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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건교사 옥쌤 Oct 04. 2021

고양이를 키운다면 건강해야지

건강인, 건강묘1: 건강인의 셀프 건강 진단


 기상 알람에 몸을 뒤척이면 다리 사이에서 자고 있던 둘째가 기지개를 켠다. 보통 첫째는 방구석에서 혼자 잔다. 가끔 드물게 얼굴 바로 앞에 누워서 그르렁거리는 날도 있다. 자고 있던 나를 지켜보는데 때마침 눈을 뜬 걸까? 그럴 때면 항상 첫째에게 얼굴을 살짝 기울여 주문을 걸듯이 속삭인다.


"고마워.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건강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많이 사랑해. 내 새끼, 사랑해."


 그러면 첫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가냘프게 '냐앙' 대답해준다. 그르렁 진동 소리가 점점 더 커져서 베개가 울린다.

 

  첫째는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어느새 10살을 넘는 노년의 나이가 되었는데 여전히 건강하다. 애기 때 감기로 열이 나서 꼼짝 않고 있었던 적 한 번을 빼고는 딱히 병원 진료를 볼 일이 없었다. 먹기 전에 꼭 음식 냄새를 맡아보고, 적당한 양의 물을 꼬박꼬박 챙겨 마신다. 물이 깨끗하지 않은 거 같으면 심각한 표정으로 찾아와 새 물로 갈아줄 때까지 울어댄다. 애미야 물 좀 다오, 애미야 물 좀 다오옹.


 요구 사항이 있을 때 내는 울음소리는 꼭 엄마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할 때 내던 그 톤과 같다. 어쩔 때는 사람 같다. 사람의 표정, 눈짓. 말도 알아듣나? 건강하게 살아달라는 부탁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건강 유지를 위해 나름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첫째와 둘째를 보살펴주기로 약속해놓고는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지? 내가 없는 세상에 남겨진 우리 첫째와 둘째를 상상해본 적이 있던가? 첫째는 나름 씩씩하게 지낼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나 아니면 힘들다. 나 외의 사람과는 감정적 교류를 거부한다. 마음에 안 들면 식음을 전폐하고 이곳저곳에 대소변을 봐버리는 골치 아픈 짓을 한다. 나 말고 누가 이 애를 거둬줄 수 있겠는가? 애들을 위해 최대한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일단 건강 상태 진단부터 시작하자. 뭘 체크해야 하지? 수면, 운동, 식습관. 이 정도를 점검하면 될까?


 잠은 꽤 잘 잔다. 이직하기 전에는 교대근무를 했었는데, 잠자는 시간이 불규칙해서 애를 먹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안 맞는 직업이었다. 그 일을 그만둔 이후부터는 꼬박꼬박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난다. 하도 일찍 자고 일어나서 어떤 친구는 나를 두고 신생아라고 부른다. 심지어 이직 후에는 아침 8시까지 출근해야 해서 더욱더 일찍 자고 일어나게 됐다. 깊이 자는 편이고 자주 깨지도 않는다. 좋아, 수면 습관은 합격.


 운동은 꾸준히 해왔다. 원래는 운동이라면 질색이었다. 움직이는 걸 싫어했고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 읽거나 인터넷 하는 걸 즐겼었다. 교대 근무를 하면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걸 느꼈고 그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포동포동한 옆구리 위에 손을 올려놓고 주뼛주뼛 여성전용 헬스클럽을 등록했다.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보고 따라 했다. 가끔은 엉거주춤한 자세가 창피해서 도망가고 싶었다.


 헬스장 대표님, 트레이너님들은 모두 여자에 내 또래였다. 최신 영화를 추천받고 네일아트가 예쁘다고 칭찬하는 게 재밌었다. 그 재미로 꾸준히 갔다. 운동 기구도 동그랗게 배치돼 있어서 맞은편에 있는 아주머니들과 얼굴이 익숙해지면 수다를 떨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다들 서로 인상 쓰고 언성만 높이는데, 여기서는 다들 까르르 웃고 신이 나 있었다. 웃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운동하는 그들이 부러웠고, 함께 어울릴 수 있어서 좋았다.


 트레이너들은 유능했다. 미션을 줬고 달성하지 못하면 벌칙으로 스쿼트를 시켰다. 처음엔 미션 수행이 귀찮아서 안 했다. 얕잡아보고 그냥 스쿼트를 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 미션도 운동 동작을 해내야 하는 식이었다. 10개도 힘들었다. 부들부들 다리가 떨리는데 온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내 다리만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실은 아무도 관심 없는데. 아려오는 허벅지를 붙잡고는 얼마나 욕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스쿼트고 런지고 하여간 다 관심 없었지만 사람이 좋았고 웃고 싶어서 일단 꾸준히 나갔다. 헬스장에 들어서기 전에 한숨 쉬며 속으로 욕하는 건 필수였다.


 "많이도 아니고 2개만 더 해봐요!"


 씩씩하게 말하는 매니저님을 흘겨보았다. 그러면 더욱 크게 웃으며 옆으로 와서는 자세를 잡는다. 내 속도에 맞춰 같이 운동을 해준다. 아, 옆에서 그렇게 하시면 제가 어쩔 수 없잖아요! 흑흑.

 어제는 10개, 오늘은 12개, 내일은 14개.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5개만 더 해봐요!"

 "아! 못 해요! 짜증 나!"

 "하고 계시잖아요. 하하."

 

 할 때마다 2~5개씩 추가가 됐다. 정신 차려보니 스쿼트를 200개까지 하고 있었다. 여기에 와이드 스쿼트와 점핑 스쿼트, 암 워킹, 버피테스트를 3세트씩 더 해야 집에 보내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정말 유능했다. 큰 그림을 그렸던 걸까? 장기 프로젝트를 몰래 기획하고 있었던 걸까? 스쿼트 10개도 짜증 내던 인간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짜증이 많은 건 변함이 없지만.


 자기 효능감. 내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크면 하고자 하는 게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해내게 된다고 반두라가 말했다. 자기 효능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고 높이는 방법이 따로 있다. 그 방법을 읊어보자면, 일단 쉬운 과제를 해내고 성공하는 기쁨을 맛본다. 그 달콤함에 취해 있을 때쯤 조금 난이도를 높여본다. 다시 성공하고 또 그 기쁨에 취해버린다. 그걸 반복하고 반복하다 보면 자기 효능감 가득한 도전적인 인생을 사는 에너자이저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트레이너들은 심리학 공부까지 하면서 나를 키워냈는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실험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 덕분에 근력만 생긴 게 아니라 자기 효능감까지 마구 높아졌다. 운동뿐 아니라 이것저것 어려운 과제를 즐기는 사람이 됐다. 이제는 더 이상 못 한다는 핑계로 도망가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바보 같아 보이고 사람들이 놀려대도 시간만 들인다면 안 될 일 없다.


 나는 나를 믿게 됐다. 스스로에게 찍어뒀던 운동 못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벗어던져버렸다. 배드민턴 레슨을 받아보기도 하고 필라테스, 요가를 다녔다. 지금은 테니스와 복싱을 하고 있다. 물론 잘하지는 않는다. 도중에 다른 데에 정신 팔리지만 않는다면 나중엔 잘하게 될 거다.


 오랜 기간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인지 체력 하나는 꽤 좋다. 잘 지치지 않고 부지런한 편이다. 물론 타고나길 만사를 귀찮아하고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해서 모순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많다. 어쨌든 운동 습관도 합격.


 수면, 운동은 어떻게든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지만 아주 큰 문제 하나가 있다. 바로 식습관이다. 지금도 문제고 앞으로도 평생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하는 식습관.


 먹는 걸 무지막지하게 좋아한다. 배고프지 않아도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먹는다. 기분이 안 좋으면 음식으로 달래야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음식으로 축하해야 한다. 그나마 탄산음료, 주스,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다행이다. 거기에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과체중까지는 안 가고 버텼던 것 같다.


 항상 뭔가를 먹고 있는 중이거나 먹은 후이기 때문에 굳이 내 돈 주고 간식거리를 살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과자보다는 식사를, 빵보다는 밥을 더 좋아한다. 다행히 군것질을 그다지 하지 않지만, 누가 사다 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전부 먹어치워 버린다.


 문제는 이직을 한 이후부터 생겼다. 청소년을 상대해서인지 내 서랍은 과자로 잔뜩 채워져 버렸다. 학생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애매하게 남으면 조금씩 챙겨뒀다. 선생님들은 빈 손으로 찾아오는 게 머쓱하신지 꼭 과자를 들고 오신다. 있는 과자는 먹어서 없애야 한다. 덕분에 원래는 없던 군것질을 챙겨 먹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오전 10시, 오후 3시마다 단당류를 잔뜩 머금은 과자를 몸에 공급하게 됐고 그 당들은 아랫배와 허리에 두툼하게 쌓였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때문에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식습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좋은 핑곗거리였다. 죄책감 없이 기름, 고춧가루, 알코올, 탄수화물, 과당을 내 몸에 때려부었다. 퇴근 후 저녁 식사 대신 빵이나 과자, 맥주로 때우는 게 편해져서 그냥 그렇게 먹었다. 떡볶이, 매운 라면은 내 위장 벽을 조금씩 긁어내 그 속으로 침투해서는 지친 영혼을 찾아내 달래주었다.


 그 매콤한 악마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도 못 말리는 나의 치킨 사랑. 치킨을 정말 좋아한다. 그냥 반반 치킨도 좋고, 각종 양념을 쳐댔든지 구워버렸든지, 뭐 어떻든 전부 다 좋다. 그중에 뭐가 취향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다 다르고 전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만약 누군가가 점심에 삼계탕을 먹고, 저녁 모임에서는 1차로 닭갈비, 2차는 치킨에 맥주, 3차는 닭강정을 먹자고 하면 나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할 거다. 오히려 오늘 메뉴 선정 끝내준다고 찬양할 게 분명하다.


 2020년은 배달과 폭식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덕분에 체지방량이 4kg 늘었다. 여기서 지방이 아주 조금만 더 붙으면 표준 이상이 된다.


 각자 몸에 맞는 체지방량이 있다고 믿는다. 보통 나는 혈압 수치와 생리 주기를 통해 내 체지방량의 적정 여부를 판단한다. 워낙 살이 어느 정도 찌면 혈압 수치가 올라가고 생리 주기가 엉망이 된다. 아직 고혈압 판정 기준의 수치를 넘어본 적은 없지만 몸무게가 오르면 혈압도 따라서 오른다. 보통은 100/60mmHg인데 살이 붙으면 조금씩 올라간다. 생리 주기에 대한 얘기는 창피하니깐 생략하겠다. 일정 수준의 몸무게를 넘어가거나 단기간에 급격한 체중 감소가 있으면 생리 주기가 엄청 늘어진다는 정도만 말해두겠다. 덧붙여 2020년에는 불규칙한 생리로 애를 좀 먹었다. 어쩌다 보니 생리 주기에 대한 얘기도 결국 상세히 해버렸다.


 마른 몸매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건강한 몸은 추구한다. 탄산, 주스, 믹스커피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건강에 관심이 많고 약간 강박적인 성향도 있다. 굳이 날씬한 몸매를 원하지 않아도 건강을 위해서는 체지방을 감량할 필요가 있었다. 규칙적인 생리 주기와 혈압의 안정화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우리 첫째와 둘째의 곁에 오래 있고 싶어서 체지방을 감량하기로 결심했다.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면 오랜 시간 곁에 머물며 함께 하고 싶은 법.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알게 모르게 쏟은 노력과 투자로 얻어낸 결과물이다. 다른 일상 시간과의 조율,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건강한 육신 등을 통해 확보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더 연장하고 싶다면 건강해야 한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게 아니다. 노력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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