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학자는 모든 문화가 완전하고 조화롭고 언제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불변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쳤다.'
책을 읽는데 생각이 튀어나온다.
'조화롭다고? 문화도 문화 나름 아닐까? 문화의 본질이 뭘까?'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물음표.
사유의 깊이와 밀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배우면서
그 깊이를 뚫는 지점이 궁금한 요즘이었다.
오늘의 새벽독서에서 나의 의문을 나누던 중
나의 생각에서 좋은 문화 나쁜 문화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발견했다.
질문 자체도 깊이 사유해야 나오는 것이었다.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이 나온다.
대체 그 깊이 사유한다는 게 뭘까.
깊이는 해체에서 나온다.
질문의 구조를 본다.
닫힌 질문에는 인식이 담겨있다.
'문화도 문화 나름 아닌가?'
그 속에서는 좋은 문화, 나쁜 문화로 나누어 있고
조화롭다는 의미를 '좋고 아름다운 상태'를 전제로 두고 있었다.
알아차리는 순간 아찔했다.
이분법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해도
찰나의 생각 속에는 여전히 그 틀 속에 있다.
결국 내가 던진 질문은
깊은 사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침묵의 공기를 견디지 못해 던진 화두였다.
그래서 생각은 더 나아가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덕분에 배웠다.
깊이 있는 사유란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전제를 해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간 해체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밖으로 새는 생각이 많았다.
이런 생각이 많을수록
나를 같은 자리에서 머물게 했다.
어쩌면, 그동안 생각이 많았던 이유는
파헤쳐 보지 않아
생각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