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 타인. 세상과 나의 연결점 인식
하얀 도화지 속의 공간 위에는 점과 선과 그걸로 이뤄진 면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 인생이라는 시공간 위에는 나라는 점과 타인이라는 선, 그리고 그들로 이뤄진 세상으로 한 인간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 모든 것들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뒤죽박죽으로 정렬되지 않은 상태로 배치되어 있기에 무의식을 탐험하거나 무의식 속에 프로그래밍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을 심어놓기 좋은 시간이다.
실제로 내가 중학교 때는 '아침독서단'을 하며 사춘기를 겪으며 생기는 모든 일들 속에서의 피로도를 아침 시간 20-30분 동안 정리해 보며 버텨낼 수 있었다. 또한, 최근 겪은 20대 초반의 사춘기에는 이 시간에 뭔갈 할 수 있다는 행동력에 대한 자신감을 쌓아가기 위해 눈 뜨자마자 아무런 생각 없이 바로 밖에 나가는 행위를 목표로 삼았고, 그를 위해 물을 마시러 침대에서 일어나는 행위부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을 힘주어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행동력 자체가 낮아져 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었기에 완벽하고 싶어 누워있는 모든 시간들을 지나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힘을 주지 않고서도, 때론 책을 한 페이지만 보게 되더라도, 때론 씻지 않고 나가더라도, 때론 나가서 5분 만에 돌아오더라도, 때론 밥을 대충 먹을지라도 그냥 그렇게 하는 시간을 쌓아나갔다. 하루를 걸러도 다시 돌아오면 됐다. 돌아오면 시동을 걸기까지 오래 걸렸기에 대충 하더라도 그냥 뭔갈 하자라며 힘을 빼고 나가는 게 익숙해지니 시동을 걸려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나가는 게 두렵지 않아 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점점 나의 상처를 바라보며 은둔과 고립에 빠져있는 시간대가 과거로 바뀌어가는 게 보여서 신기했다.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던 시간대에서 벗어나 있는 지금 시간대의 내가 나는 아직도 신기하다.
점은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으며 기하학에서는 도형의 위치를 지정하는 기본 단위로서 모든 도형의 시작이자 기초가 된다. 이처럼 나라는 존재는 자아라는 크기가 없으며 여러 세계를 이루는 곳에 닿기 위한 기본 단위로서의 위치로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아라는 크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 인생이라는 변화무쌍한 다양한 공간 안에서 틀을 가졌다고 착각하여 행동할 때 불행에 빠진다. 난 이런 사람인데 그렇지 않은 순간이 이해가 되지 않아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의 흐름 앞에서 딴딴한 돌로 뭉쳐져 가라앉아 버리는 것 같다. 흐르면서 닿게 되는 물결의 파동을 타고 있는 자신의 깊이가 더욱 거세지고 강해지며 결국 상처를 품으며 떠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렇지만 자아의 고정이 있었기에 거기서 나와 서핑할 수도 있다는 자유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자아의 고정된 틀을 원망하고 존재가 지워질 때까지 죄책감을 가지기보단 자아의 고정에서 나오기 위해 안전하고 발을 디뎌보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로 몸을 던져보면서 회복이 되어갔다.
틀 안에 갇혀있는 것에 대한 안정감은 한 세계로부터 나의 세계를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는 위치에 놓여 있을 때 생긴다. 타인의 세계에서 나를 지키고 어울리는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조직에서까지 나를 지키는 단계에 있을 때에 그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그런 안정감을 주는 틀들을 표지판처럼 삼고 걸어 나간다. 틀이 왜 생겼는지, 현장과 이론의 효율을 위한 차이는 무엇인지, 이론의 이유들을 분석하고 그걸 바탕으로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안으로 현장을 돌아가게 할 수는 없는 건지 등 이 시간대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고민들에 빠져서 화내지 말고 적어뒀다가 그 화를 원동력으로 그걸 바꿀 수 있는 위치에서 바꾸면서 자아실현을 하길 바란다. 이 시간대의 과제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위치에 놓여 있을 때에는 틀에 박힌 사고에 안정감과 익숙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나는 게 모험이 아니라 당연한 시기는 한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높은 위치에 놓여 있을 때 가능한 것이며 이를 위해 낮은 단계에서 머물러 있을 때 고통스럽다고 회사를 뛰쳐나오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내 세계를 이루는 것에 대한 불안정을 오롯이 느끼면서 해야 하기에 자아에 대한 고민은 집에 돌아와서 새로운 세계에 몸을 던지는 것부터 (취미, 집안일, 운동 등)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체력과 에너지를 남게 하는 여유가 생기는 날이 오게 되면 차근차근해나가면 된다. 내 전부를 쏟는 노력은 한 세계로부터 나의 세계를 지켜내는 단계에 있을 때에만 하면 되는 것임을 잊지 않으면 된다. 이 시기의 시련은 자아 없는 상태의 지속이라 거기서 벗어나 나 자신을 챙기는 시간(밥 먹기, 씻기, 잘 자기, 일터에서의 생각 끄는 비움의 시간 마련하기)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이때 배운 나의 세계를 지키는 힘은 추후에도 도움이 되며 한 세계에 발을 딛고 서있을 수 있는 기본 단위가 되기에 중요하다.
선은 점의 연속적인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자취이며 면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다. 굵기나 방향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길이를 가진다. 이는 한 세계에 발을 들이며 나의 세계를 지키는 것에 대한 익숙함이 찾아오면서 타인에게도 닿을 수 있는 세계가 찾아왔을 때 인지할 수 있다. 타인은 한 세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는 속성을 지녔다. 일을 잘하든, 상황 판단력이 빨라서 사람을 대하는 게 능숙하든지 말이다. 그 타인들의 세계에 닿는 나라는 점은 그와 거리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와 나를 연결 지으며 생기는 길이를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것(오버타임 근무, 정서적 / 물질적 도움 등)을 주기만 하는 것에 대한 불안도와 스트레스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것들을 주면서 그려낸 길이가 길어지면서 내 세계가 타인의 세계에 닿는 것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진다면 조직에도 닿을 수 있게 되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내가 길이를 길게 그릴수록 받는 이익이 타인이 아니라 조직으로부터 성과로서 나타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될 테니 그리는 게 허무하지 않아 질 것이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게 내가 가진 것보다 많이 주는 것일 때가 온다면 금방 방전될 것이다. 그러니 집에 와서는 자신의 에너지, 체력, 몸, 마음 모두를 체크해 가면서 채워주는 위로와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단계에서 불면증이 찾아온다면 점일 때 했던 나의 세계를 지키는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주는 것과 소모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니 그를 끄는 방법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다. 다음 챕터는 틀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욕구가 실현되는 단계로 닿을 수 있는 보상이 올 텐데 여기서 포기하면 아깝지 않나? 그런 여유가 없다면 내가 이 세계에 발을 닿는 것을 못할 때까지 참는 것보다 선을 긋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구조 요청을 하지 않는다면 가라앉아있는걸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소모하게 만든 나와는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을 증오하면 에너지를 그들에게 또 갖다 바치는 셈이다. 그들이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실수를 수습하기를 다 내 것으로 끌어안고 있느라 터지지 말고 여유 있는 선에서 베풀면서 나에게 돌아올 것을 아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과제인 위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선으로서 완성되어 간다.
면은 선이 둘러싸여 만들어진 평면적 영역이며 입체적 형태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기도 하다. 이 단계에서는 팀을 이뤄 조직이 되어있을 것이며 그 조직을 다룰 수 있는 위치일 것이다. 이 단계에서 점으로서, 선으로서 지나쳐오면서 깨달았던 것들로 낮은 단계에게 틀을 제공하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창작의 영역으로 넘어가 인간적 예술의 실현을 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면으로서 완성됐다면 말이다. 자신은 틀을 벗어나는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과제에 놓이게 된다. 틀들을 응용하여 트렌드를 주도하는 예술적, 영적 감각까지 모두 활용하여 삶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경지에 올라있을 수 있는 자아실현의 최고 수준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위치기에 이 과제를 훌륭히 완수한다면 돈도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든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무엇으로 돈을 벌고 싶냐가 확실할수록, 면의 단계에서 무엇을 하며 자아실현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알고 있을수록 각각의 단계에서 평생을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렇게 삶의 이유를 회복하고, 삶에 대한 사랑이 회복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모든 과정에서 얻는 상처들을 지나쳐 올 수 있는 것이며 준비되지 않더라도 뛰어들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삶에게 사랑을 바치고 싶다. 이걸 알았기에 상처를 품은 채로 지나쳐왔던 은둔과 고립의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연결을 다 끊어봤기에 이 연결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과정 속에 놓인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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