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소환
‘아버지와 나’라는 제목으로 아버지를 기리며 쓴 글은 마지막 ‘에필로그’로 지난 8월 하순에 이미 마무리를 지었었다.
그 뒤로 한주가 지나고 또다시 한주가 지났다.
12주, 그러니까 대략 3개월 간 매주 일요일마다 쓰던 글이어서인지, 한주를 건너뛰었는데 오늘 일요일에 또 아버지 생각이 난다.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마침 시안으로 성묘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다음 주 주말엔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사람들이 성묘도 많이 가고, 또 여행도 많이 가고.. 이래저래 차가 많이 막힐 것으로 예상되는지라 매년 한두 주 여유를 두고 조금 일찍 다녀오는 편이다.
그러나 어제도 도로가 무척이나 많이 막혔다. 본가로 가서 아침 9시에 출발했는데 내려가는 길에 두 시간 가까이 걸렸고, 성묘를 마치고 올라오는데도 분당-수서 간 고속화도로와 강변북로, 이어지는 동부간선도로까지 계속 막혀 1시간 40여분이 걸리더라.
어머니는 늘 그러셨듯이 가지고 간 수건을 꺼내 그간 쌓인 석묘 위의 먼지 때를 구석구석 닦으신다. 아버지 돌아가셔서 시안으로 모신 직후부터 오랜 기간 어머니는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마을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시안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혼자서 참 많이도 아버지를 보러 다니셨었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도 크셨을 것이고, 당신만 두고 너무 일찍 떠나버린 아버지가 그립기도 하셨을 것이고.. 섣불리 표현은 못해도 늘 짠한 마음이었다. 이제는 많이 연로하시고 무릎도 안 좋으셔서 성묘길을 매번 같이 다니지 못한 지는 꽤 되었지만, 이번 명절 전에는 꼭 같이 다녀오고 싶으셨나 보다.
챙겨간 황태포와 배, 사과, 샤인머스캣 같은 과일을 차려놓고 소주 한잔씩 올린다. 뿌리 깊은 종가댁이나 안동 같은 곳의 고택만큼이야 하겠냐만 집에서 제사상을 펴고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는 그래도 상 차리는 것부터 절하는 순서와 횟수까지 나름의 예법을 갖춘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달리 이렇게 성묘를 가서는 단출하게 차려놓고 소주가 다 떨어질 때까지 술잔을 다시 올리며 그때마다 절을 올리고 오는 것이 전부다.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아버지를 같이 모시면서부터는 네 분께 한 번씩 잔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마침 소주 1병이 챙겨가는 제기 술잔으로 딱 4잔이 나온다.
- 할아버지께 절 올리며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지만 막내손자 왔어요. 할머니랑 즐겁게 지내고 계신지요..‘
- 할머니께 절 올리며 ’ 할머니, 굽었던 등 곧게 펴시고 저 멀리 숲과 강이 흐르는 풍경 즐기고 계신가요..‘
- 아버지께 절 올리면서는 ’ 아버지, 술 한잔 시원하게 드시고 좋아하는 과일도 좀 드세요. 저도 이제 어느덧 인생의 절반은 살아온 거 같네요. 사는 게 바쁘다고 점점 더 자주 못 찾아뵈어도 너무 섭섭해 마시고요..‘
- 작은아버지께 절 올리며 ’ 작은아버지도 잘 지내고 계시죠? 이곳에선 작은아버지가 막내신데 막내노릇 실컷 하시고 귀염도 많이 받고 계신가요..’
절 올릴 때마다 한 번씩 마음으로 전하지만, 이내 자리를 치우고 일어나 돌아설 때면 여름엔 여름대로 이 뙤약볕에 남겨두고 옮기는 발걸음이 무겁기 그지없고, 거울엔 겨울대로 스산한 바람 속에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4월 한식 때 찾아뵙고, 5개월 가까이 지나 찾아뵈었으니 너무 오랜만에 찾은 성묘길이다. 생각날 때마다 불쑥불쑥 찾아뵙던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한겨울인 아버지 기일과 새해를 맞이하여 한두 번, 한식 때 한번, 추석 명절에 한번.. 1년에 서너 번 밖에 찾아뵙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을 조금 벗어난 경기도권, 광주시 오포읍이 무에 그리 멀다고 말이지. 그것 또한 죄송하다. 예전 같지 않은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이.
사람의 기억은 유한하다. 우리의 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기억이나 비통한 기억, 혹은 그다지 필요 없는 기억들을 재분류를 통해 지워버리거나 스스로 갈무리해서 해마와 시냅스로 얽히고설킨 신경망 저 깊은 곳, 장기기억의 창고 속에 밀어 넣어 버린다고 한다. 특별한 일이 있거나 추억을 소환시키는 강렬한 이벤트가 있지 않는 한, 일상에선 더 이상 떠올리지 않고 잊어버린 듯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영혼이란 것이 정말 있다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까. 영혼이나 의식이라는 것이 형체가 없이 뇌의 전기적이고 양자역학적인 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을 터. 다시 한번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고 싶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해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던가.
이럿듯 떠나가신 분을 기억하고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역사 이래로 접신을 한다는 무당의 주술이나, 고인을 불러 소통하게 해주는 영매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았으리라.
문득 어린 날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꼬꼬마였던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갔던 어렴풋이 남아있는 포장마차 속 오돌토돌해 보이는 천엽이 징그럽게 느껴졌던 알콜 내음이 뒤섞인 장면, 가까운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들른 해장국집에서 처음으로 봤던 선지해장국의 충격적인 비주얼과 비릿한 핏내음, 커다란 눈송이가 펑펑 끝도 없이 내려 날이 밝기 전 한 새벽에 잠에서 깨우는 아버지의 호출에 끌려 나와 무릎까지 차올랐던 눈을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치우던 기억,
장마 때마다 물난리로 방에 물이 차올라 대피를 하던, 그리고 그 속에서 철없이 물놀이를 하던 기억, 할머니가 마당에 떨어져 죽은 참새를 구워 주셨던 기억, 등화관제 훈련을 한다고 야밤에 일제히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촛불 주변에 모여 앉아있던 기억, 비상근무가 걸릴 때마다 밤을 새우고 오시거나 집에 있다가도 야밤에 출근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받고 신나서 전기구이 통닭을 뜯던 기억,
대학생 때 용돈벌이로 지원했던 구청 알바를 하면서 청소과에 배치되었을 때, 우리 아버지도 이 구청에서 근무하신 적이 있다 하니 누군지 물어보고 모두 한 입으로 좋은 분이셨다고 칭찬을 해서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 아버지 정년퇴임 후 예전에 직원들하고 자주 가던 맛집이라던 개고기 집을 아버지 모시고 처음으로 갔던 기억,
서울대병원에서 긴급으로 잡힌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오신 날 밤의 급격히 힘 빠지고 노쇠한 아버지의 모습, 가스가 나와야 식사를 할 수 있다며 호흡도 훈련하셔야 한다고 숨을 세게 불어 관 속의 공들이 위로 올라가게 하고 그걸 몇 초간 유지해야 한다고 자꾸 연습하라고 해서 옆에서 그걸 붙잡고 계속 ‘아버지, 힘내세요!’ 외치는 며느리를 보며 기운 없지만 고맙다면서 희미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그 미소.. 그렇고 그랬던 기억들.
오늘 밤, 그런 기억들이 소환되어 나온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왜인지..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를 뵙고 온 날.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나 역시 잠들어 묻힐 곳.
새삼 회한이 일고 허망한 생각이다.
밖은 이리 날 좋고 화창한데, 안에서 얼마나 갑갑하실까..
아부지, 좋아하시던 소주 한잔 잘 드셨소!
추석 날 다시 뵈어요.
상다리 휘어지게 차례상 차려놓을 테니 다 같이 모시고
퍼뜩 오이소..
< 참고 > 명절 차례와 제사
전통적인 차례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오며 복잡해졌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 예전처럼 명절에 친척들이 한데 모여 함께 차례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경우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집은 있다.
차례(茶禮)의 한문에서도 보이듯이 차례는 원래 ‘차’를 올리는 ‘예’이다. 이는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의 차례상에는 차가 오르지 않는다. 차례의 의미는 명절을 맞아 조상들에게 음식을 준비해 상을 차리고 절을 하며 조상을 기리는 것이다.
제사는 고대 사람들이 신의 보살핌으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천지신명께 정성을 올린 것이 그 시작이다. 조상께 제를 올리는 문화는 고려 말부터 중국의 주자학이 전래되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고려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명절을 앞두고 차례 준비에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차례 때는 술과 과일, 포에 시절 음식을 차려 술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약식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조선시대 명문가 종갓집에서도 간소한 차례 상차림을 올렸다고 한다.
상차림뿐 아니라 지내는 시간에도 제사와 차례는 차이가 있는데, 제사는 원래 자시(子時, 밤 11시 새벽 1시)에 지내고, 차례는 주로 명절날 아침에 지낸다.
『주자가례(朱子家禮)』 제례와 관련된 예서에 보면 제사상은 본래 소박하고 간소했으나, 조상 제사를 통해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경향으로 제사 음식과 제사 절차가 점점 화려하고 복잡해졌다고 한다.
보통 제사는 윗대로 올라가 2대조나 3대조까지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에는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벼슬이 높을수록 더 윗대의 조상까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며 4대 봉사가 보편화되었는데 그동안의 신분제에 대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부자, 서민 할 것 없이 4대 봉사에 집착했다고 한다. 이에 1969년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해 봉사는 2대조까지로 하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않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공표했지만, 가정마다 고유한 방식대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차례상의 경우 추석에는 기본적으로 송편, 육전, 생선, 탕, 포, 나물, 대추, 밤, 배, 곶감, 사과 등이 올라가며 일정한 규칙에 따라 놓인다.
제사상차림의 기준 위치는 지방(신위)이 있는 쪽이 북쪽이다. 신위의 오른쪽은 동쪽, 신위의 왼쪽은 서쪽이다. 반서갱동(飯西羹東)에 따라 밥은 서쪽(왼쪽), 국은 동쪽(오른쪽)에 위치하며, 산 사람의 상차림과 반대로 놓아야 한다. 수저는 중앙에 놓는다.
차례상 차리는 법은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달라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일반적인 상차림은 5열로 구성된다. 신위가 있는 쪽을 1열로 보면, 1열은 식사류인 밥, 국 등이 배치되고, 2열은 제사상의 주요리가 되는 구이, 전 등이 오른다. 3열에는 부요리인 생선, 두부, 고기탕 등 탕류를, 4열에는 나물, 김치, 포 등 밑반찬 류, 5열에는 과일과 과자 등 후식에 해당하는 것들이 올라간다.
고기는 서쪽(왼쪽), 생선은 동쪽(오른쪽), 어동육서(魚東肉西)다. 상위에 놓을 때도 꼬리는 서쪽(왼쪽), 머리는 동쪽(오른쪽)에 위치한다. 동두서미(東頭西尾)는 꼬리의 음식보다는 머리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좋은 것을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생동숙서(生東熟西)에 따라 나물은 서쪽(왼쪽), 김치는 동쪽(오른쪽)에 위치하며, 좌포우혜(左脯右醯)에 따라 포는 서쪽(왼쪽), 식혜는 동쪽(오른쪽)에 위치한다.
이후는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다. 과일은 대추, 밤, 배, 감의 순으로 놓는다. 보통 진열의 왼쪽에서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로 놓으며 그 외의 과일은 순서가 없다. 다만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고 있다.
조율이시의 경우 과일은 신위 쪽에서 가장 먼 줄에 있으니 약처럼 가끔씩 먹되 뼈에 좋은 대추, 머리에 좋은 밤, 배에 좋은 배, 피부에 좋은 감의 순서로 좋은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홍동백서는 백(흰색) 종류의 음식보다는 홍(붉은색) 종류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들을 함께 먹어야 몸에 좋다는 것을 자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차례상에서 유의할 점으로는 복숭아와 삼치, 갈치, 꽁치 등 끝에 '치'자가 든 것은 쓰지 않으며, 고춧가루와 마늘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팥 대신 흰 고물을 쓴다 등이 있다.
다만, 흔히 얘기하는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柹) 등의 차례상 예법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예법을 다룬 문헌에 그런 말은 안 나온다고.
주자가례에도 그 계절 음식과 과일을 올리라는 언급이 있을 뿐 추석 상차림을 어떻게 하라는 내용은 없으며, 조선시대 차례·제사상에 관한 예법을 다룬 문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차례는 원래 간단하게 지내는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제사와 혼동이 되고 이것저것 음식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과하게 변한 것 같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요한 건 상에 놓는 음식이나 예법 자체가 아니라 왜 우리가 조상님께, 돌아가신 부모님께 제를 올리는지를 아는 마음이다. 1인 가구의 증가 등 사회변화에 따라 제사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중요한 건 마음으로 정 안되면 냉수 한 그릇을 올리더라도 그날만큼은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출처 :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jesa.do
- 뉴시스 기사 (2022. 09. 10)
https://mobile.newsis.com/view_amp.html?ar_id=NISX20220908_0002007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