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악해도 때론 잔인해도 때론 모순돼도 괜찮아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한동안 나는 심신 미약 상태였다. 자그마한 차 소리에 너무 놀라고 도시생활의 작은 불편함 하나하나에도 하루의 기분이 좌우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공도에서 대범하게 로드바이크까지도 타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이 시절 난 그 고통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그것을 피하는 것을 방법을 고려했다. 농촌에서 마늘농사, 조경사, 외딴섬에서 발전소 관리인까지. 그런데 이 문제를 깊게 따지고 보니 싸우는 대신 회피를 하는 내 마음이 보였다. 언제나 싸움을 선택했던 내가 회피를 선택하고 있었다니? 더 생각해보니 싸울 때 재밌었고 회피할 땐 언제나 망했다는 것도 떠올랐다. 회피란 건 자신마저도 속이는 건가 보다.
그럼에도 회피란 걸 눈치챈 건 도시라는 이 문명의 큰 줄기 속에서 내 정체성을 키워나가고 싶은 야망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변하고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생명체는 화석이다. 화석이 체질에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건 너무나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당장에 재앙 같은 고통을 피하고자 화석을 선택한다면 나는 더 큰 고통을 당할 운명이었다.
내가 야심을 포기할 수 없다면 왜 심신미약이 되었는지 문제를 진단해야 했다. 길고 긴 추론 끝에 내린 결론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경직적이고 결정론적인 관점과 주관적 개입이 없는 냉랭한 대응책'이었다. 그 관점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에 누적된 것이었다. 난 중학교 때부터 자연주의의 오류에 깊게 천착하고 있었고 홉스의 말을 섬기며 원시 공산주의야 말로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와는 반대로 대학생 시절엔 기업의 흥망성쇠, 기업가 정신이란 코드에 꼽혀있었고 경제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무한한 기업의 자유를 지지하게 되기도 했다. 제대로 그것을 이해했다면 큰 문제는 안됐을 테지만 난 세상을 설명하는 좌파와 우파의 논거 중에 가장 비참한 결론들만 추려낸 것만 나는 내 삶에 적용시키고자 했다. 좌파의 논거에 따라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고 사회의 힘에 기대야 하는 작은 분자이고 우파의 논거에 따라 나는 경쟁에 시달리다가 갈려나갈 작은 분자였다.
좌파와 우파 이해 두 가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삶과 사회가 자신들의 설계한 이해에서 동작하기를 빌고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나는 수 백 년간 잘난 사람들이 증거해온 프레임 속에서 내가 살아갈 길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통계가 아님을 이 세상은 엄청나게 많은 다중 계층구조로 해석 가능함을. 그 계층 구조의 개수만큼 많은 아웃라이어들이 있음을 고려하지 못했고 통계적 근거에 집착했다. 인생은 한 번이고 주관적 경험인데, 반복되는 객관적 역사에만 천착했다. 그 이유가 비합리적이진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아주 별난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고 내가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회의 규칙성을 내가 이해한다면 세상에 대한 불안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평균보다 IQ도 높았다. 성격 Big5 기준 어떤 부분은 상위 1%, 20%의 전형성 띠기도 했다. 또한 불안은 컨트롤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거였다.
관점이 문제라는 결론에 따라 나는 그전에 해온 것처럼 내가 사용해온 관점들이 틀렸는지 '사실'인지 점검하기 시작했다. 객관적 사실에서는 틀린 점이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였다. 나는 실용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통계가 개인에게 별 의미 없음을 피터슨으로부터 배웠다. 또 결정론적 우주론이 인생을 재미없게 만든다는 확신을 내 경험을 통해 증명했기 때문에 과학 대신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안 갔다 ^_^) 그중 이 신학이 특히나 내게 힘이 되었다. 신학자들이 과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잃지 않기 위해 끝없이 예수를 재해석해온 역사가 내게 굉장한 충격이었고 바울은 현실 지배체계를 거부하고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예수가 자기 마음속에서 부활했다고 고백함으로써 새로운 진리 체계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또한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렇다. 실로 개인에게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사실로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은 재무나 과학에서만 그러면 된다. 개인의 삶은 그렇게 동작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주관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설루션'은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었다. 주관적 세상에서 객관적 세상을 이끌었던 중세 과학자의 혁명은 다시 나에게선 다시 반대로 진행되어야 했다.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받아들이고 평등하게 대하는, 객관성과 연관되어 있는 도덕성이야 말로 인간성의 핵심이라고 나는 믿었고 인간성을 포기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객관성을 포기한 신학을 반박하려고 애썼다. (이런 조류가 신학에도 있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인데 이들은 문자적으로 성경을 믿음으로서 객관성을 포기한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했다. 그리고 객관성에 대한 그들의 광기 때문에 창조과학이 탄생한다.)
완벽한 도덕성을 포기하고 때론 악하게 행동하고 때론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마다 다른 행동과 방식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이익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 당시의 나는 그게 싫었다. 나는 동화 속의 천사처럼 살고 싶었다. 관점을 검증하고 새로운 모델을 찾는 것보다 이전 나를 속박하고 있던 자아상에서 나를 때어 놓는 데에 가장 큰 시간이 걸렸다. 이유야 있었다. 그게 나를 존재를 증명하는 거였으니까. 나를 고집함으로써 하늘에서 살 수 있었다. 내가 그걸 포기한다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타천사가 되는 거였다.
나는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난 언제나 그동안 남자라는 이미지에 저항하며 살았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기로 했다. 밖에 나가지 않을 땐 폭력적인 야쿠자 사회를 묘사한 게임(용과 같이)을 통해서 힘의 논리와 남성 사회의 논리가 무엇인지 새로운 관점에서 시뮬레이션했고 남성의 역사에 대해 다룬 책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조각이 맞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스스로 바보 같다고 느끼면서도 삶의 모델을 바꾸기 위한 조치였다. 그게 습관이 되었을 때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내 인생을 시험대에 올렸다. 언제나 논리로 모순 없는 행동만을 하던 나는 없었다. 평생 안 하던 염색을 하고, 기초 화장품도 5가지나 사고 매번 마트에서 가장 싼 걸 사던 습성을 버리고 택배비를 주더라도 좋은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모두 이전엔 불필요한 군비경쟁이라 여겼던 활동들이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오기로 했고 군비경쟁은 진화에서 빼놓을 수 없었고 도시문화의 중추였다. 나아가 내가 좋아하진 않더라도 필요한 행동을 해야 했다. 나는 무자비한 결정론을 핑계로 멈추는 대신 내게 가능한 운명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결정론이 말하는 결론을 내가 직접 보기까지는 인생은 너무 길었다.
나는 나를 강하고 따뜻하고 또 야심이란 에너지를 키워줄 도구는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심지어 그것이 악하고 논리적이지 않다 해도 말이다. 동시에 도구에 천착해 중심을 잃지는 않는다. 그게 내 새로운 삶의 규칙이었다. 이때 보게 된 책『위대한 개츠비』는 그 규칙을 실행한 인간의 연대기였고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모든 도구를 사용했다. 자신을 신의 자식이라 믿었고 불법적인 사업을 선택했다. 그는 악한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 안의 예민하고 부드러운 마음, 순수한 동기는 잃지 않았다. 유연하게 사람들을 대하면서도 그의 가장 원초적 동기였던 사랑 앞에선 누구보다도 부끄러움이 많았다. 개츠비는 가장 부드러운 것을 위해 삶을 거친 실험대에 올린 것이다. (결국엔 비난당할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버림 당할걸 알면서도)
중세 신학에선 내적인 경험을 강조하기 표현하기 위해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찬란한 어둠"이 그 예인데 (지금은 오페라 이름으로도 쓰인다!) 부드러운 것을 위해 거친 것을 택한 것도 역설적인 삶이었다. 이런 삶의 역설을 아카데믹하게 말하면. 이런 표현은 목적과 수단, 앞과 뒤가 일치하고 개인의 논리를 세상의 논리와 일치시키는 것을 지향하는 칸트의 "정언명령"으로부터의 해방. 니체가 지겹게 말하던 진리의 해체였다.
개츠비는 자신의 열정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비논리적인 총알에 맞아 죽었다. 허나 그의 매일은 빛났고 그 빛남에 매료된 주인공 캐러웨이는 그를 추모하기로 결심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비논리적으로 살아도 좋다고 스스로를 내려놓았고 그 비논리로 인해 파괴될 수도 있는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늘에서 사는 전략의 엔딩은 뻔했고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이때 양자역학이 떠올랐다. 빛은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빛이 입자이자 파동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빛은 벽에 구속당하지 않는다. 내게 필요한 건 바로 양자의 이중성이었다. 필요에 따라 유연하더라도 직진하는 그 본질은 잃지 않았다 빛은 빛이다. 난 이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내 심장에 꼽혔다. 유연해도 괜찮았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고집만 부리면 된다.
그런 히스토리를 거쳐 난 양자 같은 삶을 선택하기로 결심했고 그것을 대표할 새로운 닉네임으로 @Hibike_Quantum을 지었다. 앞글자 Hibike는 쿄토 애니메이션 'hibike euphonium(울려라! 유포니엄)'의 이미지를 빌려온 것인데. 이야기의 주인공은 냉정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며 살던 중 야망에 미쳐 날뛰는 여고생 레이나를 만나 삶이 격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딱 나와 어울리는 이야기 아닌가? 거기다가 hibike는 '울려 퍼지다'라는 뜻을 가져 Quantum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앞서 구구절절 설명해온 Quantum은 바로 내가 지향하는 삶의 형태, 규칙, 원리다.
2022년 그렇게 오늘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나게 살고 있다. 요즘 같아선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음에도 이젠 글이 쓰고 싶은걸 참을 수 없어졌다. 망설임도 줄었다. 나를 표현할 소셜 미디어도 다시 쓰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친구들에게도 먼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을 30대가 넘어서 느끼게 될 줄이야. 오래 살고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