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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훈 Oct 18. 2022

혼합으로 완성된 민주주의-독재

서로 닮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해진 주권자의 역할을 해석해보기

 상식적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와 독재가 상극에 존재하며 섞일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선 민주주의와 독재가 어떻게 혼합되었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보편적 역사의 원리

 혼합에 대한 설명에 앞서 보편적으로 역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혼합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읽을 때 개혁의 목소리는 멈춘 적이 없다. 하지만 질서를 규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변화를 거부한다. 때문에 변화는 기존 질서를 갈아엎는 혁명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거부하고 혁명하고 다시 거부하고. 이것이 반복되는 게 역사인데 뻔하지만 다음과 같은 전형적 구조를 가진다. 


1) 혁명의 주체가 정체성을 확장(연대)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라는 서사를 구축한다. 가장 넓은 범위의 연대의 범위는 '국민'이다. 정치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민'이란 단어가 쉬지도 않고 호출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 혁명의 주체가 기존 리더를 몰아내고 혁명주체가 새로운 질서를 정당화하는 서사를 구축한다. 정부의 부서를 만들고 없애는 것이 이런 행위에 해당한다. 이때는 사회적의 정치적 이익의 총합은 양을 가리킨다. 때문에 구성원들은 기꺼이 동조한다.

3) 정치적 질서는 누군가는 끌어올리고 누군가는 끌어내린다. 이러한 시정 행위가 누구의 가치를 보호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주의'라는 이름으로 라벨링 된다. 이런 시정 행위는 필연적으로 불만을 촉발하고 구성원들은 언제나 만족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때문에 체제는 언제나 스스로 붕괴하는 엔트로피성을 가지게 된다.

4) 엔트로피가 쌓이며 부패함에 따라 종장엔 정치질서가 만들어내는 이익이 사라진다. 오히려 사회의 이익을 저해하기도 시작한다. 최초 혁명의 명분은 무효화된다. 그렇다고 혁명의 주체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며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다. 혁명의 주체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억압자가 된다. 억압자는 정치적으로 이익은 창출하지 못하지만 군림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단계까지 오면 이제 혁명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며 억압적 지배자가 명분을 획득하게 된 과정에 불구하게 된다.


 이것이 혁명의 전형적 타입인데. 원시부족, 신화, 소비에트, 혁명 프랑스 심지어 한국이나 원숭이들한테도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다. 한마디로 '보편적 역사의 원리'다. 이제 원리는 설명했고 무엇을 혼합을 설명하기 위해 무엇과 무엇이 혼합되었는지 혼합이 무엇인지 설명할 차례다. 먼저 민주주의라는 재료에 대한 설명이다.


모순 속에서 가치를 극대화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은 권한을 위임하고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이때 자유주의는 '구성원이 확보한 명분'에 따라 배분을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당위적 권리'에 따른 배분을 지지한다. 이런 상황에선 누군가의 자유의 행사는 누군가의 당위적 권리의 침해가 될 수 있다. 모순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의 귀결은 여러 가지 케이스가 존재한다. 윈윈게임, 제로섬, 마이너스섬까지 '보편적 역사의 원리'의 3단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성원들의 불만이 누적되는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는 마을 원님이나 영주, 솔로몬의 지혜와 자비, 판단에 기대지 않는다. 인간을 존중하는 헌법과 시민사회의 자율적 조율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 친화적인 체제가 만들어낸 이익은 탁월했다. 때문에 미국은 자신들의 정치적 실험과 전파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자랑하며 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역사는 끝난다!라는 성급한 주장마저도 있었지만 중국은 이런 질서에 도전 중이다.)

 이런 걸 볼 때 보면 자유민주주의에서 '좋은 정치'란 것은 모순적으로 보이는 가치들을 동시에 지향하며 때에 따라 각자의 명분을 맞춰 조율해가며 각각의 가치들을 최대한 보증할 수 있는 중간 구역을 찾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이 너무 답답하고 비참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인간의 본능이라 봐도 무방한 자유와 민주적 질서에 대한 추구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과격하게 단칼에 잘라버리는 시도들은 자율적 조율에서 나오는 효율성과 자발성을 잃게 해 체제의 건강성을 훼손시킨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안정성과 역동성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자유민주주의

 권력이 완벽하게 일원화되어있다면 혁명은 일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지배구조가 분산되어 있을 땐 혁명의 역치는 낮아지고 빈번하게 충돌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권력의 분산이 무한히 혁명을 불러일으킨 건 아니다. 너무 분산된 권력은 권력이라 할 수 없어지고 모임의 구심점이 없기 때문에 혁명이 억제된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의 수만큼 권력을 선출할 권력이 분산되는데 그 덕에 유래 없는 정치의 안정을 이뤄냈다. 그렇다고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시민사회가 필요할 땐 강력한 결합력을 자랑하며 불의한 권력과 침략세력을 몰아냈다.




진자운동으로서 민주와 독재의 해석

 자유에 대한 정의는 '무엇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피동적인 형태로 밖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더 정의하기 편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대치해서 현실을 보려고 한다. 상상해보자 한 축의 끝에 완벽한 민주주의를 반대 끝엔 완벽한 독재를 놓는 것이다. '보편적 역사의 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정치는 민주와 독재라는 양끝을 왔다 갔다 하며 발전해왔다. 각자 축에는 장점이 있었고 시대적 요구에 따라 체계들이 선택되었고 최종적으론 서로를 닮아갔다. '모순되어 있는 게 함께 있다.' 앞서 민주주의 장점을 언급하며 등장한 말들이다. 결론을 내기 전에 먼저 함께 있을 때 더 강력하단 점을 기억하자.


민주주의 발전과정

 민주주의 계보를 뽑아보자면 '원시 유목민 정치 - 그리스 광장 민주주의 - 로마 원로원 - 상인 공화정 - 간접 선거의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간접 민주주의적인 성격이 짙어졌고 엘리트가 대중을 대표하게 되었다. 또한 근대에 이르러선 민주적인 지도자의 전제적 통치를 합법화하는 계엄령을 품었다. 동시에 최고 통치자 1인에게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는 대통령제가 우월한 정치체제로서 자리 잡았다. 민주주의의 발전! 이런 말을 들으면 각 개인이 더 많은 힘을 가지게 된 과정처럼 들리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민주주의는 선출된 대표자의 기간 한정 독재를 허락하는 제도가 된 셈이다. 그래서 아나키스트처럼 이론적으로 끝에 있는 완고한 민주주의자가 보기에 현대의 민주주의는 그저 민주주의 탈을 쓴 독재일 수도 있다.

 최근에 등장한 '대중독재'라는 단어는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들이 합법적으로 독재를 이끌어내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이런 말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독재와 민주의 경계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본다. 또 독재정임에도 인민의 자유를 넓힌 사례(히잡을 금지시키며 인간개발을 옹호한 이란의 모하마드 레자, 의도야 어쨌든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보건체계의 초석을 놓은 박정희)도 얼마든지 찾으면 있으니 민주정과 독재정를 완전히 대립하는 선악으로 해석하여 활동의 근거로 삼는 민주운동가들의 시선은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독재의 발전과정 

민주주의가 독재를 닮았듯 독재도 끝없이 민주주의를 흡수했다. '정교일치 부족정 - 왕국 - 입헌 왕정 - 파시즘 - 의회를 통해 승인된 독재 - 대중에 의해 승인된 독재' 이렇게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독재의 형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표적인 사건들을 언급하며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종교의 복속

 고대부터 지도자와 종교지도자는 하나였으나 왕국시대부터 점차 분리되었다. 하지만 분리되었다고 그들이 독재에 대항한 건 아니다. 그들은 독재의 하수인이 되었다. 기독교와 불교 같은 고등 종교가 퍼질 즈음 제사장이자 정치적 왕(황제)도 겸임했던 군주들은 처음엔 그것들이 기존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떠나 점차 적극적 국교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취하게 된다. 이건 왕이 관대해서가 아니고 자신에게 유리한 교리를 선택해 독재를 정당화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나누고 권력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카노사의 굴욕' 같은 하극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결국에 종교는 권력에 복속되어 정부가 원하는 정치적 목표를 정당화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총과 성서를 들고 식민지 팽창주의와 함께한 기독교, 나치 독일에 부역하며 게르만주의의 이상을 함께한 나치 기독교, 종교적 열정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 아들 부시와 그에 의해 진행된 이라크 전쟁 모두 종교적 열정이 정치적 리더십을 뒷받침한 사례다. 


상업의 복속

 상인을 비롯한 경제활동 세력도 마찬가지다. 왕국에서의 상업활동은 왕의 면허에 의해 통제받았다. 하지만 그런 피동적인 상업의 생산성은 별 볼 일 없었고 네덜란드나 영국 같은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세력이 주도하는 상업에 밀렸다. 그렇다고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진 집단이 정치에 이득인 것은 아니었다. 상인 세력들은 정치에 참여하기를 원했고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독재정을 끝내게 된다. 상인 세력들에 의한 정치교체가 없던 나라에도 상업은 필요했다. 상업 세력들이 신줏단지처럼 섬기는 자본주의의 효율성 없이는 국가 간 경쟁 압을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독일, 일본으로 대표되는 군사 파시스트나 소비에트에 의해 운용된 국가자본주의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이윤추구에 대한 열정을 국가를 부강하게 할 도구로서 활용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비록 파시스트 국가들이 전쟁에 패해서 빛은 바랬지만, 현대에 와서 중국은 다시 그것을 재해석해 자본주의를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도구로서 사용하고 있다. 재해석된 국가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보다 더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고 열등한 처우를 받는 노동자를 기업에 공급한다. 그러면서도 CEO를 비롯한 최종 의사결정권자들에겐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업 또한 독재에 복속하게 되었다.


주민의 복속

 마지막으로 의회와 주민투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활용하는 것도 현대적으로 세련된 독재의 모습이다. 과거엔 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화와 정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속화와 민족주의가 진행되면서 국민들의 위임이란 명분을 확보해야만 했는데 이때 민주주의 대표적인 제도인 의회와 주민투표가 독재에도 들어오게 된다. 중국 인민대표대회, 북한 최고인민회의 등으로 자주 언론에서 접하는 독재자들의 국회는 독재자의 거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서구의 민주주의 모델을 강요하는 것에 반발심을 표현한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그걸 민주주의라고 받아들일 정도라면 그것 또한 그들의 민주주의라고 인정해야지 어쩔 수 있나? 당장 한국의 의회만 봐도 대통령을 '주군'이라고 부르며 배신을 했니 마느니로 싸운다. 과연 한국국회와 최고인민회의의 거수기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순간 만큼은 주군이 박근혜냐 김정은이냐의 차이밖에 없을것이다.


독재 발전사의 요약

 독재의 발전사는 다음의 과정을 통해 발전했다고 요약 가능하다. 1) 처음엔 모든 것을 리더가 결정하는 원시적 형태로 시작 2) 자신이 잘할 수 없는 기능은 다른 주체에 맡기는 '분화' 시작 3) 분화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맡기되 '복속'시키는 구조 확립 4) 일방적인 억압과 협박이 아닌 아닌 거수기 의회, 주민투표를 통해 통치행위를 정당성 획득. 

 독재체제는 인류 역사에서 복잡성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국면에선 국가역량을 키우는 데엔 실패했지만 다음 세대에서 추격하는 국면에선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진나라의 법가 사상은 전쟁을 수행하며 통일을 할 때는 최고의 역량을 발휘했지만 내부 전쟁이 끝나며 내적인 복잡성의 증가를 감당해야 할 시기엔 적응하지 못하여 멸망했다. 그렇다고 법가가 사라진건 아니었다. 초창기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상과 혼합되어 운용된 법가는 이후 중국 통일왕조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 통일왕조는 서구 열강들이 팽창하기 전까지 패권국으로 군림했다. 

 20세기 독일과 일본의 공업화 과정도 독재적 리드에 의한 성공을 잘 보여주는 케이스다. 이들은 영국이나 네덜란드처럼 먼저 아이디어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체계적으로 모방하고 개선하는데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들은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믿었으니. 이렇게 보면 독재도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독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측면이 크다 보니 설명이 길어졌다. 이번 포스트를 주로 쓰고 싶었던 건 민주주의와 독재가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생물의 역사에 뭔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것이 효과적이고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거나 효율적으로 체제의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체제도 다를 바가 없을터, 혼합의 실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섞이고 무엇이 좋은 건지 정리하려고 한다.


민주정의 장점, 독제정의 장점, 자연의 숙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다극적 질서는 학문, 혁신, 상업, 더 포괄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간개발(Human development)에 친화적이다. 독재로 대표되는 일원적 질서는 전쟁과 공업, 토건에 유리하며 질서 확립에 친화적이다. 이러한 특성을 통해 환경에 적응할 때 국가라는 것은 존립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는 독재와 민주라는 질서의 조정이라는 숙제를 역사를 통해 끝없이 제시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숙제를 제출하는 과정은 혁명의 결과로써 강제적일 때도, 정권이 바뀌지 않는 협상의 결과이기도 했다.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뤄지기도 했지만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이기도 했다. 체제를 조정하기 위한 분쟁의 결과 국가가 더 부강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적응한 최종 주소가 오늘 중국인들이 말하는 중국식 민주주의, 싱가포르가 말하는 싱가포르식 민주주의, 서구가 믿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결국 '왜 혼합이 이겼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역사가 내놓는 숙제에 가장 잘 적응한 것이 혼합적인 체제였으니까다. (실제로 혼혈일수록 자연의 숙제에 더 잘 적응하는 생물과도 비슷하다.)


쌍방적 질서

 이런 혼합과정은 비례식처럼 5:5 이렇게 표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배열의 곱셈을 생각해보자. 하나의 변인이 변하면 배열의 크기만큼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한쪽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서로 쌍방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실행할 수 있는 계엄령을 생각해보자. 계엄령을 실행하면 인간의 모든 주권은 무시되고 의회도 무효화된다. 그야말로 완벽한 독재. 하지만 계엄령의 실행 목적은 질서유지란 헌법적 조건을 요구한다. 따라서 정말로 대통령의 명령이 질서유지에 적합한지 아닌지는 애매모호한 회색지대에 남겨지게 된다. 이에 대해 저항하는 시민과 복종하는 시민으로 사회가 양분되고 이 비율에 따라 따라서 계엄령은 저항을 받아 무효화될 수 있는 가능성과 다수를 점한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강고히 실행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다. 대통령의 권한이 적법한 명분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열정에 의해 견제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쌍방적으로 변화를 주고받는 복합적인 질서다.


글의 내용을 정리하면 혼합의 역사에서 다음의 메시지들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1) 현대 민주주의를 완벽한 민주주의로 보는 것은 현실의 오독이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지극히 민주적이지 않은 제도와 혼합되었다. 대중독재라는 단어가 얼마든지 성립될 수 있다.

2) 현대 민주정과 현대 독재정은 완전히 대립관계가 아니다. 이들은 점차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3) 민주정치의 완고한 원형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아니다. 제도적 한계에 상상력이 묶일 필요는 없다. 대통령 제도는 민주주의- 독재 혼합의 대표적인 산물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제도가 되었다.

4) 제도만으론 현실을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시민이란 건 정치인들이 미더우니 정신 차리라는 말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반응하는 시민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것을 말한다.

5) 혼합적인 체제가 될수록 지도자의 통치를 해석하고 반응하는 주권자들의 반응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독재정의 경우 일원적 질서가 감당해야 할 현실의 해석과 지시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부분적 위임'했기 때문이고 민주정의 경우 시민에게 초월적인 권력에 대한 '감시'의 역할도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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