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여기 어디가 유럽인가
유럽에 비해서는 가벼운 마음과 지갑으로도 떠날 수 있는 홍콩. 이 홍콩에 작은 유럽이 살아 숨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흥킁’거리며 콧방귀를 끼다가 스탠리 마켓을 걸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스탠리라 부르는 홍콩의 첵추는 작고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었으나, 홍콩으로 이주가 시작되고 군사시설들이 들어서면서, 맑고 상쾌방쾌한 풍광에 홀딱 반한 외국인들이
하나 둘 슬슬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탠리의 다른 이름은 첵추이다. 우유에 말아먹는 초코맛 그것이 아니다.
홍콩의 중심가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는데, 2층 버스의 2층 맨 앞자리에 앉아,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선의 절벽 코스를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듯한 스릴이 넘친다.
갑자기 산비둘기가 앞유리에 와서 부딪히는가 하면, 절벽으로 버스가 넘어갈 듯한 아찔함에 나지막한 비명을 삼키며, 이쪽저쪽 관성에 휘둘린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저 멀리 스탠리의 바다와 맞닿은 건물들과 해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리펄스베이를 지나, 슬슬 스탠리 마켓과 가까워짐을 느끼며, 한껏 코를 내밀어 휴양지의 바다내음을 맡아본다. 지금까지의 번잡하고 혼잡스러우며 시끌와글벅적거리는 홍콩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아직 보고 냄새 맡는것만으로는 유럽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익스트림 다이내믹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건너편에 보이는 패시픽커피에서의 진한 커피로, 코와 목을 향긋하고 척척하게 적시며, 브런치 중인 외국인 가족을 만난다.
소소히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 사이에, 베이글과 따듯한 티로 조용히 식사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 벌써?’ 홍콩에서 유럽을 마주한 듯한, 커피전문점부터 이국적인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이곳, 스탠리 마켓.
조식을 먹고 나왔지만, 쟤 때문에 베이글을 또 먹었어.
복작복작 와글바글한 입구의 상점들과 나름 익숙한 브랜드 간판들을 쉬이 지나며, 관광객의 시선이 그들에겐 익숙한 듯 눈웃음을 건네오고, 길에 철푸덕 앉아 무언가를 마시는 아저씨도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곳 스탠리 마켓은, 많은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기념품들은 값이 비싸지 않아서 부담이 없고, 간혹 예쁜 중국스러운 수공예품들도 눈에 띄지만 상점가에 들어왔는데도, 어째 유럽 사람 비슷한 외국인조차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가만 보니, 도심에서 파는 기념품들보다 살짝 비싸다.
복잡하고 좁은 마켓을 지나며, 지금까지의 홍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상을 받는다.
비슷비슷한 기념품들과 마그넷, 유명 브랜드를 모방한 의류, 악세서리 등이 눈에 띄는데, 딱히 스탠리 마켓에서만 만날 수 있는 물건들은 아닌 듯 하다. 도심에도 많다.
상점가를 지나면 눈앞에 바다가 나타나는데, 코를 킁킁거리면서 바다 내음을 쓸어담고, 연인들이 가득한 포인트에 올라 사진도 찰칵찰칵 쓸어 담는다.
흐린 날씨가 살짝 아쉬운, 걷기 좋은 홍콩의 가을 날씨에, 마냥 바람을 쐬며 바다를 바라보다, 자꾸만 앞을 가리는 연인들을 향해 못내 쓴소리를 하려다 속으로 삼킨다.
“Hey, I can.. cannot.... see..” 때려치자... 네벌마인드.
바다가 보이는 노천식당의 높은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생맥주를 곁들인 유럽스러운 식사로, 이곳에 슬쩍 깃들은 유럽을 한입 먹어본다. 맛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고 한입거리로는 양이 상당해서, 식사 이후로는 걷는 족족 헉헉대며 숨이 턱까지 차오름을 느낀다.
아무래도 신나서 마신, 맥주 때문인 것 같다..
스탠리의 광장과 옆 놀이터는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주변의 그늘에서는 흐뭇한 표정을 한 부모들과 노인들이 시끄럽게들 떠들면서 수다를 즐기는 모습이, 유럽은 커녕 영락없는 중국이다.
예쁘게 조성된 광장 옆 상가는 길가의 상점들보다는 잘 정비되어 고급스러운 상품들이 있었고, 창 밖으로 광장과 바다를 바라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바다로 멀찌감치 나가있는 블레이크 선착장, 홍콩 속 유럽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상당히 고풍스러운 이곳에 앉아, 평온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 곧 생각에 잠긴다.
잔잔한 바다는 언제나 정신을 맑게 하며, 바른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바다가 세계 어디서나 좋다.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블레이크 선착장도, 아무렇게나 떠 있는 배들도, 그림같은 아름다움은 아니더라도 잔잔하며 소소하게 예쁜 풍경을 만들어낸다.
스탠리 마켓이 홍콩에 있는 유럽이라는 말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입구의 중국스러운 상점들 때문일까, 길 가운데서 털이 숭숭 난 배를 까고 있는 아저씨 때문일까, 어디서나 갑작스레 크게 귀를 때리는 중국어 때문일까.
유럽과 연관을 지어보겠다면, 홍콩에서 유럽같은 곳을 굳이 찾아봤다고 할까, 분위기를 내는 것은 바다를 바라보는 노천 식당에 앉아있는 외국인들 외에, ‘넓은 광장 정도..’라 하겠다. 마켓에서 볼 수 있는 기념품들은 지금까지 여행중에 계속 봐왔던 것들이고, 관광지에서의 유명 브랜드의 모방 상품들은 눈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그렇다 해도 크게 실망할 것도, 나쁠 것도 없다. 유럽을 찾아온게 아니라, 홍콩 속의 유럽 분위기를 찾은 것일 뿐이니까.
스탠리 마켓은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한 홍콩의 도심관광에서, 여유롭게 쉬어가는 포인트로 안성맞춤이다.
중국스러우면 어떤가,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이곳을, 굳이 실망했다고 미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동안 유럽분위기를 담당했을, 오늘 이곳을 찾지 않은 외국인들과, 오늘 유독 많았던 중국인들, 그리고 흐리고 약간 서늘한 날씨 탓도 있었을 터.
이곳 스탠리에는 분명 유럽이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나다가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무엇보다, 시간을 가지고 바라보기에 탁 트인 바다는 언제나 시원하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