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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Feb 25. 2022

첫 퇴사를 고민하는 신입사원의 40가지 질문

[에세이] 입사 1년 만에 퇴사를 고민했던 나의 이야기

일요일 밤이면 우울했다.


'회사 가기 싫다...'


불 꺼진 방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는 날도 있었다. 그런 시간이 점점 많아지더니 매일 밤으로 늘어났다.


1. 이대로 회사에 다녀도 괜찮은 걸까?

2. 그만 뒤야 하는 거 아닐까?


회사에 입사한 지 10개월,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퇴사를 생각하는 일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선택, 게다가 가던 길을 이탈하는 선택 앞에서 덜컥 불안했고 주변에서 보이고 들리는 이야기는 오히려 혼란이었다.



3. 한 회사에 2년은 다녀야 하지 않아?

4. 그냥 못 버티고 도망가는 거 아니야?

5. 어떻게 하면 이직을 잘할 수 있을까?

6. 인터넷이나 커뮤니티에 떠도는 글과 유명인들의 조언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아무리 답답해한들 누군가 대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결국 머릿속을 맴도는 고민과 걱정을 접어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나만의 답을 찾기로 했다.



Chapter 1. 퇴사 YES or NO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않으려면 질문은 단순해야 했다. 스무고개를 하듯이 '예', '아니요'로 답할 수 있는 질문 10가지를 준비했다.


질문의 소재는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주변에서 들었던 단어에서 찾았다. 신입사원에겐 직급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회사생활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털어놓으니까.


7. 현재 연봉에 만족하는가?

8. 워라벨이 지켜지는 회사인가?

9. 업무 R&R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잘 지켜지는가?

10. 경영진은 회사를 이끌 자질이 있는가?

11. 회사의 직원들이 회사에 자긍심이 있는가?

12.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가?

13. 회사가 수익을 내고 있는가?

14. 업계에서 회사 평판은 좋은가?

15. 배울 점 많은 동료들과 일하는가?

16. 회사의 평가 방식은 구체적이며 보상 체계는 적절한가?



다음은 회사에 다니는 현재 내 상태에 대한 질문 10가지를 했다.


17. 회사에 있으면 밥 생각이 사라지고 소화가 안 되는가?

18. 회사에 있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숨 쉬기가 불편한가?

19. 회사에 있으면 긴장한 상태이거나 불안한가?

24. 회사에서 어두운 표정을 자주 짓는가?

20. 팀원들과의 관계는 원만한가?

21. 회사에 다니면서 성장하고 있는가?

22. 회사를 다니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는가?

23. 회사의 업무가 인생의 목표에 관련 있는가?

25. 회사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 자기 계발이 필요한가?

26. 회사에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20가지 질문을 마치고 얻은 답은 명쾌했다. 회사에 가기 싫었던 건 보고만을 위한 전략과 휴지통으로 가게 될 무의미한 업무 때문이었다. 원래 직무와 다른 일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회사 내부의 만연한 무기력에 물들었다. 이대로 허송세월을 보내기엔 젊은 나이가 너무 아까워서 지금의 회사를 떠나기 위해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chapter 2. 이곳을 도망쳐야 해


1) 이력서 업데이트 (포지션 제안)


일단 취업사이트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잡코리아의 포지션 제안도 처음으로 받았는데 신세계였다.


27. 이런 회사도 있다고? 그동안 너무 작은 세상만 바라본 건 아닐까?


내가 다니는 회사 역시 수많은 회사 중 고작 하나에 불과하니 작은 세상이 바뀌는 게 두려워 다른 곳에 가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포트폴리오 준비


앞으로 더 깊이 있게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그동안 해왔던 활동을 정리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는 처음이라서 장 먼저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28. 다른 사람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만들지?


다른 사람들의 자료와 준비 과정을 참고한 후에도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어려웠다. 직장인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이 강점인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아 막막한 시간이었다.


29. 나를 한 단어로 설명하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30. 나의 직무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차별화 요소, 장점은 뭘까?

31. 자기소개가 특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32. 그동안 했던 활동을 어떤 순서(구성)담아내야 효과적일까?

33.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어떻게 시각화하지?



입사하기 전엔 대학생의 시선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면 이젠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고민하고 애써도 혼자서는 완벽할 수 없으니 직장 생활 선배님들께 물어보며 부족한 부분을 수정했다.


34. 직장생활 선배님들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분명 더 많은 일을 했을 텐데. 물론 그걸 담아내는 게 제한된 공간에서 어렵지만, 더 그게 잘 드러났으면 좋겠어서."


다양한 조언을 해 주셨는데, 특히 직장생활 선배님들은 입을 모아 스스로를 향한 자신감을 강조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회사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음을 더 당당하게 뽐내라는 답을 얻었다.' 할 수 있다'는 응원은 덤이었다.


3)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회사 지원하기


신중하게 채용공고를 확인하던 중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회사에 하고 싶은 직무로 자리가 생겼다. 빠듯한 기간 내에 시도했지만, 결과는 불합격.


35. 왜 떨어졌을까?


이런 식으로 천천히 준비해서는 금방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듯한데,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chapter 3. 퇴사의 문턱 앞에서


시간을 약간 뒤로 돌리자면,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전에 새로운 본부장님이 오셨다. 벌써 본부장님이 3번째 바뀌셨기 때문에 또 새로운 사람이 왔거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이번에는 얼마나 버티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새로 오신 본부장님은 지금까지 회사에서 본 누구보다 똑똑했고 행동과 태도에서 직원들을 향한 배려가 느껴졌다. 첫인사 겸 팀 면담이 있던 날도 직무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추천해 주셨다.



'START WITH ME 나는 왜 이일을 하는가?'는 조회수 3,000만 회가 넘는 테드 강의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사이먼 사이넥이 쓴 책으로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골든 서클을 설명한다. 골든 서클의 핵심은 기업과 직원들이 why에 집중해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책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었다.


'회사의 직원 대부분은 자신의 직장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우리 회사와 비슷한 사례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는 새로운 임원이 들어와 회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다는 결말로 끝난다. 책을 읽으며 본부장님의 가치관을 알게 되었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36. 그래서 난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숙제를 던져 주신 본부장님은 회의와 업무로 너무 바쁘셔서 한동안 제대로 이야기 나눌 기회도 없었다. 그 사이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지났다. 회사 생활이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딱 1년만 버티자고 다짐했는데 마지막 목표마저 사라졌다. 이젠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고 미련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이미 회사의 모든 게 다른 세상 같았다.



팀장님께서 부득이 한 사정으로 퇴사하신 후, 본부장님과의 두 번째 팀 면담이 있었다. 앞으로 달라질 회사의 모습을 열심히 알려 주시고 우리 팀에게 무엇이든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다. 이직 준비 중이라고 답할 수 없어서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본부장님은 어떤 말이라도 상관없다고 여러 번 물으셨다.


다음 달에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서 나가려고 했는데 본부장님 생각을 들으니
저도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밤새  고민했다. 회사의 문제점을 10가지로 정리하고 나서 내가 처음 입사하려 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37. 처음 회사에 입사한 이유가 있는가?

38. 회사에 입사한 이유와 어울리는 회사인가?

39. 어울릴 회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가?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본부장님께서 집무실로 부르셔서 개인 면담을 했다. 본부장님께서 어제 했던 말의 이유를 질문하셨다.


이곳의 무기력이 저까지 무기력하게 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잠시 이어지던 침묵을 깨고 본부장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기력이 제이드 인 엑스를 갉아먹는 기분이 드는구나

당신은 어떤 거 같냐고 물으시더니 비슷한 고민을 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늘 엘리트 코스만 걸었을 것 같은 본부장님의 예상치 못한 과거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원래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기로 유명한데, 다들 성인이잖아. 판단을 할 수 있고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니까. 그저 각자 옳은 선택을 했길 바라며 응원할 수밖에 없지. 근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좀 다른 것 같아. 그게 올바른 결정인지 한번 더 고민할 시간을 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게 윗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앞으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거."


그 말을 뒷받침하듯 이어진 위로와 조언 끝에 설득을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내셨다. 만약 회사에 남게 된다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본부장님을 한 번만 믿고 따라오는 거면 좋겠다고 하셨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점은 충분히 알고 있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줄 테니 같이 노력해달라고 덧붙이셨다.


질문은 단순해졌다.


 40. 본부장님을 믿을 수 있는가?


본부장님이 건넨 위로에 다른 의도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직 어린 내 눈엔 진심처럼 들려서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회사 막내의 고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처음이라서, 심지어 회사에 다닐 이유가 되고 싶다는 어른은 처음이라서 조금 신기하고 솔직히 감사했다. 아직 회사는 불안정하고 해결해야 할 일도 많지만, 본부장님께서 지닌 강한 신념과 열정이라면 어쩌면 지금의 상황이 달라질 거란 작은 기대가 생겼다.

이게 벌써 한 달 전 이야기.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본부장님은 열정을 다해 일하시느라 바쁘시고 회사는 문제 투성이다. 마음은 매일 들쑥날쑥하다. 어떤 날은 출근하기 싫고 어떤 날은 무던하게 넘어가기도 한다. 이런 모습과 생각이 괜찮은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지만, 당분간 질문은 잠시 멈춤.


아무튼 내일은 달라질 거라 믿으며 오늘도 출근을 한다.



*이 글은 저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볼 수 있어요! 영상에서는 'chapter1. 퇴사 YES or NO'의 답변과 직장선배님들의 조언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작가의 말


첫 회사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서러움에 울면서 잠드는 날도 있었고 더는 못 다닐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그래도 1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늘 제 편이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족과 저보다 더 화내며 대신 욕을 해 준 친구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받았던 위로를 다시 건네는 마음으로 이번 글을 적고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40가지 질문이 제가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자 첫 퇴사 앞에서 고민하는 분들께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미처 담지 못한 질문과 고민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X 같은 날에도 질문은 계속됩니다.

세상에 평범한 X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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