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멋있게 살자.’
고등학생 때 정해놓은 나의 좌우명.
이 문장을 떠올렸을 때 한 연예인을 떠올렸다.
이효리.
예능에서 망가져도, 어떤 옷을 걸쳐도
그 자체로 멋있던 사람.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다.
무엇을 해도, 어떤 모습이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멋있다’는 말을 떠올리면
머릿속에는 늘 비슷한 장면만 그려졌다.
잘 차려입고,
자신감 넘치고,
어딘가 카리스마 있는 모습.
나는 ‘멋’을 말하면서도
결국 정해진 이미지 안에서만
그 단어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저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했을까.’
이 질문을 뒤늦게서야
다시 곱씹어 보게 되었다.
답은 이미 그때 문장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망가져도, 어떤 옷을 걸쳐도’
사람들은 보통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면
그 순간을 멋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모습조차 이상하게 가볍게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로워 보인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후자의 사람은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
어떤 모습이 보여도
그걸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외부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존재자체로 빛나는 사람을
멋있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멋은 만드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멋을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건,
어쩌면 아직 스스로를 멋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뒤늦게 깨닫는다.
그전까지 나는
멋을 외적인 형태로만 이해했다.
그래서 옷보다 몸을 만들었고,
결국은 여전히
보이는 모습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던
그 모습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면은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이 말을 내게 해주기까지 오래 걸렸다.
어쩌면, 우린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린 다, 이미 멋있는 사람들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