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구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내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예의 없어 보이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과 불안이 가끔씩 나에게 찾아오곤 했다.
‘그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었고
그 바람의 이면에는
‘내가 그런 사람이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타인이 그렇게 볼 때마다 쉽게 흔들렸다.
어쩌면 나의 그림자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호구라는 모습이 드러났을 때
쉽게 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고,
나쁜 사람 모습이 드러났을 때
불이익이 있을 것 같고
예의 없는 모습이 나올 때,
나의 가치가 떨어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이미지 자체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로 인해 내가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회는 무시당하면 안 되고
착하게 살아야 하고,
깍듯하라고 교육한다.
그래서
나는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괜찮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문제는 나의 존재감이 내 안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걸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불편한 상황들을 삼켜서 목에 넘기기 시작했다.
사람 안에는 서로 다른 모습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을 단정짓고 그 이면의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그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해서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니다.
나의 시야에서 없을 뿐 자각의식아래에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안볼려고 할수록 자꾸만 떠올라서 괴로워진다.
사람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애먼 남탓, 세상 탓을 찾곤 한다.
어떤 한 장면으로
나도 타인도 전체를 규정할 수는 없다는 걸 배웠다.
드러난 나의 모습을 하나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족할 수 있는 나의 모습까지도.
때로는 속좁고, 모자라고, 유난을 떠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끄러울 때가 있어서 나를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드러난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나를 다시 나에게로 가져온다.
참고서
몸은 알고있다, 뤼디거갈케, 이지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