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인 걸 내가 잘 안다고 말하기까지의 여정

영화 '대니쉬 걸'

by Jade in x

영화 ‘대니쉬 걸’은 세계 최초 트렌스젠더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영화를 세상의 모든 소수자들을 위한 영화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영화의 주제를 단순히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로만 제한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 영화의 주제를 조금 더 확장시키고자 한다. 어차피 우리 개개인은 모두 단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눈여겨본다면 개개인 모두는 자신만의 소수자일 뿐이다. 그래서 우선 ‘소수자’라는 단어를 사회나 성에서의 소수자로 규정짓지 않고자 한다.


이렇게 이 영화에서 소수자의 이야기라는 제한을 벗겨냈을 때는 바로 ‘나다운 나’를 알아가는 주인공의 성장과 그가 겪는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가 남는다. 그리고 주인공 ‘아이나’가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 최고의 풍경화가였던 아이나는 자신의 고향을 주로 화폭에 담는다. 대부분 채도가 낮고 자칫 어두운 색채로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늘 같은 대상에 늘 같은 형식의 그림. 그가 늘 입고 다니는 정장처럼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전형적인 남성이라는 틀 안에서만 바라봤다. 남자로 태어났으니까. 그것이 ‘나’인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초상화가인 아내 게르다의 부탁으로 그녀의 모델이 된다. 부드러운 스타킹과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드레스까지 몸에 걸치며 고혹적인 포즈를 취하자 그는 남자라는 겉모습에 가뒀던 자신의 내면, 여자로서의 정체성, ‘나다운 나’와 마주한다.


갑작스럽게 깨달은 것이 아니다. 발레리나 친구의 춤사위와, 아내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아이나는 ‘훔쳐’ 바라본다. 그것은 어떠한 성욕도 담기지 않은, 여성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의 시선이다. 다만 그는 몰랐을 뿐이다. 자기 자신이 여성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성의 몸에 난 곡선과 남자들이 입는 전형적인 정장과는 달리 자유롭고 화려한 여자들의 드레스를 보면 왜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이 원하는 스스로를 그는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이나가 아닌 릴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억압됐던 정체성의 해방을 갈망했다. 나 스스로를 ‘나다운 나’로 있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견딜 수 없는 수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발을 벗고 쓰길 반복하면서 여태까지의 ‘나’이자 남성으로서의 자신과 진정한 ‘나’이자 여성으로서의 자신 사이를 갈팡질팡하던 아이나, 아니, 릴리는 두 번의 수술 끝에 비로소 말한다. “I’m entirely myself.(지금 난 나 자신으로 충만해.)” 가발을 써야만 자신을 여성으로 받아들였던 아이나에서 가발을 벗고 나서도 스스로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릴리로 마침내 완벽해진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아내와 친구를 포함한 지인들로 하여금 진짜 ‘릴리’를 받아들이게 설득하고,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고서야 자신을 완성시킨다. 릴리는 지독한 성장통을 겪은 뒤에야 어제의 아이나를 떠나보내고 릴리로서 성장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이나와 릴리의 성장영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최초의 트렌스젠더의 고독한 싸움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다운 나’를 찾고 있는, 진정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릴리의 미소다.


내가 원하는 것, 추구하는 것을 선택하고, 원치 않은 것, 불편한 것을 거절하는 건 내 권리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고 거절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주지 않아.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야. 그러니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러나 그것이, 내 맘대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정체성에 대한 혼란 가운데 ‘나다운 나’를 따른다는 것이야말로 여러 어려움이 있다. 내 인생은 내 것이지만,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하나만 생각하기에는 내 선택이 주변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어리숙한 어제의 ‘나’ 때문에 고민하고, 오늘보다 나을 내일의 ‘나’를 향해 달려간다. 모두에게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설득한다.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자기 주장을 두려워하고 있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나’야. 그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나’를 선택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