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크슈타인 Oct 26. 2024

역사 속 섹스와 매춘에 대한 이야기들

오늘은 19금 #01


매춘은 무당이나 마술사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직업이다.

4,000년 전 수메르인이 남긴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창기가 주역으로 등장한다. 창기가 길가메시의 적수인 엔키두를 유혹하는 장면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녀가 속치마를 벗고 두 다리를 벌리자 그는 여자의 매력을 보았다. 그녀는 서슴지 않고 그의 정열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옷을 벗자, 그는 여자 위에 엎드렸다.”

 

‘아직은 아니지만 순결을 달라’ - 토마스 아퀴나스

매춘은 성경에 빈번히 언급되고 있으나 대개는 필요악으로 매춘부를 용인하고 있다. 교회는 매춘 행위를 막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인간이 하는 일체의 성교 행위는 멸망으로 가는 짓이라고 주장한 아우구스티누스조차 “매춘이 비록 추잡하고 음탕한 행동이지만 매춘부를 인간의 행위로부터 제거해 버린다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색정으로 더럽힐 것”이라고 말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매춘 행위를 “바다의 오물이나 궁정의 하수구”에 비유하면서 “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서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라며 매춘의 '필요악'을 역설했다. 이와 같이 중세 유럽의 교회는 매춘을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면서도 프리랜서를 불허하여 매춘 산업을 독점하였고, 성직자들이 바로 윤락가의 주요 고객이었다. 심지어 정기적인 윤락가 방문자의 20% 가 성직자였다는 설도 있다. ​

교황 식스토는 매춘에 세금을 부과하였고 부패와 근친상간 등 최악의 교황으로 꼽히는 알렉산더 6세는 매춘업소에 부동산 임대업을 하기도 하였다. (그의 자식 중 한 명이자 그가 대주교, 추기경으로 만든 이가 바로 ‘체사레 보르자’ 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제시하는 목적을 위해선 불의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한 권력자의 모델)


이처럼 거의 1천 년간 성직자와 매춘부는 협력관계라 할 수 있었고, 매춘부들은 종교미술에서 천사와 성인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매춘부가 교회에 자선기금을 내도록 하여 (‘그럼 너의 죄는 사하여진다’) 돈이 들어왔으므로 카톨릭 교회도 매춘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었는데..


종교개혁 시기에 매춘이 교회의 부업이냐는 비판으로 교회 독점의 윤락업소는 드디어 문을 닫게 되었다.

물레를 돌리는 테오도라

서기 500년. 콘스탄티노플. 가난한 곰 조련사 아버지와 배우이자 댄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성과 곰에 둘러싸여 자란 그녀는 매춘부로 다른 여자들과 차별화한 사업 전략을 펼친다.  바로 섹스쇼- ‘리디아와 백조’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고 이후 직업을 바꾸게 된다.  이때 얻은 별명이 ‘물레를 돌리는 테오도라’. 이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기 위해 (게다가 유혹의 기술은 그대로였으니), 혹은 결혼을 위해 이력 세탁을 하는 업소 아가씨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테오도라의 과거를 알고도 한눈에 반해 어머니의 반대는 어머니의 죽음 후로 기다리되, 법에 위배됨은 법령의 개정을 통해 극복하고, 이로써 그녀는 마침내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황후가 된다. ​

 


마을을 불태우고 때려 부수는 과격한 민중 봉기로 유스티니아누스가 도망가려 할 때, 테오도라가 한 말. ‘보라색(황제의 색) 망토를 쓰고 남아 싸우시오.. 정신을 차리고 설령 물리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황제로서 죽음을 맞으시오. 나는 도망치느니 황후로써 죽음을 맞이하겠소..’ 이에 자극받은 그는 결국 3만의 폭도를 진압하는데, 이 민중들은 모두 경기장에 몰아넣어져 잔혹한 죽음을 맞는다.

그녀의 총명함과 과단성을 인지한 황제의 전례 없는 조치로 그는 권력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테오도라에게 준다. 사실상 황제 위의 상황과 같았던 그녀. 한편으론 출신을 잊지 않는 착한 면모도 있었는지 여자의 평등을 인정하고 강제 매춘을 금지하며 수녀원을 열어 은퇴한 매춘부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 더불어 성 소피아 성당을 건설하는 등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진정한 콘스탄티노플을 만들었다. (이스탄불에서 매춘은 여전히 합법으로 남아있다.)

중세 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여성으로 기록되고 동방 정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기려진, 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후이자 유일하게 남편과 동등하게 황제의 권력을 가졌던 여인.  여담이지만 로마 역대 최고의 장군, 비잔틴 제국의 제일 무장 벨리사리우스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관계를 보면 선조와 이순신 장군이 자꾸 떠오른다.. 역사는 지구 이편저편에서 무한히 반복되는가 보다.

로마 이단 심문소가 무서웠던 다빈치



궁극의 르네상스인이라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굴꾼과 짜고 시신을 빼돌려 인체를 해부한다. 당시엔 남성의 발기가 바람이 불어 증기가 발생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빈치는 인체 해부를 통해 성기에 성스러운 바람이 아닌 피가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섹스에 있어 골반의 역할까지 밝혀냄으로써 제대로 된 섹스의 정의를 처음으로 정립한다. 하지만 당시의 관습과 인체해부 금지로 인해 그는 자신의 발견을 발표할 수 없었고, 이는 1700년대에 가서야 출간이 된다.

이를 보면 수많은 철학가, 예술가, 과학자, 발명가들이 발견하거나 연구했던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종교의 억압이 심했던 중근세-당대의 시대상 때문에 발표되지 못하고 혼자, 혹은 소수의 비밀로 묵혀있다 사장된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고대 인도의 성전(性典), 카마수트라 (Kama-Sutra)


좋은 섹스에 대한 조언. 이 동양의 유명한 고전은 매춘에 대한 조언, 바람피우는 남편을 혼내는 방법, 가/피학적 섹스 방법, 그리고 64가지 체위를 설명한다. 하지만 실은 단순한 섹스 지침서가 아니라 바람직한 부부생활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 진정한 ‘성’의 종합 교과서라 할 수 있는데..


19세기 섹스의 신비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던 성탐험대,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경(Sir Richard Francis Burton).  이슬람 성지 메카와 나일강, 아프리카 서부해안 등을 탐험했고 수많은 책을 썼던 그는 무엇보다 언어의 천재로 유럽은 물론 아시아·아프리카의 29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썼고 그 방언까지 줄줄 읊었다고 한다.  흔히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를 번역한 것으로만 잘 알려져 있지만, 인도에서 카마수트라를 접한 그는 바로 이 역사상 가장 화끈한 책을 완역한다.

1857년 영국에서 음란물 배포죄가 법으로 제정되면서 정식 출간을 하지 못하고 비밀리에 그의 고객들에게 개인적으로 구매를 권유하게 되고, 이에 열광한 버턴의 고객들은 이를 복사하여 해적판이 횡행하면서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각지에서도 해적판이 출간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비록 이 책의 번역으로 돈을 벌진 못했지만, 따분하고 고리타분했던 당시 영국사회에 즐거움을 선사했다.

무능력한(?) 비운의 스파이, 마타 하리(Mata Hari)


 

세계 스파이 사상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 태생의 여자 스파이.

자바섬에 살던 당시 배운 춤과 이국적인 외모로 돈을 벌며 파리에 입성, 물랭 루주 등을 무대로 선정적인 복장에 선정적인 춤을 추며 인기를 끌다. 이 과정에서 매춘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말하자면 지금의 고급 콜걸이었던 것이다. 예명 '마타 하리'는 태양이라는 뜻인데, 인도네시아어로 mata는 눈, hari는 하루라는 뜻이므로 mata hari를 직역하면 하루의 눈이라는 의미.

제1차 세계 대전 전후에 독일의 스파이로 연합국 측의 군기를 탐지한 죄목으로 프랑스에 잡혀 처형되었다. 그녀가 스파이임을 눈치챈 프랑스에서 역으로 제안하여 프랑스의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다 독일에서 흘린 역정보로 인해 그녀가 여전히 독일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 프랑스가 그녀를 체포하여 총살형에 처한 것.

하지만 스파이로서 그녀의 역량은 전무하였고(실제 독일군에서는 그녀의 스파이로서의 무능력을 칭해 소위 ‘불발탄’이라 불렀다고), 사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 명확한 인지조차 없었다.

그저 살아왔던 대로 자신의 이국적인 미모와 매력으로 삶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려 했으나 당시 혼란스러운 전쟁의 시기를 잘못 만난 철부지이자 비운의 여인이랄까..


사형에 쳐해 져 죽을 당시 마타 하리는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미소 지으면서 사수들에게 "어서 쏴요. 그걸 계속 들고 있는 것도 힘들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하며, 시신은 아무도 맡을 사람이 없을 테니 그냥 인체 해부용으로 기증하겠다는 생전의 말에 따라 사형 집행 후 그대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유명세는 뛰어난 스파이여서가 아니라 댄서(이자 매춘부)로서 유명 인물이었기 때문.

to be continued...

​(예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내용을 보강해서 앞으로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 보려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작가님들의 도움을 부탁드려 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