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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덕에 가족을 얻었습니다.

나는 남편바라기입니다.

by 글쓰는 트레이너

남편의 할아버지 제사가 계기였다. 제사를 지낸 후, 어른들은 우리 자식 세대에게 목돈을 남겨주셨고, 그 돈을 계기로 사촌들끼리만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사촌들만 모인 첫자리,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나는 여자친구로서 참석했

사촌들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어느덧 나는 아내로서 참석했다.

그들과 있는 것이 편해져 간다.



고3이라 그간 참여하지 못했던 막내도

수능 끝나고 성인이 되어 자리에 함께했다.

막내와 접점이 없었던 사촌 언니, 사촌 오빠들도

그 친구에 대해서 알아간다.



처음에는 단순한 촌 모임이었.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히 핏줄에 의한 모임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며 피보다 진한 유대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두 번째 모임까지는 어른들이 주셨던 돈으로 모임을 가졌지만, 장손 오라버니의 리더십과 사촌들의 팔로워십이 더해져, 연회비를 모아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결혼한 사람은 15만 원

미혼 직장인은 10만 원

미혼 비직장인은 5만 원


모두가 합의한 약속이었다.

단순한 친목을 넘어, 함께 만들어가는 전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모임땐 어색함이 가득했다.
처음으로 사석에서 만난 사촌들은 서로를 탐색하느라 바빴다.

자연스럽게 공통된 화제는 어린 시절의 추억.

큰 집에서 일어난 일들,

어른들께 혼던 일화,

명절 때마다 반복되던 이야기들이

그들을 연결해 주었다.



두 번째 모임.
이제 나도 가족이 되어 참석했다.

사촌누나도 아기와 함께했다.

그리고 각자가 소개하고 싶은 연인들도 함께 자리했다.

명절에 형식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로 모인 느낌이다.



세 번째 모임.
새로운 추억이 쌓이기 시작했다.

첫 모임 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두 번째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다시 이어졌다.



“그때 아기가 요만했는데 많이 컸네!”

“저번에 데려온 분은 잘 만나고 있어?”

" **이는 제대하려면 이제 1년 쫌 안 남았나?"

" 막내가 참석을 다하다니.. 놀랍다 놀라워!!!"



남편과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보드게임도 해보았지만,

결국 가장 재미있는 건 추억 이야기였다.

함께한 시간들이 게임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인 모양이다.






이번으로 벌써 네 번째 모임이다.
그냥 가족이라 좋다는 게 이걸 말하는 걸까?

조카들이 꺄르륵 놀고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삼촌, 이모들의 표정에는 그저 흐뭇함이 묻어난다.

라이어게임 같은 단체놀이도 하며 우리끼리 깔깔 거리며 재밌게 논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분위기.

그 편안함 속에서 나 또한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느낌이다.



첫 모임 때는 나도, 이들도 서먹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웃는다.



공유하는 기억이 늘어가고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더욱 서로를 알아간다.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가까운 것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과 공유한 기억들이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었다.






내가 곧 호주에 간다는 소식에, 사촌들은 아쉬움을 표현했다.


"다음 모임에는 제수씨가 없겠네요."
"호주 가면 볼 수 있는 건가?"


진심이 담긴 말들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나를 진심으로 가족으로 받아주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마음이 찡했다.



사촌형이 말한다.
“동생 아내 잘 만났네. 이렇게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말이야,, 아주 장가 잘 갔어.”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네, 오히려 제가 남편을 잘 만나 좋은 분들이 가족이 되어서 더 감사하죠.'


부끄러워서 차마 말로 바로 안 나왔지만 진심이었다.



처음에는 남편의 가족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공간에 함께하는 것이 감사했다.






가족 같은 관계란,

때로는 같은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되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더라도
시간을 함께하고, 마음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남편 덕분에 소중한 사람들이 내 삶에 스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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