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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Jun 14. 2020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 영화 속 그녀들은 폭탄을 던진다

[영화 리뷰]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20)’

이 글은 시사회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이 영화 제목이랑 포스터만 얼핏 보고 액션 영화인 줄 알았어.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친구의 첫마디다. 글씨체는 굵은 고딕이고 포스터를 가득 채운 세 여성의 표정은 액션 영화처럼 비장하다. 그리고 진짜 무기 ‘폭탄’은 등장하지 않지만, ‘폭탄선언’이라는 부제도 범상치 않다. 여러모로 강렬한 첫인상이다. 그렇다면 포스터가 아닌 영화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강렬할까?


친구는 왼쪽 포스터를 봤어요!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는 미국 대선을 앞둔 시기, 폭스 뉴스 앵커였던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이 폭스 뉴스 회장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소한 실화를 다룬 영화다. 거기에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와 카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이 연관되며 인물들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보여준다. 영화의 원제이자 ‘밤쉘(BOMBSHELL)은 생소한 단어이지만, 뜻이 1) 폭탄선언, 2)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 3) 매력적인 금발 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영화 내용을 복합적으로 암시한다는 확신이 생긴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폭스 뉴스에 대해 알고 보면 더 흥미롭다. 폭스뉴스는 루퍼트 머독 일가가 소유한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언론사이다. 미국 공화당 컨설턴트로 활동한 로저 에일스가 1996년부터 폭스 뉴스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소송이 제기된 2016년까지 약 20년 동안 그는 수장으로 뉴스룸을 이끌었다. 실화를 다루지만, 굵직한 맥락이 아닌 인물들의 대사 등은 영화적 허구로 만들어졌다.


▼빌리 아일리시 ‘bad guy’ + 영화 예고편▼

https://youtu.be/ihaUu92 RJD0


하나의 사건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먼저 그레첸 칼슨은 로저 에일스의 성희롱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다. 그녀의 변호사는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일에 대해 걱정과 염려를 표하지만, 그녀는 꼼꼼히 그의 말을 기록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준비한다. 그리고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Someone has to speak. 누군가는 말해야 해요.”


다음으로 메긴 켈리는 그레첸 칼슨의 소식을 듣고 침묵한다. 그녀에게도 밝혀야 할 진실이 존재하지만, 망설이며 갈등한다. 사건 이전에 트럼프와 TV토론 설전으로 인해 비난을 듣고 파파라치에 괴롭힘을 당하는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던 상태였고, 그녀 자신의 선택이 함께 일하는 팀원이나 가족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가꾼 커리어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도덕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리는데 주저하게 만든다.


케일라 포스피실은 로저의 압박에 굴복한 인물이다. 폭스 뉴스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회사 내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졌다. 로저 에일스의 비서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고 그의 사무실에서 단독 면담할 기회를 얻는다.


주인공들과 관련해서 주목할 또 하나의 부분은 그들 사이의 권력을 그리는 방식이 상당히 모순적이라는 점이다. 나이가 어리고 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케일라 포스피실은 그레천 칼슨과 메긴 켈리를 기득권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들은 능력을 인정받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감수한다.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그녀들이 과연 진정한 기득권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주인공들의 레드카펫 영상▼

https://youtu.be/rt0tlbIVOyc


모든 사건은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직장에서 벌어져서 유독 치열하게 다가온다. 로저 에일스의 성희롱 스캔들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폭스뉴스의 위기로 대두되고 직원들은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들은 전부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짧은 치마 입는 걸 강요받지 않는다.’, ‘바지를 자유롭게 입는다.’는 거짓말로 전화 인터뷰를 한다. 심지어 한 직원은 ‘Team loser’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로저 에일스를 지지하길 요구한다. 엎치락뒤치락 반전되며 마침내 결말에 이르렀을 때, 영화는 돈과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의 단면을 예리하고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내용의 긴장감과 강렬함은 영화적 장치를 통해 증폭된다. 앵커라는 직업적 특성에 걸맞게 똑 부러진 목소리로 빠르게 오가는 대사는 여름철 태양도 얼려버릴 만큼 시원하다. 화면의 움직임은 뉴스의 촬영기법과 흡사한 느낌으로 사무실 분위기를 한 번에 전달하거나, 정지된 화면에서 줌인을 활용해 인물의 표정을 상세히 담으려 노력한다. 심지어는 주인공들이 뉴스 리포트를 하 듯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관객에게 직접 대사를 던진다.


영화 속 폭스뉴스의 직장생활은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다. 거대한 권력에 짓눌리고 갖은 모략과 술수를 견뎌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가 전우애처럼 따뜻하게 감싸주기도 한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지만, 한편으로 수많은 선택 앞에 머뭇거린다. 누가 승리할지 장담할 수 없는 그곳에서 매력적인 금발머리 그녀들은 폭탄을 던진다.



+) 오랜만에 영화관에 다녀와서 정말 정말 즐거웠습니다! 체온 검사도 하고, 마스크도 착용한 채 입장했습니다. 영화 이름이 적힌 손소독제도 주셨어요.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2020년 7월 개봉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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