 끊게 해주는 무언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유명한 그가 만든 발명품, 콘플레이크였다.  ‘콘플레이크’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의 식사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취하지 않고 할례하기(남자 아이들)’ ‘음핵 제거(여자 아이들)’ 등 그야말로 자극적이고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방법을 권장하여 성욕과 성적 즐거움을 없애 - 생각을 하면 고통만 떠오를 것이므로 - 자위를 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CIA의 그늘진 역사, MK Ultra (Operation : Midnight Climax / 작전명 '한밤의 절정')


미중앙정보국 CIA. 1947년 트루먼 행정부에서 정신통제 부서 ‘MK울트라’라는 부서를 신설한다.

CIA가 진행한 일종의 정신통제 연구이자 불법 심리실험, 생체실험으로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거울을 설치한 방을 통해 성적 상태와 약물을 통해 상대로 하여금 비밀을 누설하게 하는데 얼마나,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려 한 시도.



미인계를 활용한 스파이 작전이나, 적국의 시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알고 싶었던 무소불위 정보국의 어이없는 작전이었는데 한창때에는 CIA 예산의 6%를 차지하기도 했다고.


"Can we get control of an individual to the point where he will do our bidding against his will and even against fundamental laws of nature, such as self-preservation?

(개개인을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고 우리 명령을 따르도록 조종하는 것이 가능한가? 자기 보호 본능 같은 자연의 기초적인 법칙을 거슬러가면서?)"


그 유래는 한국전쟁이 끝나가던 1953년 4월 13일에 CIA 국장 덜레스가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 귀환한 포로들 중 일부가 공산군 측에게 받은 세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공산군 측의 가공할 세뇌기술에 경악하여 미국도 자기네가 잡은 포로들에게 똑같은 방법을 해보기 위해 시작했던 프로젝트에서 기인한다.

‘미드나잇 클라이맥스’ 작전은 다양한 약전과 마약으로 정신 통제가 가능한지와 성적인 환경을 도마 위에 올렸다.



‘더 패드’라 불린 한 아파트. 한쪽이 유리창인 거대한 방에 매춘부를 고용하고 성적인 상태를 유발. 실험 대상자들에게는 알리지도 않은 채 불법적으로 LSD를 투여하고 비밀로 하고 있는 내용을 물었다.  성과 마약이 난무하는 환경은 작전을 타락시켜 곧 통제불능의 상태가 됨. 스트레스와 약물을 투여하여 실험체의 반응을 보는 이 작전에 대해 당시 책임자가 남긴 ‘너무 재미있음’이라는 메모가 발견되기도 하였다고.  이 실험은 9년이나 지속되었으며 의회도 몰랐는데, 새 감찰관이 오면서 꼬리가 밟혔다고 하며 1974년 뉴욕타임스의 폭로로 알려졌다.  



이 실험에는 마약류 사용, 전기충격, 최면, 심신상실, 성고문, 언어폭력, 고문 등이 사용되었으며, 결국 뜨거운 실험실은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어 아무런 결과도 없이 대실패로 끝난다.  이로 인해 1963년 작전 종료 이후 CIA의 작전을 감시하는 부서가 생겼다고.  

이후 1995년 미 대통령 빌 클린턴이 1950년대 행정부를 대신해 공식 사과를 밝혔다. 잘못된 성 실험의 가장 좋은 사례가 되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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