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카마 ATACAMA (3)

사막의 불

by 옥광



애론은 아타카마의 흙에서 희토류가 발견되었던 순간, 바로 왓킨스사 첨단 장비와 함께 자신의 직속 정예 직원들을 불러들였다. 외부에서는 이들을 ‘팀 왓킨스’라는 둥 ‘왓킨스 슈퍼 팀’이라는 둥 자기들 마음대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지어 부르지만 내부에선 이름이 없다. 그냥 다 똑같은 직원들일뿐이다. 애론의 지시에만 움직이는 똑같은 직원.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댄에게서 넘겨받은 자료를 분석했고 댄이 연구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더 정밀하게 결과를 뽑아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해가 떨어지고 칡흙 같은 밤이 되었을 때 엔트로피 틈을 발견했다. 댄이 보여준 것보다 더 크고 정밀한, 오차범위를 좁힌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해서.


“그래서 이 비는 언제까지 내린다는 거야?”


애론은 쓰레기산 주변에 이루어진 비가 안 내리는 경계 안에서 비가 내리는 경계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애론의 직원들은 모두 똑같은, 편하고 싸서 조금만 닳아도 버리기가 아깝지 않은 후드티에 스웻팬츠를 입고 있었다. 같은 디자인에 입고 있는 옷의 색만 다르다.


“현재 주변 대기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약 2시간 후에 멎을 예정입니다.” 레드가 대답했다.

“어? 2시간 전에도 똑같이 말했는데?”

“그건 2시간 전의 현재고 지금의 현재는 다릅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2시간 후가 맞습니다.” 옐로가 대답했다.


애론이 불쾌해했다. 이 직원들은 애론의 불쾌함에 긴장하던 덩치들과 달리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부여받은 본인 업무에 착실하고 성실하게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성분 분석 결과는 나왔어?”


여전히 불쾌감이 가시지 않은 애론이 근처에 주차된 왓킨스사의 트레일러 Lab. 의 블루에게 결과를 요구했다.


“네, X-선 형과 분석 (X-ray Fluorescence, XRF), 진공 플라스마 스펙트로메트리 (Inducitively Coupled Plasma Mass Spectromentry, ICP-MS), 라만 분광학 (Raman Spectroscopy)까지 진행했고 현재 결과는 데스프로시움 (Dysprosium), 노벨륨 (Nobeliun), 에르비움 (Erbium), 이터븀 (Ytterbium), 루테늄 (Lutetium), 프롤레튬 (Promethium) 란타넘(Lanthanum)이 발견됐습니다.”

“잠깐! 노벨륨이랑 프롤레튬이 나왔다고?”

“네.”

“그게 어떻게 나와? 그건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원소잖아? 합성만 해왔다고.”

“그 이유를 알아내라고 지시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냥 물어보는 겁니까?”

“… 일단 그냥 물어보는 거야.”

“그럼, 모릅니다. 저는 결과만 보고 드리는 겁니다.”


애론은 효율적인 리더로서 성실한 자세로 업무에 임하는 부하 직원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불쾌감을 꾹 참고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아이는? 그 아이는 찾았데?”

“아직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감자를 발견했을 지역은 찾았습니다. 그 흙에서 희토류 원소를 발견했고 동일 성분인 것도 확인했습니다. 지역을 찾은 건 확실합니다.”

“그럼 더 이상 그 집에서 기다려 보라고 할 필요는 없네? 감자 지역은 여기서 멀어?”

“가깝습니다.”


애론은 비가 내리고 있는 어두운 바깥쪽을 바라봤다.


“춥지?”


애론이 한 발자국 앞에서 비를 맞으며 움직이는 레드에게 물어봤다. 비에 흠뻑 젖은 레드가 바로 대답했다.


“네. 물론 춥습니다.”


레드의 입에서 하얀 김이 서려 나왔다. 애론이 있는 경계선 안은 꽤 따뜻한데 비가 오는 나머지 구역은 꽤 춥다. 애론은 방향을 바꿔 비가 내리지 않는 따뜻한 경계선 안, 넓게 퍼져 있는 쓰레기 산 쪽을 바라봤다. 이런 우연에 기대기 싫은데 자꾸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다. 댄이 말하는 그 외계의 어떤 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것들의 결과가 나를 돕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이… 신이 나를 돕고 있다.


“이 지역 매장 예상량 그거 확실한 거지?”

“확실한 건 없습니다. 일단 이곳 쓰레기산 구역에 관한 예상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뿐입니다. 확실하게 하려면 직접 채굴해 봐야죠.”


레드의 대답을 듣고서도 약 1시간가량의 고민을 하고 나서야 애론은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중요하다. 좋은 결과를 얻으면 이유는 얼마든지 변형시킬 수 있다. 그러니 이유가 불확실할 때는 결과가 나오는 걸 보고 이유를 만들어내면 된다.


“여길 갖자.”


마침 비가 멎었다.


“뭐야? 옐로! 비가 왜 지금 멎어? 한 시간 전에 두 시간 후라고 했잖아?”

“현재 대기 상황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아, 그렇지. 맞아, 이유는 그냥 만들어내면 되지.


“그런데 왓킨스 의장님, 이 지역을 갖기 위한 여러 가지 사무적, 외교적인 절차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뭔데?”

“저거요.”


젖은 옷을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레드는 세계 각 지에서 보내진 쓰레기가 차곡차곡 쌓여 올라간 쓰레기 산을 가리켰다.


“저게 있으면 번거롭습니다. 다들 쓰레기를 어디로 보내야 하냐며 반대할 게 뻔하다고요.”

“다들? 누구?”

레드가 애론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른 나라들이요.”

“아! 그럼 태워.”

“네?”

“태워 버리라고. 어차피 태우려고 했어. 다 태우고 적당히 테러리스트 같은, 그 비슷한 프레임을 씌워서 언론에 흘려. 그리고 우리는 이 지역 복구를 위해 쓸모없는 땅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관리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거지. 쉽고 싸게 간단하게. 어때? 좋지?”


오호라. 레드가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쳤다.


“그럼 언제 태울까요?”

“지금.”

“지금?”

“응, 지금. 뭐 하러 시간을 끌어? 시간만 지체되면 괜히 보안에 힘쓰느라 귀찮은 일거리만 생긴다고. 레드 그러고 싶어?”

“Nope. 아니요.”


애론이 레드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레드가 애론에게 우산을 씌워줬고 애론은 아직 비가 오는 지역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리고 뒤를 바라보며 레드에게 한 번 더 지시했다.


“그러니까 빨리 태워.”



**********



호르헤는 사촌 파울라가 그렇게 끌려가는 걸 보고 힘들었다. 그 덩치들이 알아서 돌아가라며 호르헤만 쓰레기산에 남겨 놨었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 힘들게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힘든 몸만큼 마음도 불편하다. 혹시라도 파울라의 집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어떻게 증명하지? 복잡한 일에 얽혀 들면 안 되는데. 이것저것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잠이 안 온다.


“호르헤! 호르헤! 방에 있지? 뭐 해? 호르헤! 빨리 나와 봐!”


샘이다. MIT 재학 시절부터 알아온 정말 귀찮은 녀석이지만 그래도 저 녀석 미국 워싱턴 출신이고 집안이 꽤 좋으니 잘만 지낸다면 그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함께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샘. 무슨 일이야?”

“빨리 나와 봐. 큰 일 났다고.”


큰 일? 설마 오늘 내가 겪은 일보다 더 큰일이 있으려고. 호르헤는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 않을 자신감이 충만했다.


“저길 봐!”


응? 어디? 그러고 보니 밖이 꽤 밝다. 어디서 헤드라이트를 비추나?


“불이야! 쓰레기 산이 전부 불타고 있다고! 저거 며칠은 갈 것 같아!”


뭐야? 충만했던 자신감이 한꺼번에 바닥났다. 오늘 처음 가 봤던, 샘이 가리킨 쓰레기산 쪽이 전부 불타오르고 있다. 사막의 밤이 이렇게까지 밝아졌던 적이 있었나? 미국 대도시의 밤도 이것보다 밝을 순 없을 것 같다. 호르헤의 손이 덜덜 떨렸다.


“샘! 저거 왜 저러는 거야? 무슨 일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모르지. 호르헤, 나 이것 좀.”


샘이 쓰레기산의 불을 배경으로 인증샷 찍어 줄 것을 요구했다.


‘찰칵!’


“아 참, 호르헤! 나 방금 아빠한테 연락이 왔는데 지금 당장 미국으로 들어오래. 저 산 저거, 불 때문에 유독가스 장난 아닐 거래. 그래서 지금 공항으로 가.”

“뭐?”


그러고 보니 샘의 차림새가 잠옷이 아니었구나. 커다란 화물용 트렁크 세 개와 작은 기내용 트렁크 한 개를 끌고 온 샘이 호르헤에게 청을 했다.


“그러니 호르헤, 나 지금 공항까지 태워다 줄 수 있어? 보시다시피 짐이 많아서 택시 부르기가 좀 그래.”


샘이 호르헤에게 큰 트렁크 두 개를 쭈욱 민다. 지금 트렁크를 옮겨달라는 거지? 호르헤가 샘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금 이 상황에 태워다 달라고? 얌체같이 자기만 쏙 도망가려는 주제에?


“뭐야? 호르헤! 어디 가? 나 태워 줘야지!”


하마터면 그 트렁크 손잡이를 잡을 뻔한 자기 손을 원망하며 호르헤는 밖으로 나왔다. 파울라의 집이 쓰레기산과 가깝다. 그녀의 남편은 거동을 못 하는 사람이다. 덩치들이 그 집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니… 이제라도… 지금이라도 파울라의 집에 가봐야겠다.



**********



파울라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정신이 돌아오면서 오늘 먹은 것, 위액, 침, 모든 것을 토해냈다.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거린다. 그래도 지금 느껴지는 열기가 너무 어색해 반드시 눈을 떠봐야겠다. 언제 사라진 건지 나쁜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비는 멎었고 고였던 물은 꽤 빠져나가 찰박찰박 거리기만 한다. 지금이 밤인지 새벽인지도 모르겠다.


“아앜!”


파울라의 눈을 밖에서 들어온 연기가 쑤신다. 시커먼 연기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쓰레기 산이 불타고 있다. 타오르는 산이 너무 넓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기침이 나오고 숨 쉬기가 힘들다. 눈은 점점 더 따가워진다. 알레한드로. 그이를 밖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이사벨라! 이사벨라를 찾아야 하는데!


“파울라! 파울라 안에 있어?”


호르헤다. 아까 파울라가 나쁜 남자들에게 끌려갈 때 구경만 하던 호르헤가 얼굴을 스카프로 칭칭 감고 찾아왔다. 파울라는 호르헤 면전에 대고 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 지금, 그럴 입장이 아니다.


“호르헤! 호르헤! 알레한드로를 알레한드로를 데려가 줘. 부탁이야 호르헤!”


파울라가 울면서 부탁했고 눈으로 파울라의 안전을 확인한 호르헤는 바로 알레한드로를 안아 올렸다. 어, 이렇게까지 가벼웠었나? 너무 번쩍 들려 멈칫 놀란 호르헤는 서둘러 파울라에게 따라 나오라고 외쳤다.


“파울라! 빨리 나와! 불길이 번지진 않더라도 유독 가스는 번져. 유독가스가 불보다 더 위험하다고!”


호르헤가 알레한드로를 차에 태우고 파울라를 찾았는데… 그런데 파울라가 안 보인다.


“파울라! 어딨어? 어디 있는 거야? 파울라!”


호르헤가 집으로 다시 들어가 파울라를 찾아봤지만 집 안 어디에서도 안 보인다. 알레한드로를 태우고 집 주변을 돌아봤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찾기가 너무 힘들다.


“안 되는데… 파울라! 이러면 안 되는데… 파울라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호르헤는 독한 연기 때문인지 연신 눈물을 흘리며 운전대를 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의 알레한드로가 부러울 지경이다. 이러면 안 된다고 울면서 파울라의 집에서부터 멀어졌다.


그 길에서 낮에 쓰레기산에서 본 안토니아의 가족을 발견했다. 불타는 산에서 발생한 유독가스에 괴로워하며 울고 있었다. 호르헤는 울면서 울고 있는 그들을 차에 태웠다. 차가 비좁았지만 탈 때가 없으면 차 위에라도 누군가를 태워서 가야 한다.



**********



쓰레기 산 주변에선 산소공급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화복을 입은 애론과 직계 직원들이 불타오르는 산을 구경하고 있었다.


“동시에 신제품 시착까지 해보네요.”


그린이 가까이 있는 불길을 이리저리 통과해 보면서 즐거워한다.


“숨 쉬는 건 어때? 그것도 편하지?”

“네, 애론 의장님. 편해요. 진짜 좋은 건 착용감이에요. 그냥 두꺼운 패딩 입은 느낌? 게다가 단열 효과도 뛰어나서 체감 온도가 높질 않아요. 이번 거 정말 훌륭한 데요?”


애론도 그린을 따라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봤다. 아직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은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나중에 화성에서 아주 유용할 것이다.


“애론 의장님.” 춤추는 애론을 레드가 불렀다. “주변 전파 통제는 완벽하게 진행했고요. 이곳 쓰레기산 인근 사람들은 따로 경고하거나 대피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남겨뒀습니다.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을 죽을 겁니다. 그건 외국인 관광객도 마찬가지고요.”

“그래, 전부 살아버리면 스토리가 안 나오지. 그렇게 죽어주는 사람도 있어야 자연스러워. 잘했어.”

“그 아이의 엄마는 어떻게 할까요?”

“엄마? 누구?”

“그 최초의 감자를 발견했다는 아이 엄마 말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감자를 발견한 지역에 나타난 걸 붙잡았다고 합니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데요. 그 지역에 있던 의장님의 경호원들이 아주 호되게 당했다던데요.”

“그래? 경호원 누구? 해고해야겠네. 그런 여자한테나 당하고.”

“의장님,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제 말은 그대로 둬도 그 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은 없겠지만 그러니 반대로 그대로 두지 않아도 큰 타격은 없을 거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말귀라도 잘 알아들으면 좋을 텐데 그런 타입은 은근히 말귀를 못 알아듣거든요. 그렇다면 귀찮은 일은 안 생기도록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오호라, 이번엔 애론이 레드의 의견에 맞장구쳤다.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다.


왓킨스사의 최신 방화복을 입은 몇몇이 약물에 잠든 파울라를 불타는 쓰레기 산의 적당한 곳을 향해 던졌다. 생각보다 멀리 날아가지 않아 불속으로 들어가 다시 던졌다. 그녀는 쓰레기 산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니 훗날 신원이 밝혀진다 해도 의아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열기가 세서 그녀의 신원을 파악할 어떤 것이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 레드가 서둘러 트레일러에 다녀왔다. 손에는 아까 내린 비에 젖었던 후드티와 바지, 속옷 몇 가지가 들려 있었다.

“레드 그것들 어쩌려고?” 옐로가 레드에게 물었다.

“필요 없잖아.”


레드가 들고 있던 옷가지들을 불길을 향해 던졌다.


“아! 나도!”


옐로도 서둘러 트레일러에 다녀왔다. 레드가 들고 왔던 옷가지보다 더 많은 옷가지와 쓰레기 더미가 들려 있었고 그걸 그대로 불길에 던졌다.


“레드 너 진짜 똑똑한데.”

“어! 뭐야?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쓰레기를 들고 나온 직원들이 불을 향해 안 입고 안 쓰는 쓰레기를 던졌다.


불길의 원인은 애초에 애론이 구상했던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고 밝혀지지 않았다. 그 어떤 개입 하나 없이 그냥 간혹 일어나는 누군가의 불장난이 대참변으로 이어졌다는 추측이 정설이 되었다. 애론으로선 이 또한 신이 돕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코 티 내진 않았다. 우연에 기댄 결과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이므로.


며칠간 지속될 거라던 샘의 말과는 달리 불길은 몇 주간 지속되어 쓰레기 산의 쓰레기가 다 타버리고 나서야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쓰레기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구호물품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구호물품의 대부분은 쓰레기산에서 타버린 것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들이었다.



**********



--- 이사벨라! 이사벨라! ---

“어, 어어.”

--- 이사벨라! 어때요? 괜찮아요? ---

“어어어어, 어어, 어어어어어, 어어어.”

--- 아니에요. 당신의 엄마가 그런 게 맞아요. 분명히 당신 보고 멀리 가라고 했다고요. ---

--- 맞아요. 이사벨라 우리가 틀리게 전하지 않았어요. ---


이사벨라의 대답이 다시 없어졌다.


--- 이사벨라! 이사벨라! 이사벨라! ---

--- 이사벨라 왜 그래요? 이사벨라가 이런 적이 없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이사벨라는 그들에게 엄마가 왜 그렇게 했는지 여러 번 물어봤지만 그들은 계속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정말 그 이유를 몰랐다. 그저 이사벨라의 불안정한 배열이 안정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 이사벨라, 우리는 당신이 걱정돼요. 우리와 같이 연결된 이동을 하면서 혹시라도 배열이 잘못되었을 까 봐 걱정돼요. 그런 걸까요?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당신 괜찮아요. ---

“어어, 어어어, 어어.”

--- 아, 이런 이사벨라 엄마가 보고 싶어요? 알겠어요. 당신은 엄마가 보고 싶어요. ---

“어, 어어.”

--- 안 돼요, 이사벨라. 당신은 지금 엄마를 볼 수 없어요. 엄마는 방금 전 원소 배열이 바뀌었어요. 완전히 바뀌었어요. ---


이사벨라는 쓰레기 산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산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걸 몰랐다. 이사벨라 주변의 작은 공간만 이사벨라의 배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지시켜 불길을 막아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쓰레기 산은 비가 내려도 꺼트리기 힘들 불길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사벨라가 또 대답이 없다. 우는 법을 몰라 울지 않는 이사벨라는 몸이 아플 만큼 마음이 힘들었다. 그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구는 이사벨라에게 좋지 않아. 그들은 큰 결심을 했다. 그리고 아파하는 이사벨라를 옮겼다. 이사벨라가 있던 작은 공간에서 그녀가 사라지니 작은 공간은 금세 화마에 휩싸였다. 이사벨라는 이제 쓰레기산에 있으면서 쓰레기 산에 있는 게 아니다. 아타카마 사막에 있으면서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게 아니고 지구에 있으면서 지구에 있는 게 아니다.


--- 나, 왜 이래요? ---


열린 공간에서 이사벨라가 언어를 표현했다. 그 소리가 이사벨라의 귀에 들린다. 자기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이사벨라. 그녀는 지금 다 들리고 다 보인다.


--- 이사벨라, 우리랑 가요. 지구는 자꾸 이사벨라의 배열을 불안정하게 만들려고 해요. 우리는 그게 싫어요. 그래서 이사벨라와 함께 가려고 잠시 여기로 데려왔어요. 이사벨라 우리와 함께 지구를 떠나요. ---


이사벨라가 주변을 둘러봤다. 불이다. 시뻘건 불이 높이 치솟고 그 끝에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이사벨라는 시커먼 하늘색을 바라봤다. 저 시커먼 색이 하늘색이구나.


--- 엄마가 저 쪽에 있어요. 엄마가 보여요. 엄마가 울고 있어요. ---

--- 맞아요, 이사벨라. 그건 방금 전 당신의 엄마예요. 지금은 원소배열이 완전히 바뀐 당신의 엄마예요.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요. ---

--- 괜찮아요. 나 그래도 엄마한테 가고 싶어요. 나는 엄마랑 떨어지는 게 싫어요. 나 엄마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요. ---


그들은 다시 생각했다. 이사벨라를 환영하고 싶지만 억지로 할 수는 없다.


--- 알았어요, 이사벨라. 우리가 당신을 엄마에게 데려다 줄게요. ---

--- 그러고 나서 우리는 지구를 떠날 거예요. ---

--- 네? 왜요? ---

--- 우리는 생각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지금 지구는 약간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시무룩해진 이사벨라가 그들에게 대답했다.


--- …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걸 여전히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내가 불안하다면 그건 당신들 때문이 아니에요. ---

--- 이사벨라… 당신은 소중해요. 그래서 우리는 떠나요. ---

--- 당신들이 지구를 떠난다고 해서 나를 떠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아요. 맞죠? ---

--- 맞아요, 이사벨라. 우리는 이 공간, 시간, 우주 어디에서든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만날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랑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아요. ---

--- 그럼 나는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가도 되나요? 아빠도 다시 만날 수 있어요? ---

--- 그럼요. ---


“에취!”


갑자기 맡게 된 매캐한 공기에 이사벨라가 재채기를 했다.


“어어어어, 어어어.”


이사벨라가 그들에 의해 엄마 곁으로 돌아왔다.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도움으로 이사벨라는 손을 뻗어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항상 거칠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피부는 그냥 흙이 묻은 돌과 같았다. 냄새도 이상했다. 주변의 공기는 어딘가 뜨거웠다. 그들은 이곳이 이사벨라가 원래 있던 장소라고 했지만 이사벨라는 너무나 낯설었다. 갑자기 두꺼운 장갑을 낀 누군가가 이사벨라에게 담요를 덮어 번쩍 안아 올렸다. 이에 깜짝 놀란 이사벨라를 그 사람들은 이사벨라를 구하러 온 사람들이라며 지구에 없는 그들이 안심시켜 줬다.


훗날 이사벨라는 ‘기적의 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엄청난 화마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아이. 어디 한 군데 불에 그슬리지 않고 돌아온 아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장애 속에서 피어난 생존력. 아타카마에서 피어난 꽃. 이사벨라는 그렇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가 되었다. 구호 물품으로 온 것 중 가장 예쁜 원피스를 입고 찍은 이사벨라의 사진이 대도시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했다. 물론 유명세란 게 영원하진 않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데엔 꽤 유용하다.



**********



“이사벨라, 나 다녀올게.”


호르헤가 인사를 하니 이사벨라가 거기에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사촌 파울라의 말대로 이사벨라는 정말 말이 안 되는 아이다. 과학적, 의학적 견해로 귀가 안 들림이 분명한데도 지금처럼 호르헤가 말을 하면 용케 반응한다. 더 신기한 건 같이 살면서 이사벨라가 어딘가 넘어지거나 부딪힌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적의 아이’ 이사벨라는 왓킨스사의 배려로 먹고사는 데에 지장이 없을 만큼 풍족한 지원을 받았다. 그 덕분에 이사벨라의 보호자가 된 호르헤도 별 걱정 없이 살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샘이 호르헤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왔다. 호르헤를 통해 사적이든 공적이든 어떻게든 왓킨스사와 연줄을 만들고 싶은 이유에서다. 호르헤는 그걸 다 알면서도 오랜만에 아타카마에 찾아온 샘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어쨌거나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호르헤도 몇 가지 부탁할 게 있기 때문이다.


아타카마의 화마 지역에는 왓킨스사의 거대한 돔이 지어졌다. 그곳의 유독가스를 정화시키기 위한 사업의 일종이라는데 그 때문에 겨우 살아남은 아타카마 사람들까지 전부 쫓겨나 살아갈 터전을 완전히 잃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걱정해 주지 않았다. 그저 왓킨스사의 지역 복구를 위한 아낌없는 지원에 찬사를 보낼 뿐이었다. 최근 왓킨스사는 인류의 희망이라는 타이틀 아래 우주 개발에 본격적인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호르헤는… 조용히 지내고 있다.


행방불명된 파울라는 끝까지 못 찾았다. 왓킨스사의 도움으로 첨단 BCI(Brain-Computer Intergace) 장비를 통해 이사벨라와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사벨라는 그 화재 속에서 엄마와 같이 있었다고 대답했었다. 애초에 이사벨라가 거기서 살아 나온 것도 말이 안 되는데 파울라와 같이 있었다니 더 말이 안 되지. 이사벨라의 대답은 모두 들었지만 동시에 아무도 그 대답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샘을 만나러 가면서 알레한드로의 묘지에도 들렀다. 구출된 알레한드로는 끊임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살아 돌아온 이사벨라를 만나고 며칠이 지나 비로소 눈을 감았다. 이사벨라에게 엄마의 죽음에 이어 아빠의 죽음까지 알리려니 속이 타 죽는 줄 알았지만 의외로 이사벨라는 담담했다. 너무나 담담했다. 호르헤는 담담하다는 게 슬픔보다 더 슬플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제 아타카마는 구리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까지 채굴되고 있지만 더 가난하다. 그럭저럭 살아갈만했던 땅 아타카마는 지금은 더 가난하고 더 생존하기 어려운 땅이 되었다.


호르헤는 샘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미국에 살 만한 괜찮은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사벨라와 함께 아타카마를 떠날 것이다. 다행히 떠날 수 있는 돈이 있으므로.


아타카마뿐만 아니라 더 많은 곳이 사람이 생존하기 어려운 땅으로 변하고 있다.


이사벨라는 아타카마 외에 가 본 적이 없고 호르헤도 MIT가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와 잠깐 짬을 내어 다녔던 여행을 포함해 봐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가 본 곳이 별로 없다. 일찍이 돌아가셨던 호르헤의 부모님은 아타카마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파울라도 알레한드로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샘도 안 가본 곳이 가본 곳 보다 더 많다. 지구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우주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넓은데 어찌 된 연유인지 사람이 생존할 만한 땅은 빠르게 좁혀진다.


호르헤는 꽤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이다. 어떤 특별한 창구로 오고 간 시그널은 없었지만 아마도 왓킨스사의 이사벨라를 위한 아낌없는 배려에는 어떤 대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호르헤는 자신과 이사벨라가 살아갈 시간을 위한 침묵을 선택했다.











아타카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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