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이야기에 몹시 약한 관람객입니다

영화 '걷기왕'

by Jade in x

성장, 유독 성장에 약하다.


등장인물이 성장하면,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상관없이 높은 평점을 준다. 등장인물이 청춘이라 불리는 또래일 때 더 심해진다.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숨겨둔 나를 찾고 공감하다가 함께 눈물을 흘린다. 유독 성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은 고칠 약도 없다.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걷기왕’은 위험한 영화라는 걸. 심한 멀미 때문에 어떤 교통수단도 탈 수 없는 고등학생 ‘만복’은 2시간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열정 과잉 담임선생님은 ‘만복’에게 경보를 배우도록 권유한다. 육상부에 들어간 ‘만복’은 걷기왕이 될 수 있을까?


간략한 줄거리 소개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여기까지 하겠다.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이 ‘무언가’ 배우며 성장하는 이야기. 위험하다. 위험해. ‘걷기왕’을 선택한 순간, 이미 난 ‘만복’이 되었다.


순식간에 고등학생 때로 돌아갔다. 1년에 한 번은 꼭 하는 진로 상담 시간, 예체능계 학생은 자고 있어도 깨우지 않는 선생님, 멍 때리기 좋은 방학 보충 시간. 어른들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볼 때 이런 공감을 하는 걸까 생각하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에 급식실로 뛰어가던 친구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성장에 공감이 더해지니 ‘걷기왕’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영화는 캐릭터를 직접적이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만복’이 키우는 소의 나레이션을 통해 그녀의 멀미가 심하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또 다른 주요 인물 ‘수지’에 대한 정보도 육상인 ‘정돈’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설명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나타나는 설명충처럼, 심지어는 주인공 ‘만복’의 세세한 기분까지 알려준다. 덕분에 빠르게 인물을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주인공 표정과 대사를 통해 감정을 깊게 이해할 기회를 빼앗는다. 한 마디로 TMI다(Too much information의 줄임말로 궁금하지 않은 정보까지 알게 되었을 때 사용한다.) 친절한 가게 점원에게 고마움과 부담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쉬운 부분과 별개로 역시 ‘걷기왕’은 취향 저격하는 영화였다. 우리가 사는 사회엔 악당과 히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행인 1, 동네 주민 3 등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보통의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배역 대신 이름으로 불리는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걷기왕’은 특별하지 않은 우리에게 건넨 따뜻한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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