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써본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신..
우리를 떠나신 지 10년도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아버지 생신 날짜를 달력에 체크해 둔다. 생일은 본인이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기리는 날이라시던 아버지. 살아생전 ‘생일’에 대한 의미를 남달리 강조하셨어서일까. 따로 뭐 하는 것은 없어도 왠지 잊지 않고 싶다. 아버지도 그럼 좋아하실 것 같고.
바쁘단 핑계로 한동안 찾아뵙지 못했던 차에, 생신을 적어놓은 책상 달력에 눈길이 가 문득 아버지께 다녀온 길. 스콜처럼 쏟아지던 긴 장마의 끝에 비는 그치고 땅은 말랐다. 무거운 석실 안에 갇혀 한 줌 재가 되어버린 유골조차 얼마나 갑갑하실까. 입추를 지나고 폭염과 열대야가 찾아와 숨을 헐떡거리는 요즘. 어서 말복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말복만 지나면 그래도 아침저녁으론 조금씩 선선해지겠지. 그럼 깜깜한 묘 속에 누워계신 아버지도 숨이 좀 트이시려나.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아버지랑 오손도손 대화도 이 더위엔 지쳐 잠시 끊겼을 듯 해 맘이 안 좋다.
아버지를 모신 곳은 ‘시안’이란 곳으로 광주시 근방에선 제법 규모가 큰 것으로 안다. 죽은 이를 기리는 곳조차 자본주의의 손길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세상이니.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공간들도 나무를 자꾸 더 베어내고, 또 묘역을 조성했네. 사이즈를 보니 4위~8위 정도 같다. 아버지 자리를 알아볼 때만 해도 주로 홍보하는 게 24위, 48위 막 그랬건만.. 급속한 핵가족화에 청년, 노인 1인가구 수 비중이 제일 많아진 세태를 반영하는 거겠지.
이렇게 끝도 없이 계속 묫자리를 조성해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인생들이 계속 계속 대기하고 있단 말인 게다.. 나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고. 가끔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 대비해서 내 삶에 주변 정리를 좀 해놔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맘이 뭐 그렇다.
예전까진 봉안묘 앞단 좌우 양쪽에 꽃들을 꽂아놓아 국화꽃, 장미꽃,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셨을 온갖 꽃들로 온 묘역이 화사하게 믈들었었는데.. 반입금지. 몇 년 전부터 환경과 쓰레기 문제로 조화는 갖고 오지 말라고 했더랬다. 정 하고 싶으면 생화를 올리라고. 아울러 그동안 꽂혀있던 조화들은 관리사무소 측에서 일괄 수거하여 버렸더라는.
서운하긴 해도 그것이 맞는 이유이긴 하나, 지나가다 보니 공원 측에서 새로 만든 카페 건물 1층에 꽃집이 들어서 있었다. 거기에서 생화를 많이 사란 얘긴가.. 쓰레기 문제로 명분도 얻고 공원 측(혹은 관계자)의 새로운 수익도 챙기고, 일석이조 뭐 그런 것 같지만 여기에도 자본주의의 그림자가 엿보여 한편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낯설고 썰렁한 느낌도 있지만, 또 어찌 보면 깔끔하니 처음 아버지를 모셨던 당시의 풍경이 되살아 나기도 하더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릴 적 이후론 자주 보지도 못하던 참새 한 마리가 웬일로 정차 중인 차 앞 후드 위에 떡 하니 내려앉았다. 뜨겁지도 않은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종종걸음을 치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찾아뵈어 서운하셨을 텐데.. 그래도 기특하다고, 먼 길 졸지 말고 조심히 가라고 아버지가 보내주신 전령사일까.
지금도 자주 못 찾아뵈어 올 때마다 죄송한 마음인데, 영동 선산이었으면.. 휴. 그래도 경기도이니 이만큼이나 왕래하는 거겠지. 위로해 본다. 나이가 들수록 에너지가 떨어져 그런 것인지, 열정이 줄어들어 그런 것인지, 직장도 가까워야 좋지 먼데는 못 다니겠고 아무리 좋아도 먼 곳에 사는 친구와의 연애는 부담스럽다 한다. 뭐든 거리가 점점 중요해진다. 속세의 삶에서 거리 차이가 이만큼 중요해지듯 이장을 참 잘해왔다 싶지만, 그조차 나 죽은 뒤 우리 아이들에게는.. 후대부터는 어떤 의미를 가질런지.
뿌리를 잊지 않고 마지못해든 형식적이든 가끔은 찾아줄런지. 묫자리 부족이 심각하니 장례문화나 성묘문화 자체도 이른 시일 내 큰 변화가 올 테지. 나는 나대로 부모님 찾아뵈면 될 일이고, 자식들이야 저들 잘 살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떠난 이를 잊지 않고 찾아준다면 좋을 것 같긴 하다. 그조차 살아있는 지금의 내 감상일 뿐이고 죽어 무슨 소용이겠냐만 말이다.
그립고.. 그립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그리워진다.
해철이 형의 노랫말처럼, 그 거대해 보이던 어깨너머로 내가 미처 볼 수 없었던 무게의 짐이 점점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해서일 게다. 그리고 이 감정을 누구에게도 전할 길 없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게 슬프다.
내가 다 알 길 없는 타임라인 대의 삶 속에서, 길든 짧든 각자의 생은 모두 다 파란만장하고 버라이어티 하셨겠지. 어떤 미친 자의 마법으로든 간에 시공간에 균열이 생겨, 당신들께서 모두 다 살아계신 평행우주로 잠시만 다녀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매일매일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했던가. 어느새 세월은 10년도 넘게 훌쩍 지났다.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고.. 이렇게 죽음에 한 발짝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네.
나 죽어 묻힐 곳, 전망은 좋다.
시안의 여름..
아버지는 어찌 지내고 계신가요?
#아버지 #그리움 #추석에_또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