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트레이너 시절,
사람들의 몸을 보고 운동을 가르치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상사에게 물었다.
"제가 과연 할 수 있을까요?"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그건 자만이니까. 그냥 자신감 있게 해."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별다른 선택지 없이 그 시간을 견뎌냈다.
사회초년생이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왜 그 질문이 자만이 되는지,
자신감이 없는데 어떻게 자신감 있게 하라는 건지
당시의 나는 그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자신감이 없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그 말속에는 겸손의 가면이 있었다.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표시를 먼저 내보이며
질책보다 응원을 받고 싶었던 마음.
피드백에 약했던 나는,
비판보다 다독임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인정한다.
그때의 나는 자만이었다.
초보일 수밖에 없는 시기에
이미 능숙하길 바랐다는 점에서 그랬다.
서툰 것이 당연한데도 유능하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빙하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어마어마한 결과를 위해
반드시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성장이 쌓이면
논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일 만큼 큰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는 그 시작이 작다는 이유로
가능성을 쉽게 과소평가한다.(주)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지금의 작은 성장에 집중해 양을 쌓다 보면
보이지 않던 변화는 어느 순간 분명한 차이로 드러난다.
처음엔 못하는 게 당연하다.
많이 할수록 잘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못하는 시기를 잘 견디지 못한다.
못하는 나를 마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그랬다.
작가를 꿈꾼 적은 없지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전하려면 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너무 일반적이고 재미없다"는 피드백은 아팠지만
배운 적도 없고 이제 막 시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받아들였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믿었다.
계속 쓰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과 반복은 결국 나를 나아지게 만든다.
그렇게 쓰다 보니 쓰는 근육이 조금씩 생겼고
어느 순간 내 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단한 결과는 아니지만
출발점에 서 있던 나와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책을 읽고, 나누고, 쓰는 시간이 쌓이자
예상하지 못한 변화도 찾아왔다.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하게 되었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코칭실습을 해야했다.
예전과 다르게 뻔뻔하게 임했다.
내가 서툴다면 그것 역시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나는 초보였으니까.
결국 글을 쓰며 배운 건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초보인 나를 인정하는 태도.
잘하려 애쓰기보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진심을 다하는 태도.
나는 이것을 뻔뻔함이라 부르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행동하자 사람들은 나를 자신감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냥 자신감 있게 해"라는 말은
대단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라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초보였는데
고수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그래서 자신감이 없었던 게 아니라
조급했던 것이다.
사회생활 저 연차의 데이터와
고 연차의 데이터는 다르다.
시간과 횟수는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지금의 나는 고수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계속 쌓는다면
언젠가는 그 자리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당연한 원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복잡하던 생각은 단순해졌다.
미래의 나와 비교하며 조급해하기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나란히 놓고 본다.
물론 행동한다는 전제 위에서다.
그렇게 보면 자신감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오늘의 나는 이미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을 것이다.
행동하는 한,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단단해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의 자리에서 묵묵히 해보려 한다.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반복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직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주)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