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 보고서 (1)

Chapter-1 할

by 옥광



미하르의 얼굴이 파리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에서 거북한 국물이 찔끔 넘어왔다. 불쾌한 신맛이 났다. 미하르는 최대한 큰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깊고 조용히, 어금니를 꽉 깨물고 출렁거리는 국물의 냄새가 새어 나가지 않길 바라며 길게 코로 숨을 뱉었다.


“이게 그 그루이트? 유로파의 고등동물이야?” 할이 그루이트가 담겨 있는 캡슐에 한 발짝 다가서며 물었다. 그러나 미하르는 어금니를 움켜쥐느라 바로 답하지 못했다.

“미하르? 괜찮아?” 할이 미하르의 안색을 살피며 한 번 더 말을 시켰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콧구멍만 벌룸 거릴 뿐 미하르는 대답이 없었다.


이곳은 태양계 [블라디미르 콜로니]에서 613만 광년 거리에 위치한 행성 ‘유로파’다. ‘유로파’라는 이름은 워프 드라이브 초공간(Hyperspace) 경로, ‘블라디미르 트램’의 건설용 자재로 사용되고 없어진 목성의 위성 중 하나, ‘유로파’에서 유래되었다. 할은 ‘블라디미르 트램’을 통해 지구시간으로 202일 11시간 만에 행성 ‘유로파’에 도착할 수 있었다. 613만 광년 거리를 지구 시간 202일 11시간 만에 이동 가능하게 해주는 건 ‘블라디미르 그룹’의 ‘블라디미르 트램’뿐이다. 물론 누군가 원한다면 다른 경로를 개척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다른 경로를 개척하는데 들어갈 자원의 50분의 1, 아니 블라디미르 그룹이 약간의 자비만 베푼다면 100분의 1의 자원으로도 블라디미르 트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할이 속한 ‘지구 유니언’도 블라디미르 그룹에 적정한 자원을 지불하고 블라디미르 트램을 사용하고 있다.


할은 유로파에 오는 동안 4,452시간의 동면을 취했다. 달 궤도에서 벗어날 때 즈음 동면 캡슐 안 겔(gel) 속에 푹 잠긴 할은 멀리 작아지는 지구를 바라보며 폐와 연결된 입과 코, 호흡기관과 위와 연결된 식도로 동면 겔(gel)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게 잠들기 전 할의 마지막 기억이었고 도착 후 겔(gel) 해동 시간 포함 128시간의 온도 적응 후에야 비로소 겔(gel)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그게 불과 2시간 전이다. 그런 할이 오히려 미하르의 안색을 살펴야 하다니! 할은 자신이 급하게 파견된 지구 유니언 소속 연구원이라 무시를 당하는 건가 싶었다.


“응. 꽤 고등동물이긴 하지… 영장목, 성성이과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 소통방식은 고래목인 돌고래에 비슷한 것이, 지금까지 발견된 우주 생명체 중에서는 가장 영리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중저음의 친절한 목소리. 할이 겔(gel) 속, 해동 중 얼굴로 인사만 나누었던 이 탐사팀의 대장 민수가 키핑룸에 들어오며 미하르 대신 대답했다. 민수는 350시간 전 포획했다던 그루이트 한 마리를 막 방생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현재 유로파 기지에는 할을 포함 4명의 휴먼이 있다. 키 184cm 정도의 군살 없는 몸매에 머리가 작고 팔, 다리가 긴 멀리서 보면 멸종 곤충 사마귀처럼 보이는 미하르와 173cm의 할과 엇비슷해 보이는 키에 두껍고 촘촘해 보이는 몸을 가진 민수는 블라디미르 그룹 소속 연구원이고, 할이 오기 전 유일한 여성 팀원이었던, 지금 이 룸에는 없는 의사 재시가 프리랜서 팀원으로 민수의 아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이 지금 지급받는 자원과 또, 앞으로 지급받을 자원은 할의 것과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그 급이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할 쪽이 빈곤하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면에서 유로파의 그루이트들은 할에게 중요했다.


“이 캡슐 속 그루이트는 정말 죽은 게 맞아? 눈꺼풀 기능을 하는 얇은 막이 투명해서 그런지 마치 눈을 뜨고 살아 있는 것 같아. 그리고…”


할이 말 끝을 흐리자 옅은 미소의 민수가 그루이트를 향해 바짝 다가서며 할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뭐?”

“그리고… 정말 우리 휴먼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동면 캡슐과 비슷한 키핑 캡슐 속, 유동 겔(gel) 안에는 그루이트 한 마리가 보관되어 있다. 길이는 151.3cm, 체량은 43kg으로 피부색은 지구의 광물 ‘오팔’과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옅은 핑크색을 띠는 우윳빛이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다채로운 은은한 색을 띄운다. 색들은 겉 표면이 아니라 반투명해 보이는 가장 바깥쪽 표피의 한 단계 안쪽에서 빛나는 듯 보였다. 털도 비늘도 없는 피부는 유리처럼 매끈하다. 지구의 휴먼처럼 한 개의 몸통에서 뻗어진 두 개의 팔과 다리, 한 개의 머리와 한 개의 성기를 가진 생김새로 전체적인 구조와 비율도 휴먼과 매우 흡사해 멀리서 보면 진짜 휴먼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스캇의 보고서에도 외형적으로 지구의 포유류, 특히 인간과 가까운 생물이라고 나와 있었다. 어디까지나 신체 구조적인 면으로 봤을 때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우리 같은 지적 생명체를 발견한 줄 알았다니까.” 민수가 캡슐 속 그루이트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 별을 탐사하다 보면 저렇게 상처 하나 없이 죽어 있는 그루이트 사체를 종종 발견하곤 해.”

“그런데 부패가 빠르다는 거지?”

“음… 정확하게 말하면 부패라는 말보다 사후 형태 유지가 어렵다고 하는 게 맞을 텐데. 스캇의 보고서에 그렇게 나와있지 않아? 아직 다 숙지를 못 한 건가? 시간은 충분했을 텐데.”


스캇은 얼마 전까지 이 팀에 합류해 있던 블라디미르 소속 생물 연구원이다. 오랜 타행성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컨디션 난조로 갑작스러운 지구 귀환을 요청했고 대신 파견된 것이 지구유니언 소속 연구원 할이었다. 트램의 포털 이동을 위한 동면 겔(gel) 흡입술은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할은 이런 날을 기다리며 장기간 훈련해 왔다.


“아, 물론 그 부분 당연히 읽었지. 맞아, 그렇게 나와있어. 내가 뭔가 혼동했나 봐.” 할은 민수의 지적에 당황했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스캇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그루이트를 잡아 키핑 캡슐에 넣은 거야. 판타스틱한 골든 타임이었지.”

“그래, 스캇이 뭐, 조금 대단한 일을 해낸 거구나.” 할은 스캇 이상의 것을 발견하고 싶다는 조바심이 났다.

“할! 조금이라니?!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어!”

“… 그, 그래. 스캇의 보고서에 따르면 내부적인 구조는 아직 연구해봐야 할 게 많다고 했어.”


그루이트는 해부를 위해 표피를 절개하면 젤의 막이 터지듯 절개한 부분 사이로 표면장력이 사라져 터져 버린 물풍선처럼 표피 내부 알맹이들이 흘러내린다고 했다. 이것은 이 유로파 행성 생명체 유기물의 대표적 특징이다.


“내부는 달라도 외적으로는 비슷하다고. 그래서 기능적인 면으로 저들도 성교를 한다고 한 거겠지?”


이때, 가까스로 속을 진정시킨 미하르가 어금니의 긴장을 풀고 괜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음… 글쎄. 할, 너는 어떨 거 같아?”


할은 미하르의 미소를 못 본 척 그루이트의 사체만 바라보았다. 캡슐 속, 그루이트의 다리 사이에는 성기 기능을 하는 길고 땅땅한, 채도 높은 분홍 돌기가 솟아 있었다. 젤 속에 있는 탓인지 휴먼의 것처럼 발기된 듯 보였고 주변에는 음낭의 역할로 보이는 마젠타와 옐로 컬러의 여러 막들이 팔랑이고 있었다. 그것이 화려한 ‘카틀레야’ 꽃잎 같았다.


“할도 어서 그루이트 무리의 대장들을 봐야 하는데.”

“대장? 그 챕터는 인상적이었어. 대장 한 마리에 여러 마리의 ‘노예’들이 무리 지어 생활한다고 했지. 그런데 스캇은 왜 ‘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한 거야?”

“아, 그거야 그것들은 명령에 복종을 하니까.”

“복종? 그렇다면 명령은 누가 내리는데?”

“오, 명령과 복종의 변증법.” 미하르는 괜한 미소의 입꼬리를 더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당연히 대장 그루이트지. 철저한 상명하복, 대장이 곧 주인이야. 그렇지만 명심해, 할! 그루이트는 그래 봤자 엄연히 하등동물이야.”

“하하, 그러게… 지적 생명체가 아닌데도 흥미로운 점이 많아.” 할도 예의상 같이 웃어주며 대답했다.


민수가 대화에 들어왔다.


“자, 나머지 이야기는 식사하면서 마저 나눌까? 재시가 지금 오면 된다는데.”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