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찾은 감자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다른 시공간 속, 외계의 것들은 공간을 반으로 접어 점과 점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이동한다… 는 거죠?”
“네. 그래서 점과 점이 만나는 순간 시간의 중첩이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그들의 공간에서 일어난 왜곡이 우리의 공간에 미치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다른 차원, 다른 시공간 속에 그것들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댄이 긴 설명을 끝내고 진짜 말하고 싶은 본론을 꺼냈다.
“그리고 지금 그 외계의 어떤 것들이 지구에 방문했습니다.”
“외계의 어떤 것? 방문?” 애론의 얼굴에 불확실한 것에 대한 불쾌감이 번졌다.
“네, 저희 기준으로 그것이 유기물인지 무기물인지도 아직 정확히 파악이 안 되었기 때문에 생명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일단 어떤 것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 어떤 것들이 지구 대기권 안에 나타났습니다.”
댄은 P천문 관측소 소장이 건넨 우주에서 오는 파장에 관한 관찰 기록지를 화면에 띄웠다. 지난 몇 년간 사비까지 들여 발견해 낸 결과물이다. 덩치들은 알 수 없는, 읽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단어들이 빼곡히 채워진 그래프가 화면에 펼쳐졌다.
“저희는 오랜 관찰의 결과로 이 파장이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 또는 무질서도. 주로 에너지의 분산, 무질서 현상 및 열적 균형을 설명하는 데 사용)의 이동과 관련된 결과물임을 확신했습니다.”
댄이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이전 페이지보다 더 화려한 표와 그래프가 펼쳐졌다. 애론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이 틈을 발견했습니다. 여길 보세요. 이건 엔트로피가 동시에 움직이지 않아서 나오는 미세한 틈입니다. 물리적인 위치 변화가 아닌 시간까지 포함된 차원의 변화에서 초래된 틈이죠.”
“그건 몇 가지 크로스 체크가 필요하겠군요. 뭐 아무튼 그 어떤… 것들이 그래서?”
“네. 이것이 공간의 왜곡. 그 어떤 것들은 이 틈 사이로 이동합니다.”
댄이 애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관심을 보이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 틈을 이용해 그것들은 지구에 아타카마 사막에 나타났습니다. 확실합니다.”
댄이 지구의 표면 온도 변화와 대기 중의 오존, 엔트로피의 틈에 관한 관련성을 정리한 표를 내밀었다. 종이에 수기로 작성된 표다. 덩치들이 애론이 종이뭉치를 거절할까 움찔했으나 의외로 애론은 순순히 받아 들었고 좋지 않은 글씨로 쓰인 종이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그렇군요.”
“네, 그 어떤 것들이 과거 지구에 출몰하면 그 기간 동안 미약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안정되고 대기 중 오존과 이산화탄소가 감소되는 현상을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인류가 살기 어려운 아니 거의 인류가 살지 않는 척박한 땅에만 머물다 갑니다. 이번엔 여기 아타카마 사막에 나타난 거죠. 그러니 저희가 인지하는 게 더 어려웠을 겁니다. 거기 32번째 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애론이 페이지를 차르르 넘기며 묻는다. “감자는?”
“그 감자는 사막의 변화가 초래한 결과물이죠.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어떤 인공적인 기술 없이 나타난, 인간의 개입이 일절 없이 발생된 결과물입니다.”
“또 다른 특이점은?”
“특이점… 네, 또 다른 특이점은 그 감자는 최초라는 겁니다. 현재 아타카마의 흙에서 암암리에 몇 가지 작물이 자란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습니다. 저희는 각 작물의 발생 시점을 역추적했고 최초 작물의 DNA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자는… 놀라지 마십시오. 그 감자의 DNA와 최초 작물의 DNA가 같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애론이 감자와 함께 딸려온 다이아몬드 원석을 만지작거렸다. 댄은 그를 보며 확신했다. 지구는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댄은 지구에서 가장 센 나라의 정보기관에서 일하면서도 스스로 이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사람이라 자부했지만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걸 알아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무시당했던 이유를 지금 확신했다. 역시 문제는 댄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지금 애론을 설득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을 비웃은 자들의 머리 위에서 지구를 구할 수 있다.
“분명 아타카마 사막에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댄의 목소리가 격앙되어 간다. “어쩌면 지구가 회복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이 지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의장님!”
“지구? 회복?”
애론은 만지작거리던 다이아몬드 원석을 던졌다 받고 던졌다 받는 장난질을 치며 코웃음을 뱉었다. ‘미소 수업’으로 학습된 미소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웃음이었다.
“댄, 좋아요. 당신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칩시다.”
“네?”
“외계의 그 어떤 것들이 지구에 침입했고, 아니 방문했고 그래서 이런 변화를 일으킨 게 사실이라고 칩시다. 그러나 회복? 회복이라… 우리 그런 낭만적인 단어는 사용하지 맙시다. 우리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죠. 제 눈에 보이는 팩트는 그것들이 지구의 온도를 낮추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인데요.”
“네? 아… 결과를 보면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그것들을 이대로 방치했다간 지구의 온도는 계속 떨어지고 그대로 빙하기에 접어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의, 의장님… 그게…”
“하하하, 너무 경직되진 마시고. 어디까지나 저도 댄처럼 가설을 세워봤을 뿐입니다.”
“아, 네, 네… 그렇지만 저는 그래도… 이 결과를 다시 보면 말입니다, 의장님.”
대화의 방향이 좀… 이건 댄이 원하던 흐름이 아니다. 댄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의장님 이 감자를 보십시오. 저희에게 감자, 사막에서 살아낸 최초의 감자가 있지 않습니까? 사막에서도 작물을 키울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제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그것들과 접촉해 볼, 아니 접촉을 위한 노력을 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수많은 사람이라… 댄, 저는 ‘머스크’보다 먼저 화성에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죠. 댄의 말대로라면 지구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옵션에 차갑게 얼어붙는 옵션이 하나 더 생겼을 것뿐입니다. 우리 이 옵션에서 자유로와 져야죠. 안 그래요?”
댄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더 높이 오르락내리락 던지고 받았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그야 서로 잘… 소통을…”
애론이 가지고 놀던 원석을 댄에게 던졌다. 댄이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돌에 손을 뻗었지만 잡지 못 하고 놓쳐 버렸다. 댄은 서둘러 굴러가는 돌을 쫓았고 애론은 가까이 다가가 그를 깊게 내려다봤다.
“댄, 우연으로 생겨난 옵션에 기대지 않으면 됩니다. 거기에 기대는 건 지금까지의 도박과 다를 바 없는 거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옵션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살아갈 자들의 자격입니다.”
**********
오늘은 쓰레기산에 새로운 옷들이 들어오는 날이다. 세계 각지에서 버려오는 옷들로 이루어진 쓰레기산은 파울라가 아는 산 중 가장 크다.
확실히 요즘 사막의 날씨는 낯설고 새롭다. 태어나서 이렇게 선선하고 촉촉한 바람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며칠 전 이반 아저씨의 이웃이 지하수를 발견해 우물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쓰레기산 다른 구역에서 일하는 친구 안토니아도 집 근처 구덩이에서 물이 샘처럼 솟아오른다고 했다. 또 소피아 아줌마는 고구마를 발견했다고 했고 페르난도 아저씨는 죽은 줄 알았던 체리 나무에 열매가 열렸다며 맛을 보라고 몇 개 가져다줬다. 너무 맛있었다. 오늘 돌아가는 길에 이사벨라의 감자와 맞바꿔 집에 가져갈 것이다. 너무 맛있어서 그만 남편 알레한드로의 몫까지 몽땅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앗! 새로 들어온 옷더미에서 알레한드로에게 입힐 만한 누군가 많이 입고 버렸을 새 옷도 발견했다. 파울라는 더 열심히 옷가지를 뒤졌다. 이사벨라에게 입혀줄 예쁜 새 원피스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무슨 옷인지 몰라도 그걸 입을 이사벨라를 생각하니 벌써 행복하다.
“파울라! 파울라!”
“호르헤?”
사촌 호르헤가 엄청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남자 둘과 함께 찾아왔다. 호르헤가 파울라를 먼저 찾아온 건 처음이다. 파울라는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쓰레기더미를 내려오다 크게 굴러 넘어졌다. 그리고 반가운 사촌 호르헤와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고 덩치 좋은 둘에게 끌려갔다.
**********
--- 이사벨라, 우리는 당신의 사막이 마음에 들어요. ---
“어, 어, 어어, 어.”
이사벨라는 아빠의 얼굴을 더듬더듬 짚어내 이마를 찾아 따뜻한 입맞춤을 하고서 사막의 꽃밭으로 산책을 나왔다.
--- 이사벨라 당신만 괜찮다면 우리는 이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요. 우리는 당신들의 태양과 가까운 이 땅이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당신이 좋아요. 그러니까 우리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를 당신이 계속 좋아해 주면 좋겠어요. ---
“어어어, 어어어어어어, 어, 어어어어어어어, 어어어어.”
--- 진짜?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기쁜데요. 그런데 우리의 개입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는지는 우리도 몰라요. 우리는 변화를 즐길 뿐이에요.
“어어어어어, 어.”
--- 우리는 지구인들과 다른 시공간에 있지만 당신과는 연결되었죠. 그런 작은 연결이 원소의 재배열을 일으킨 것 같긴 한데 그렇지만 왜 그런 건지는 정말 우리도 몰라요. ---
“어어, 어어어어.”
--- 맞아요. 좋죠? ---
“어어, 어어어, 어어어.”
--- 아니에요, 이사벨라. 우리는 당신과 같아요. 당신도 모두와 같아요. 우리는 모두와 같아요. 단지 우리를 이루는 배열만 다를 뿐이에요. 배열은 또 모두가 다르죠. 그보다 이사벨라, 아까부터 당신의 엄마가 당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어요. 사실 여러 번 불렀는데 미안해요. 우리가 늦게 말해서. 당신의 엄마가요 당신의 이름을 진짜 크게 부르고 있어요. ---
이사벨라가 그들이 엄마의 방향을 알려주기도 전에 먼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 이사벨라, 그러지 말아요. 당신의 엄마가 큰 소리로 말했어요. 지금도 큰 소리로 말하고 있어요. 엄마가 자기 쪽을 보지 말래요. 엄마가 자기한테 오지 말래요. ---
이사벨라의 보이지 않는 눈이 흔들린다.
--- 당신의 엄마가 자기한테 멀어지래요. ---
**********
일터에서 갑자기 집으로 끌려온 파울라.
파울라는 스스로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자신을 모자라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동의한다. 그래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 지금 이 키가 큰 남자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남편 알레한드로에게 함부로 대했고 예쁜 내 딸이 어디 있냐며 험하게 물었다. 그들이 중간중간 보여주는 부드러운 친절도 다 가짜다. 무엇보다 감자, 그들은 이사벨라의 감자를 쓰레기 다루듯 털어냈고 쓸모없는 돌만 챙겼다. 키 큰 남자들은 아기 이사벨라를 멀리 보내라던 이웃보다도 훨씬 더 나쁜 자들이다. 이사벨라를, 내 딸을 우리에게서 앗아가려 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고 파울라도 물어보지 않았다.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의 이유 따위 알고 싶지도 않다.
파울라가 끝까지 이사벨라가 거니는 사막에 대해 입을 안 여니 다른 이웃까지 찾아가 이사벨라의 위치를 알아냈고 파울라를 거기로 끌고 왔다. 파울라의 눈에 멀리 이사벨라가 보인다.
“이사벨라! 도망가! 숨어! 이사벨라!”
남자들이 듣지도 못하는 딸이 퍽이나 알아듣겠냐며 고함치는 파울라를 비웃었다. 그런데 그들의 비웃음을 비웃듯이 이사벨라가 반대방향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래, 진짜 신이 있다면 한 번쯤은 우리 이사벨라를 도와야지. 큰 남자들이 이사벨라를 쫓기 시작한다. 신에게 한 번쯤은 이사벨라를 도와달라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그렇게 앗아가기만 했으면 한 번이 뭐야 더 도와! 앞으로 쭈욱 우리 이사벨라를 도와! 제발, 제발!
**********
“모든 작물의 흙과 돌의 분석을 끝냈습니다.”
“결과는?”
“희토류는 의장님 예상대로 그 감자와 함께 온 흙에만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감자, 이사벨라의 감자다.
“다, 다이아몬드도 그 감자에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덩치의 보고에 마음이 조급해진 관측소 소장이 끼어들었다. 처음 다이아몬드 원석을 눈치챘을 때 소장은 NSA 요원 댄에게 협조하는 조건으로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을 약속받았었다.
“그 감자를 캐낸 위치만 찾아내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군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방금 어떤 통화를 마친 덩치가 문제를 알려왔다.
애론의 얼굴이 몹시 불쾌해졌다. 희토류 감자의 위치를 알고 있을 아이가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라고 했고 심지어 그런 아이를 놓쳤다는 보고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막은 숨어 있기도 어려우면서 동시에 잡기도 쉽지 않은 곳인가 보군요.”
“그래도 그 어미와 아비의 위치는 확보되었으니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덩치가 말하면서 아차 싶었다. 애론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는 식의 대답을 매우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역시 애론의 대답이 없다.
“저… 어떻게 할까요, 의장님?”
“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아이는 두 발로 돌아다녔을 테니 아이 집을 중심으로 아이가 갈 수 있는 거리만큼 조사를 시작합니다. 신속하고 조용히 진행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매우 유감이군요.”
애론이 아까부터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는 댄을 바라봤다.
댄은 아타카마 사막에서 아름다운 작물이 자라나게 될 줄 알았다. 상당 부분 관측소 소장의 배만 불리게 되겠지만 다이아몬드 광산이 진짜 발견된다면 구리 광산과 달리 사막의 사람들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줄 알았다. 아타카마 사막의 환경 변화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위대한 발견을 한 자신이 영웅이 될 줄 알았다.
“댄,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외교적인 문제는 저희 쪽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쉬세요. 지금까지 매우 수고하셨어요. 당신의 노고에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네. 네?”
애론이 학습으로 습득한 가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바보 같은 댄은 아직도 저 미소가 진짜라고 믿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
--- 이사벨라, 추워요? 더워요? ---
아타카마에 밤이 찾아왔다. 이사벨라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 사막의 밤은 낮과는 달리 매우 춥다. 이사벨라는 엄마가 엄마로부터 멀어지라고 했다는 그들의 말을 믿었고 그들에게 부탁해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대신 내일은 엄마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 엄마의 일터에서 이 밤을 보내기로 했다.
--- 이사벨라, 당신 엄청 빠른 속도로 흔들리고 있어요. 그 움직임은 당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걸로 안 보여요. 당신의 기분도 안 좋아요. 당신의 배열이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
그들은 이사벨라가 빠르게 못 움직이고 잡힐 것 같아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사벨라를 이동시켰다. 사실 성공할 줄 모르고 이동시켜 본 건데 성공. 그들은 자신들을 인지한 첫 지구인 이사벨라가 자신들과 연결된 이동까지 성공한 것에 크게 기뻤다. 역시 이사벨라를 환영하고 싶다.
--- 이사벨라, 우리가 생각해 봤어요. 당신 우리와 함께 움직일 수 있어요. 어때요? 우리와 함께 다녀요. ---
--- 이사벨라? 이사벨라? ---
좀 아까부터 이사벨라는 바들바들 떨지도 않고 대답도 없었다.
--- 이사벨라? 자요? ---
--- 아니야. 이사벨라는 자고 있지 않아. ---
--- 그럼 뭐야? 이사벨라? 이사벨라? ---
그들은 이사벨라를 위해 공기와 땅의 온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어딘가의 원소 배열이 조금 바뀔 것이다. 조금 바뀐 원소 배열은 약간의 변화를 일으킬 테지만 괜찮다. 이사벨라가 괜찮다고 했다.
**********
파울라가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게 아니다. 나쁜 남자들에게 맞아서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이사벨라에게 괜히 도망가라고 한 걸까? 아니야, 이렇게까지 날 때린 자들이야. 이사벨라에게 가까이 가도록 두어선 안돼. 그런데 나, 아무리 맞았어도 어떻게 이 시간까지 기절할 수 있지?’ 파울라는 해가 질 때까지 정신줄을 놓았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덜 돌아온 눈의 초점을 위해 열심히 눈을 깜빡였다.
춥고 까만 밤이다. 자신을 기절시킨 나쁜 남자들은 창 밖을 내다보고 있고 남편 알레한드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다.
‘쏴아아아아!’
밖에서 익숙지 않은 빗소리가 들린다. 집 안이 몇 개월 전 비가 내렸던 그때처럼 온통 물에 잠겨있다. 집기들이 멋대로 물에 둥둥 떠 있고 자신은 식탁 위에 누워 있다.
“비?! 이사벨라! 안돼!”
파울라가 소리치며 식탁 밑으로 뛰어내렸다. 밖에서 들어오는 물살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없는 힘까지 쥐어짰다. ‘이사벨라는 낮에 입었던 옷 그대로일 텐데 이 추운 밤에 비까지 맞는다면!’ 그러나 파울라는 문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금세 나쁜 남자들에게 붙들렸다. 양팔을 붙들린 파울라가 지지 않고 발버둥 친다.
“이야, 그렇게 쳐 맞고도 제법 힘을 쓰네.”
파울라에게 감탄한 나쁜 남자 중 한 명이 파울라의 왼쪽 목정맥에 신속하게 약물을 주입했다.
“아까 기절했을 때 미리 한 방 놓을 걸 그랬어.”
빈 주사기를 손에 든 나쁜 남자가 파울라를 붙잡느라 덩달아 젖어버린 옷에서 물기를 탈탈 털어가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러게 말이야.” 또 다른 나쁜 남자도 젖어버린 옷에서 물기를 짜낸다.
“그나저나 사막에 비라니? 여기 그 악명 높은 아타카마 사막 맞아?”
“무슨 엘니뇨 아니면 그 NSA 꼰대 이론 그것 때문이겠지. 어쨌든 비가 쫙쫙 내리니까 시원하고 좋잖아.”
“그래도 나는 춥다. 너무 춥다. 안 그래도 추운데 옷까지 젖으니까 더 춥다.”
춥다던 나쁜 남자가 또 다른 나쁜 남자에게 장난치 듯 안겨 보려다 힘으로 밀려났다. 밀려난 그는 이 상황이 재밌는지 웃음이 터졌다.
“이 자식이 미쳤나? 너는 웃음이 나오냐?”
“하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그거 사실이야? 여기선 잘 안 보여.”
“뭐?”
“지금 이 비가 아타카마 사마 전역에 내리는데 딱 한 군데, 딱 거기만 안 내리고 있다던데.”
“딱 한 군데?”
“응, 딱 한 군데. 그 커다란 쓰레기산. 지금 거기만 우산 씌워 놓은 것처럼 비가 안 온데. 그래서 우리만 여기 있는 거잖아. 다들 거기로 갔고.
“이야, ‘팀 왓킨스’ 아주 아주 바쁘겠고만.”
“너 말 조심해. 걔네 유치하지만 진짜 무서운 애들이야.”
아타카마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