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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는 싫지만, 깨끗한집을 원해

나도 이런 내가 싫어.

by 지연

오늘은 무엇에 대해 얘기해 볼까.

우리 모두는 세계적 재앙을 한 차례, 아니 몇 차례 연이어 겪었다. 코로나라는 감염병은 온 지구를 움츠러들게 했고, 우리 모두는 서로를 의심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고, 조심히 각자도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누가 더 큰 피해자인지 우리는 굳이 따질 필요 없을 만큼 제각각의, 각자 다른 무게의 부담과 짐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다. 어린 아기에서부터 생애를 마감하기 직전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당시 내 집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당시 아이들은 제각각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이마저도 내가 개별적으로 챙겨 줘야 하는 것들이 많은 나이에 있는 아이들이기에, 엄마는 쳇바퀴 속 햄스터 마냥 열심히 움직였다.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지내게 된 것도 한국에서 10개월을 보냈고, 주재원 가족이 되어 베트남 호찌민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을 우리는 함께 보내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몸과 마음이 얼마나 낡아졌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지금 이렇게 늙어 보이는 것도 그때 그 시기에 겪었던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호언장담한다.) 게다가 나는 좀 촌스러운 구석이 있고, 항상 음악도 느리고 조용한 음악을 선호하며, 항상 많은 것들보다 부족한 것을 좋아하고, 시끌시끌하고 화려한 것보다 한적한 장소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적막함을 등에 지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 나 혼자 조용히 차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는 충분할 텐데…… 코로나 위기로 인해 내 고요함은 붕괴되었고, 내 독립된 시간 역시 소멸되었으며, 내 자존감은 더없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 종일 바닥에 밟히는 7살 막내의 장난감과 9살 첫째 딸아이의 레고 조각을 주우며 다녀야 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물감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혼신을 다해 엄마 노릇을 하고 있었다. 신혼 때부터 나는 흰 식탁을 갖고 싶었다. 친정엄마가 말리는 탓에 결국 원목 식탁을 구매했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왜 그러셨는지 주부 14년 차가 되니 충분히 동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은근히 고집이 있던 나는 서재 책상이라는 어설픈 핑계를 대고 흰 책상을 구매했고, 코로나 시기에 그 애증의 식탁으로 나는 아이들과 전린빈발,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치렀다. 당시 나는 무언가에 씌인 듯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엄마의 얼굴로, 세상에서 제일 근엄한 목소리로, 열 살도 안 된 두 딸에게 곧 시집갈 아이에게 신부 수업을 해 주는 사감 선생만큼이나 엄격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우리 아이는 7살, 9살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친정엄마는 내게 청소 문제로 눈치를 준 적은 없었던 듯하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 친정은 먼지 한 톨도 허락하지 않는 아주 청결하고 정리정돈이 잘 된 집이었으며, 이것을 유지하는 데 엄마는 크게 힘들어하는 내색이 없었다. 내 눈에는 그러했다. 물론 당신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친다고 자식이 정리를 잘할 거라고는 믿지 않으셨던 듯하며, 항상 아무 말 없이 먼저 집안을 깨끗이 치우셨고, 그 뒷모습을 나는 구경만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분과 나의 결과적 차이가 선천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까? 엄마는 잘 참으시는 성품이시고, 나는 욱하는 성격을 가져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우습게도 결혼하면서 나는 다른 그 누구보다 친정엄마와 수많은 비교를 머릿속으로 해 오며 살았는데, 이러한 청소 문제에서도 수많은 비교, 존경, 질투를 해 오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쉬운 것이 왜 나는 어려울까……



나도 조금씩 머리가 굵어질 나이가 될 때쯤, 온종일 청소하시던 엄마 모습을 보면서 딸로서 느끼는 안쓰러움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 선을 넘어서 ‘나와 엄마는 왜 이리 다를까? 나도 엄마처럼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도 집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대답 없는 공상으로 이어졌다. 길고 긴 공상의 끝에 나는 몇 가지 결론을 부족하나마 내릴 수 있었다. 우선 첫째, 나는 항상 내가 기피하고 싶은 것, 즉 더러워진 것을 치우는 것을 일정 기간 방치하다가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 방치가 분노를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어, 지금까지 집을 정리하지 않고 피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심리학자 엘리스(Ellis, 1957)의 합리정서행동치료에 따르면, “해야 한다(should/must)”는 비합리적 신념이 강할수록 행동을 회피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 완벽주의자는 자신에게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설정한다고 한다.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오히려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내가 여기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에 가깝지만, 자신 없는 분야에서는 완벽할 자신이 없어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되고,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그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책망 사이에는 가엾은 아이들이 항상 멀뚱히 서 있었던 것이다.



둘째 이유를 말하기 전에, 저자는 모든 이유가 내게만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보려는 의도가 있음을 독자분들도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들의 놀이 성향과 행동 반경에도 위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 존재했다. 내 딸들은 어느 곳에 떨어뜨려 놓아도 친구들을 모아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다. 목소리만 크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를 즉석에서 잘 만들어 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루하지 않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항상 부러우면서도 존경심마저 들었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때로는 창의력 높고 사회성 높은 아이들이라는 칭찬으로 이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더럽히는 말썽꾸러기들이기도 했다.



연애할 때 내 남편의 AB형 혈액형 매력에 나는 푹 빠졌었다. A형의 섬세함과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B형의 엉뚱하면서 재치 있는 괴짜 성향을 나는 좋아했고, 아이들도 재미없는 나보다는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나보다는 남편을 더 닮은 두 딸이 태어났고, 그 딸들도 재미있는 AB형으로 모두 태어나서 결국 나는 AB형 세 명과 함께 적응하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아직 사회화가 덜되어 본능에 더 충실한 아이들은 쓰레기도 장난감으로 삼고, 크레파스·물감 찌꺼기도 꾸며 주기까지 했다. 화장실은 물감을 버리고 남은 흔적으로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공간으로 변했고, 바닥 부스러기로 무선청소기는 고장이 여러 번 나서 수명을 다해 가고 있었다. 온갖 놀이로 더러워진 손으로 흰 페인트 벽을 만진 탓에 흰 벽은 이미 수십 년째 사람이 살지 않은 듯 스산한 공포의 벽이 되어 버렸다.



내가 청소를 멀리하고 싶은 마지막 이유로, 집은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늘 깨끗한 것을 중요시하는 부모님 아래 자랐고, 그 속에서 부모님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균형을 맞추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결혼 후 새로운 가족과 함께 예전의 깔끔함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웠다. 집은 항상 따뜻하고 깨끗해서 기분 좋아지는 곳이어야 한다는 깊은 신념이 내게 굳게 박혀 있었기에, 이 기준에서 벗어난 집의 상태는 내게 “집다운 집”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힘들게 했다.



집순이로 살아왔던 내 젊은 날의 집에 대한 추억이 내게는 결혼 후 너무 달라져 가는 집을 낯설고 피하고 싶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대문을 열면 현관은 늘 빛이 났고, 그곳에는 오늘 신은 신발 한 켤레씩만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으며, 바닥 마루는 식구들 걸음마다 뽀득뽀득 소리를 냈고, 창틀은 언제나 깔끔해서 언제든지 창가에 기대어 밖을 볼 수 있었다. 내 방 침대는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낮에는 누울 수 없을 것 같은 각 잡힌 정돈이 늘 있었다. 엄마는 수시로 부엌 찬장을 정리하며 행주로 닦아 내고 계셨고, 나는 내 일이 아닌 듯 슥 지나치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래, 이것이 집이구나. 그럼 지금의 집은 어떠한가…… 하는 강박과 한탄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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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어지르며 에너지 넘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고, 가끔 여유가 된다면 아이들도 가르치고 싶은 나는 청소라는 난제에 항상 부딪혀 일부러 피해 보기도 했다. 다시 정신 차리고 집중해 청소를 해 보았다가, 결국 나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덮어 두고 짜증을 내는 게 일상이었다. 늘 매력적으로만 느껴지던 AB형 남편과 두 딸이 슬슬 벅차기 시작했고, 나이 마흔하나에 나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 하나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그러나 그게 내가 아니길 바라며 하루하루 버텨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었다. 누구 하나 어지르기 싫은 그런 집 말이다. 집이야말로 나의 시작점이며, 내 작업터, 내 휴식처, 내 생존터 아니겠는가. 게다가 코로나로 가득 찬 이 도시에서 내가 유일하게 생존을 보존할 수 있는 곳이 여기 아니면 어디란 말인가. 내 전부를 담고 있는 그 집을 깨끗이 해서 살고 싶다는 게 진정 내 무리한 욕심일까.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고, 무승부의 줄다리기 같은 상황을 끊임없이 이어 갔다. 인테리어 잡지 속에 나오는 뽀얀 벽에 정갈히 정돈된 가구들이 센스 있게 놓여 있고, 그 틈에 보이는 아이들 소품들이 예쁘게 진열된 집. 큰방에는 내 센스가 묻어 있는 책상이 놓여 있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행복한 특기를 이 공간에서 뽐내 보고 싶을 뿐이다. 화장실은 언제든 손님이 와도 당황하지 않게 쓸 수 있는 곳이길 바라는 마음. 내가 욕심인 걸까.



그래서 나는 마치 산속 오래된 절에서 고승의 조언을 기다리는 중생처럼, 누군가 내게 해답을 내려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이런 속내를 내비치는 것은 여전히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이라면 챗GPT에 물어도 될 일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방법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결국 나는 언제나 그렇듯 서점으로 향했다. 분명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이미 현실을 초월한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써 내려간 비밀의 책이 서가에 놓여 있으리라…… 그런 믿음을 안고 지역에서 가장 큰 서점의 문을 열었다.



가볍게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을 지나고, 조용히 마련된 작은 카페를 지나…… 발걸음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찾았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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