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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Oct 28. 2024

'밤하늘 은하수를 걸을 수 있다면' 소설을 마치고


어제 갑자기 16편의 글을 한꺼번에 와르르 올려서 민폐를 끼친 듯싶기도 한데, 통계를 보니 그 덕분인지 조회수는 평소의 배 이상 뛰었더군요..


사실 6월 중순쯤인가, 브런치 공모전 '소설' 부문에 응모를 해 볼까 생각하고 큰 줄거리에 대한 구상과 컨셉을 잡고 이따금씩 이어서 쓰던 소설이 하나 있었습니다. 처음엔 잘 써지는가 싶더니 글이 이어질수록 쓰고 있긴 한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고 처음에 생각했던 퀄리티에 못 미치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중간에 좀 쉬기도 했고요.


워드 프로그램 기준으로 어찌어찌 50~60페이지 분량까지 이어 나가긴 했는데, 여기서 또 고민이 되는 것이 이쯤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소설을 마칠지, 아니면 이어지는 스토리를 더 구상하고 다듬어서 계속 써 나갈지 하는 고민이 되는 것이었어요.  만약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간다면 그 스토리는 또 두세 갈래의 길이 고민이 되고.. 역시 소설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공모전에 응모를 하지 않기로 내심 마음을 먹게 되었고, 쓰던 소설은 그렇게 마음먹은 상황이라 당연히 지금까지 쓴 내용에서 이야기를 종결짓는 형태로 좀 더 끄적였을 뿐, 구상하던 여러 갈래의 이어지는 스토리는 더 이상 생각의 끈을 멈췄더랬죠.


그런데 나름 4개월여간 썼던 글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그런 심리가 있었는지 어제 공모전 응모 마감일이 닥쳐오자 왠지 다시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저녁이 되어 결국 마음이 다시 돌아섰어요. '그래, 기왕 써본 거 내 마음에도 안 들긴 하지만 그냥 한번 응모는 해보자. 어차피 손해 볼 건 없으니 말야' 하고요.  그래서 급히 목차를 나누어 브런치 북으로 응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범적이던 고등학생 주인공이 집안 사정에 의해 정서적인 방황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가출까지 하게 됩니다. 이후 집 밖으로 나가서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는 일들, 그리고 사회에서 맞닥뜨린 여인들과의 인연과 사랑.. 그리고 대학입시를 보고 20대에 접어들면서 짧은 대학생활과 군에 입대하기까지의 방황기랄까 성장기랄까, 일종의 청춘스케치를 그려 보았습니다.


시대 배경이 1990년대 초반이기 때문에 아마 지금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보기엔 이해가지 않거나 생경한 문화나 이야기가 제법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삐삐 문화, 삐삐에 숫자를 보내어 메시지를 전하는 뭐 그런 것이라든가..


하지만 시대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사회 인프라의 모습이 차이가 있어도, 역사를 보면 언제나 젊은 청춘들은 그 시대에 의문을 품고 방황하고, 때론 기성세대에 반항을 하며 스스로의 성장을 이루어 나갔더랬지요.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렇게 히트했던 것을 보면 생경한 문화상에 대한 이야기 자체는 그것을 직접 겪어보지 못해 잘 모르는 세대에게도 충분히 흥미와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누가 어떻게 그려내는지, 작가나 연출의 역량에 따라 그럴 수 있고 없고 가 좌우되는 문제이겠지요.


프롤로그를 제외한 초기 1~4화까지의 이야기는 저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조금 녹아들어 가 있고, 그 이후의 이야기부터는 순수한 창작의 세계입니다만, 그 시절 이 땅의 청춘들이 충분히 겪었음직한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이 소설을 읽는 중장년층의 분들은 여러 부분에서 공감을 느끼거나 추억에 젖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내가 직접 경험하고 알던 시대의 모습은 아니지만, 현재 20대~30대의 젊은 분들께서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었다, 싶은 마음만 드셨다 해도 충분하고요.        


소설의 제목, '밤하늘 은하수를 걸을 수 있다면'은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뜬금없는 제목이랄 수 있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던 어린 시절, 마음에 가닿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무기력함에 빠져들기 쉬운 그때, 그 시절의 갈망하는 마음을 담은 소망 같은 표현입니다.


돈이 많아서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살 수 있었다면, 준혁에게 좋은 과외 선생님을 붙여줄 수 있었다면, 부모 없이 경제적 빈곤에 험한 돈벌이를 나가던 경희를 구원해 줄 수 있었다면.. 과 같은 마음들이죠.      


브런치북 소개 글로 적은 내용을 다시 한번 환기해 봅니다.


"힘들어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그대들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먼저 올라가 사다리를 걷어차버린, 기득권을 누리는 꼰대 같은 기성세대들도 한때는 피 끓는 청춘이었고, 꿈 많은 풋풋한 젊은이였었다는 사실을. 오래전에도 그 시대를 살았던 청춘들에게는 그 시대 나름의 아픔과 절망, 그리고 또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그 시절에도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것 하나 없이, 점점 더 절망으로 빠져들기만 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의 청춘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이제는 이런 시대니 그래서 어찌어찌 살아야 한다.. 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그들 곁에 앉아 우리도 그 나이 때는 그랬지, 그렇게 힘들었고 그렇게나 방황했었지.. 하며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는 그런 이야기.


감히 시건방진 표현이겠지만, 바라건대 나의 20대 시절 깊은 울림을 주었던, '상실의 시대' 같은 소설. 그만큼의 1/1000 만이라도 공감과 울림을 줄 수 있기를..."



저의 의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맘먹었던 일에 대한 숙제를 하나 끝낸 듯하여 조금은 홀가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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