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귀천(歸天), 재회를 기약하며

by 자크슈타인


문득 든 상념에 아버지를 그리고 기리며 쓴 글이

이제 끝맺음을 할 시간이다.


할아버지는 역병이 돌던 시절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전염병에 감염되어 돌아가신 줄로 알고 있다.


할머니는 근육이 부족해 일찌감치 허리가 완전 구부정해지신 채로 오랜 시간을 지내셔야 했고, 노환에 따른 여러 통증으로 참 많이도 고생하셨지만 그래도 천수는 다 누리고 가셨다.


지금도 못내 안타까운 것은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었던 것.. 근처에 살아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결국 돌아가신 뒤에야 전갈을 받았다. 내가 한집에서 살았다면 가시는 길 무섭지 않게 옆에서 손 꼭 붙잡고 보내드렸을텐데.. 하는 생각. 후회. 비통한 마음. 결혼을 조금만 더 늦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었더랬다. 할머니 가시는 길도 그렇고, 아버지 가시는 길에도 그렇고.. 두 분 모두 장례를 치를 때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아버지는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며 관리를 해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급작스런 말기암 진단으로 1년 반 정도의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병명은 당시 기준으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요관암 이셨고, 이내 신장, 간 등 온몸으로 전이가 시작되셨다.


병원에서 제대로 진단을 하지 못해 뒤늦게 발견이 된 건지, 제때 발견은 했는데 그러자마자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의사 말로는 ‘독한’ 암이라고 하더라). 병원을 옮겨 늦게나마 서울대 병원에서 응급으로 스케줄을 잡아준 덕에, 오랜 기간 대기하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수술로 다 제거할 수가 없는 상태였었고, 남은 부위는 항암치료를 추가로 진행하자는 의사의 의견이었다.


고모는 일찍 시집을 가신 뒤로 왕래가 잦지 못하여 내겐 많은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가끔씩 우리 집에 오셨던 것도 아마 당신의 형편도 좋진 못하셨거니와, 고부갈등이 있는 상황을 잘 알기에 일부러 자주 찾지 않으신 부분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고모는 자세히 들은 얘기가 없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약물의 과다 복용 중독에 따른 간 독성으로 돌아가셨다.


직은 아버지는 힘들었던 시절, 술에 의존하셔서 너무 몸을 망치셨었다. 상황이 좀 풀리고 나서 서서히 술도 자제하시고 건강관리를 잘 해 나가시는 듯 보였지만 결국 간경화에 따른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이유야 다 제각각 다르지만, 어쨌든 친가 쪽으로는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작은아버지.. 네 분 모두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다. 유전이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네 분의 사유가 다 다르고 어느 한쪽으로 일관되게 안 좋은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라, 이런 가족력이 나의 수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가 없다. 친가 쪽의 길을 걸어 아직 제법 살 날이 많이 남았는데 어느날 훌쩍 떠나게 될지, 외가 쪽의 길을 걸어 현대사회가 얘기하는 기대 여명만큼은 더 살게 될지..


살아오면서 여태껏 섭생을 그리 잘 해왔다고는 할 수 없는 터, 그저 남아있는 시간에 연연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무엇이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내가 이 세상에 그냥 왔다 간 건 아니라는 하나의 흔적, 하나의 의미쯤은 남겨두고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의미가 죽는 순간 나에게 깊게 남는 스스로의 의미일지, 그래도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한둘 있어 그들에게 남겨지는 또 하나의 의미일지.. 어떤 쪽으로든 상관은 없겠다.


그리고 그곳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시안의 내 자리로 돌아가는 날, 반갑게 만나고 싶다.


할아버지 얼굴을 처음 뵙고 인사드리고,

그리운 할머니 품에 안겨 막내손자 재롱도 부려야겠다.

작은 아버지는 환히 웃으며 특유의 조금은 어눌한 말투로 반겨주실 게다.


그리고 아버지..

누가 공무원 아니랄까봐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던 아버지께는 아마도 이승에서의 삶을 잘 마치고 이상 없이 본대 복귀했다고 경례를 올려붙이며 각 잡고 보고드리지 않을까 싶다. 그럼 아버지께선 ‘허허, 그동안 고생 많았다. 오느라 수고했어!’ 하고 등 한번 두드려 주시겠지.


“아버지! 저 이제 왔네요. 막내가 왔어요!”


그날은 가족묘 석실 앞 잔디에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냄새도 연기도 안나는 영혼의 삼겹살을 구우며

소주 한잔 시원하게 들이켜지 않을까.



_시안 가족추모공원 (경기 광주시 오포안로 1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