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초(不肖) 돈수재배(頓首再拜)
아버지, 그곳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갈수록 더워지는 폭염의 여름 뙤약볕에 두꺼운 화강석조차 달궈져 한밤에 이르기까지 식지 않을 텐데요. 밤새도록 더운 건 아니실지 걱정되네요.
그래도 그 공간의 같은 단에는 작은아버지와 함께 두 분만 계시니 비좁아 부딪히며 불쾌지수까지 더 오르실 일은 없겠지요.
윗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잘 계시겠지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정이 붙을 기회조차 없어 애닮은 마음까진 없지만,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의 근원이신 분이고 또 제가 사랑하는 할머니의 부군이셨으니, 먼저 귀천하신 가족은 다 모인 셈이라 그저 마음 흐뭇할 따름입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할머니를 남겨두고 먼저 훌쩍 떠나셨으니, 그곳에서나마 할머니께 정말 잘해주십사, 아버지께서 할아버지께 말씀 좀 전해 주세요. 할아버지가 안 계시는 바람에 할머니 홀로 전쟁통을 겪으면서 힘들고 어렵게 세 남매를 키우셨다고 아버지의 아버지께 뭐라고 좀 해보시란 말이에요. 겸사겸사 못해 본 응석도 좀 부려보시고요.
홀어머니로 자식 잘못 키웠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엄하게 훈육하고 굶어 죽지 않으려 악착같이 살았더니 혹독한 세파에 성정도 괴팍해지셨는지, 늦게 얻은 며느리와 사이가 안 좋게 되어서 늘그막에 고생도 많으셨잖아요 우리 할머니..
전 머리가 좀 크고 나서부터는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적절한 중재와 조율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어요. 집에 들어오셔서 반갑게 할머니께 인사드리는 것도 어떤 때는 가식적으로 보였고, 두 분이 다투실 때 못 본 척 외면하고 집을 나서는 걸 볼 때면 무력하고 무능해 보이기도 했더랬지요. 하지만 그것만 빼고는 저에게 100점짜리 아버지셨답니다.
평상시 과묵하고 신문이나 책만 보시던 근엄한 모습으로 요즘 아빠들처럼 친근하고 살가운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엔 오히려 그런 아빠가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한 존재였겠지요.
약주 한잔 거나하게 취해 들어오시면 정반대로 웃음도 많고 활기차게 농을 던지시던 모습, 전기구이 통닭이 든 노란 봉투를 양손에 들고 오셔서 “우리 막내, 잘 있었는가? 허허“ 하시며 슬쩍 용돈을 쥐어주시던 모습은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생생합니다.
그 옆에서는 ”평소 일찍 일찍 들어와서 멀쩡한 정신에 치킨도 사주고 하면 얼마나 좋아! 술 먹고 밤늦게 들어와서 애 잘 시간에 꼭..“ 하며 눈 흘기시는 어머니가 옆에 계셨더랬지요.
아버지께서 약주 한잔 걸치고 들어오시면 펼쳐질 상황은 굳이 보지 않아도 우리 형제들 눈앞에 선했고, 예측은 어김없이 들어맞아 잠시 후면 예상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어요. 생각해 보니, 지금 저의 아이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쓴웃음도 아니고, 너털웃음도 아니고, 뭐랄까.. 묘한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나오네요.
아버지가 거부는 아니셨지만, 그리고 식구들에게 살가운 다정함은 없었지만, 잠에서 깨 아랫목에서 눈 뜨고 쳐다보면 그 삐걱거리는 나무책상에 양반다리 하고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아마 사무관 승급을 준비 중이셨던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공무원들은 지금보단 훨씬 더 권한을 이용해 제법 뒷돈도 받을 수 있었고 이권을 챙길 수도 있었을 텐데, 일절 부패하지 않고 청렴 강직하셨던 모습이 제게 아버지가 어려우면서도 마음속으로 깊이 존경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합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줄곧 부정부패 사건이 자주 올라오곤 했으니까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명문이 문득 떠오릅니다. 아버지께서 66년, 그렇게 짧은 인생으로 훌쩍 떠나실 줄 어찌 알았겠어요. 그렇게 허무하게 가실 줄 누가 알았을까요. 암이라는 병마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 뼈저리게 느꼈었지요.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 했고,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름으로 죽음에 다가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만이 '죽음'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이며, 죽음을 인지한다는 것 자체로 삶의 가치를 안다는 방증임을 말한 것이었지요.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전 아버지의 짧은 투병과 갑작스러운 별세 앞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제가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한창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공자는 "부모님 살아계실 땐 그 뜻을 따르고, 돌아가신 후에는 그 행실을 본받으라"고 했다지요. 전 살아계실 때 아버지 뜻을 제대로 따르지도 못했었네요. 그저 후회만 가득할 뿐입니다.
이제 직장에 다니며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이 되어 스스로 돈 벌기 시작했지만, 사회 초년생인 제가 아버지께는 여전히 아이처럼 보이셨겠지요.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할 때마다 여전히 매번 아버지가 계산을 하셨었죠. 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늘 빠듯했고,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암에 걸려 필사적으로 싸우시다 그렇게 가버리셨네요.
결국 자식새끼가 번 돈으로 으리으리한 곳까진 아니더라도 제법 번듯한 곳으로 모셔 그곳의 가장 비싸고 맛난 음식을 한번 제대로 사드리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번 돈으로 종종 맛있는 것 사드리면서 좋은 술도 아버지와 함께 한잔하고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버지가 그렇게도 기대하셨던 친구분들 함께 모시고 어머니와 함께 부부동반으로 설악산 단풍구경이나,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보며 여유로운 여행 한번 다니지 못한 것도 못내 한스럽답니다.
저는 그때를 놓쳐버렸고 이제 그럴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15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아버지의 부재는 여전히 제게 큰 공허감을 주시네요.
아버지, 제가 더 일찍 깨닫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지께 더 자주 연락드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회한으로 남습니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네’
‘풍수지탄’이라 했던가요, 이제와 이 구절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매 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온몸으로 살아가라고, 죽음의 숙명을 가진 인간이 노래하는 삶의 경이로움을 역설하며 부조리의 철학을 설파했지만, 극단적인 부조리인 죽음 앞에서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할 때, 비로소 삶이 가치를 획득하더라도 그것 또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저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삶이 끝난다는 사실은 진정으로 의식하는 순간, 인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가던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생전에 그런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죽음 직전에의 깨달음은 너무 늦었고, 실제 돌아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육신의 고통과 정신의 혼미함에 갇혀 괴로워하시거나 의식이 없을 뿐, 그 앞에서 깨달음이 끼어들 자리는 없겠더군요. 숙연한 대사나 깨달음은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일 뿐인 것 같아요.
아버지, 어머니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데, 결혼을 안 한 누나가 안쓰럽기도 하고 어머니도 누나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머니 옆에 누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말씀은 그리 안 하셔도 어머니도 많이 든든해하시는 것 알고요. 사실 요즘 시대에서 현실적으로만 보면, 결혼을 안 한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걱정할 이유는 없는 누나잖아요. 확실히 아들보단 딸이 각광받는 시대가 맞는 거지요.
전.. 최근에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고 있지만 종종 카톡 안부 여쭈며, 그래도 신경 쓰려 나름 노력하고 있어요. 가끔씩 가서 식사도 하고, 때론 집 앞 치킨집에서 치맥도 한답니다. 집이 바로 근처이기도 하잖아요. 아버지 계실 때 그대로 이사 안 가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평생 강조하셨던 가족의 소중함을 이제야 이해하면서, 형제간에도 더 잘 우애 있게 지내려 하는데 사는 게 뭣이라고, 여전히 썩 잘 해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내 살길 찾느라 바삐 뛰다 뒤늦게 깨닫고 또 후회하게 되는 건 아닐지.. 내심 걱정되네요.
그래도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 마음 놓으세요.
어머니 잘 모시고, 아버지께 못 해 드린 만큼 어머니한테 더 잘하겠습니다. 어머니 연세는 이제 꽤 되셨지만, 그래도 연세에 비해서는 무척 건강하신 편이랍니다. 당신이 일찍 가신만큼 더 오래오래 살라고 하늘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봐주고 계신 걸까요? 계속 그렇게 해주세요.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날은 우리가 죽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유를 잃어버리는 날이라고 니체가 말했죠. 사실 전 요즘 한동안 왜 살아가는지, 왜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 헤매이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 차려야겠죠. 항상 강건했던 아버지를 본받아 더욱 열심히 살아가 보겠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눈치도 없이 제가 너무 긴 편지를 썼네요. 이제 천상에서 편히 쉬세요. 우리가 못다 한 여행, 함께 하지 못한 식사, 나누지 못한 대화들... 때가 되면 다시 만나 그때 모두 해드리겠습니다. 머지않아 다시 만날 날이 올테니까요. 그때까지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리고 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볼게요.
사랑해요 아버지, 그리고 죄송해요.
정말 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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